[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음악에 빠져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던 경험이 있는가? 노래가 종일 귓가에 맴돌고 입 밖으로 튀어나와 곤혹스러웠던 경험이 있는가? 완벽하게 취향을 저격해 한 시도 뗄 수 없는 음악, 때문에 ‘일상 파괴’라는 죄목으로 지명 수배를 내리고 싶은 음악들이 있다.

당신의 일상 브레이커가 될 이 주의 음반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실리카겔
실리카겔


사건명 새삼스레 들이켜본 무중력 사슴의 다섯가지 시각
용의자 실리카겔 (구경모, 김건재, 김민수, 김한주, 강동화, 김민영, 이대희)
사건일자 2015.08.21
첫인상 시판되는 플라스틱 김 통 안에 작은 알갱이가 들어 있는 하얀 종이봉투를 본 적 있는가. 이 김이 눅눅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넣은 것으로, 스스로가 대신 수분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이 알갱이들이 바로 실리카겔이다. 그룹 실리카겔은 평창 비엔날레 전시를 위해 모였던 대학 동문의 모임으로 시작되어 현재 퍼포먼스 팀으로 활동 중이다.
추천트랙 ‘시스터(Sister)’. 팀 이름도 특이한데 앨범 타이틀도 만만치 않다. (참고로 무중력 사슴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전시를 위해 서사적으로 만들었던 두 곡을 앨범과 공연에 어울리도록 파트를 나누고 새롭게 편곡해 수록했다. 가사를 알아들으려는 시도는, 일치감치 포기하는 게 좋다. 다만 사이키델릭과 슈게이징을 오가는 사운드에 귀를 기울이자. 제멋대로의 에너지가 느껴질 것이다.

상주나
상주나


사건명 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
용의자 상주나(윤상+정준하)
사건일자 2015.08.22
첫인상 2년마다 돌아오는 무한도전 가요제. 올해는 유재석&박진영, 박명수&아이유, 정준하&윤상, 정형돈&혁오, 하하&자이언티, 광희&지디&태양이 팀을 이뤘다. 역대 최대 규모로 펼쳐져 역대 최다 관객이 모여들었다. 경연곡들이 차트를 휩쓰는 건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 됐다. 이만하면 명실 공히 국민 페스티벌이다.
추천트랙 ‘마이 라이프(My Life)’. 윤상은 이번 페스티벌의 최대 피해자로 손꼽히는 인물. 가장 꺼려했던 멤버 정준하와 가장 자신 없어 하던 장르인 힙합을 하게 됐다. 상당한 고충을 겪긴 했지만, 윤상을 피해자로 꼽기엔 결과물이 무척 훌륭하다. 윤상의 일렉트로닉은 여전히 세련됐고, 그가 그려낸 멜로디는 여전히 우아하다. 정준하도 잘했다. 랩을 하기에 좋은 목소리 톤은 아니지만, 제법 카리스마 있게 제 몫을 소화했다. 두 사람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나희경
나희경


사건명 에스타테(Estate)
용의자 나희경
사건일자 2015.08.26
첫인상 나희경은 ‘보싸다방’이라는 뮤지션 네임을 쓰는 보사노바 가수다. 2010년 첫 앨범을 발매한 후 브라질로 떠나 보사노바 1세대 음악가인 호베르토 메네스칼와 같은 현지 뮤지션들과 교류하며 음악을 익혔다. 정규 3집 앨범의 발매를 앞두고 브루노 마티노(Bruno Martino)의 ‘에스타테’를 리메이크해 선공개했다.
추천트랙 ‘에스타테’. 국내 음원 차트에서 이탈리아 노래를 들을 기회는, 단언컨대 적을 것이다. 익숙지 않은 만큼, 낯선 매력을 주는 언어다. 해석이 전혀 안 되는 탓에 오롯이 곡의 정취에만 집중할 수 있기도 하다. 나희경은 29세라는 나이에 걸맞은 싱그러움과 현지 유학에서 온 노련함을 동시에 가졌다. 자연스레 흩어지는 악기들도 살랑거리는 나희경의 목소리 아래에서 제 나름의 질서를 갖춘다.

조민희
조민희


사건명 올 더 피플(All The People)
용의자 조민희
사건일자 2015.08.26
첫인상 조민희는 삼청동, 명동, 인사동, 대학로, 홍대 등에서 활동하는 버스커다. 활동 경력만 벌써 8년인데 앨범 발매는 이번이 처음이란다. 작사, 작곡을 비롯해 연주와 녹음, 믹싱과 마스터링 뿐 아니라 앨범디자인과 뮤직 비디오까지 앨점 제작 전반을 자력으로 해냈다. 오프라인 앨범 판매는 그의 거리 공연 현장에서 이루어지며, 방문이 어려운 사람들은 그에게 직접 연락해 구매할 수 있다.
추천트랙 ‘왓 해브 유 던(What Have You Done)’. 대부분의 수록곡들이 2분 30여 초로 짧다. 뭔가 시작할 것 같으면 끝이 나버린다. 못내 아쉽다. 그래서 다음곡, 또 다음곡을 듣다가 결국 앨범 전체를 틀게 된다. 홈레코딩으로 진행된 만큼, 장비적인 한계로 인해 사운드가 깨끗하진 못하다. 그런데 그게 또 묘한 매력을 준다. 타이틀곡 ‘마더 네이처(Mother Nature)’는 허공을 부유하는 느낌과 한없이 아래로 침잠하는 느낌이 동시에 찾아든다. 차갑고 우울하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애니웨이(Anyway)’나 ‘왓 해브 유 던(What Have You Done)’은 안락하고 따뜻하다. 종잡을 수 없다. 앞날이 더 궁금해진다.
출몰지역 28일 오후 8시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 10시 신촌 유플렉스 주위, 19일 0시 홍대입구역 8번 출구 앞에서 버스킹을 한다. 그의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lyla213)에 수시로 공연 일정이 업데이트되니, 관심이 있다면 확인해 볼 것.

이센스
이센스


사건명 디 애넉도트(The Anecdote)
용의자 이센스
사건일자 2015.08.27
첫인상 이센스의 첫 정규앨범. 일화(anecdote)라는 타이틀답게, 앨범 전곡에 자신의 삶에 관한 회고를 담아냈다. 앞서 이센스는 대마초 흡연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아 현재 복역 중에 있다. 세 차례에 걸친 대마초 흡연은 질타를 받아 마땅하지만, 안타까움의 시선도 분명 존재한다. 어찌하겠는가. 스스로 풀어나가야 할 몫이다.
추천트랙 ‘디 애넉도트’. 일단 대마초 흡연은 나쁘다. 범법을 했다면, 처벌을 받는 게 맞다. 그의 뛰어난 재능이 대마 흡연에 면죄부를 줄 수 없다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비트는 깔끔하고 랩은 훌륭하다. 무엇보다 가사가 오래 남는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나열하는데, 자세는 관조적이다. 덕분에 뒷맛은 씁쓸하다. 강일권 평론가의 말처럼 빤한 마무리가 아니라 더 좋다. 많은 이들이 본 앨범 발매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고 설전을 벌일 테다. 하지만 그냥 이센스의,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은호 기자 wild37@
편집. 김민영 kimi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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