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용 촬영감독
김지용 촬영감독
김지용 촬영감독

[텐아시아=정시우 기자]주목할 만한 데뷔였다. 김지용 촬영감독은 자신의 첫 작품 ‘달콤한 인생’을 통해 그해 모든 영화제 촬영상 후보에 올랐고, 그중 청룡영화상과 부산영평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조수 시절도 겪지 않은, 미국에서 날아온 생경한 신인의 등장에 충무로는 질투와 동시에 호감을 표했다. 이후에도 그의 행보는 남다른 면이 있었다. 촬영뿐 아니라 조명도 직접 관장하는 DP시스템(Director of photograher)을 끌어안더니, 2013년에는 김지운 감독과 ‘라스트 스탠드’를 통해 꿈의 할리우드 무대를 밟았다. 물론 이는 그를 소개하는 단편적인 일례일 뿐. 충무로가 김지용에게 진짜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는 그의 손끝에서 빛의 콘트라스트가 강렬하게 담긴 매혹적인 숏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상의원’(2014) ‘수상한 그녀’(2013) ‘라스트 스탠드’(2012)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2) ‘인류멸망보고서’(2011) ‘인플루언스’(2010) ‘마린보이’(2008) ‘헨젤과 그레텔’(2007) ‘음란서생’(2006) ‘달콤한 인생’(2005)

Q. 어떻게 이 길에 들어서게 됐나.
김지용:
영화 보는 걸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그렇다고 딱히 영화를 업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스무 살 때 미국 필라델피아로 유학을 갔는데 학부 때는 영화가 세부 전공이 아니었다. 학교에 인턴프로그램이 있어서 LA에 있는 영화사로 가게 됐다. 전화 받고, 리서치 하고, 시나리오 모니터 등을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조명부 일을 하게 됐는데 일하다보니 재미도 있고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갈망이 생겨서 AFI(American Film Institute)에 촬영 전공으로 들어갔다. 졸업 후 한국에 들어왔는데 그때 김지운 감독이 ‘달콤한 인생’을 준비 중이었다. 김지운 감독은 원래 ‘장화, 홍련’을 함께 했던 이모개 촬영감독과 다시 하려 했다. 그런데 이모개 촬영감독의 스케줄로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마침 한국영화가 엄청 많이 촬영되고 있던 때라 쉬고 있는 촬영감독이 아무도 없었다.(웃음)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류성희 미술감독이 나를 김지운 감독에게 소개시켜주면서 이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게 됐다.

Q. 조수시절 없이 바로 촬영감독으로 입봉한 셈이다.
김지용:
내 단편 영화를 보고 판단하긴 하셨겠지만, 과감한 결정이긴 했다. 그 시기가 영화계 전반적으로 세대교체가 일어날 때였다. 새로운 젊은 피에 거는 기대들이 있어서 그때 젊은 촬영감독들이 많이 데뷔했다. 나를 비롯해 이모개(‘놈놈놈’ ‘마이웨이’ ‘우는 남자’ 등), 김병서(‘고고70’ ‘호우시절’ ‘감시자들’ 등) 촬영감독 등이 그 시점에 데뷔 했다. 지금은 그런 선택을 과감하게 못한다.

Q. 왜 과감한 선택들이 줄어들었을까.
김지용:
전에는 촬영 시간이나 회차에 대한 여유가 있었다. 예산 문제도 그렇고. 그런 것들이 타이트해 지면서 경험을 중요시 하는 분위기가 커졌다. 물리적인 프로덕션을 진행하고 책임지는 게 촬영감독의 일인데 경험이 없다보면 아무래도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사실 나의 경우 큰 경험 없이 ‘달콤한 인생’에 바로 뛰어든 건데, 모르기 때문에 내가 끼친 과정상의 경제적 손실이 없었다고는 말 못할 거다.
김지용 촬영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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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거기엔 표준근로계약의 영향도 있을 것 같다. 사실 한국영화의 특징 중 하나가 감독이 원하는 컷이 나올 때까지 마음껏 찍는 거였는데, 이젠 근로시간을 엄수해야 하는 분위기이지 않나.
김지용:
맞다. 예전에는 세트장에 들어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는데, 이제는 그게 안 된다. 그런 점에서는 지금 입봉 하는 친구들은 나 때 누렸던 호사를 못 누리는 거지. 하지만 그렇게 가는 게 맞다. 최근 촬영을 마친 이선균 김고은 주연의 ‘성난 변호사’는 모든 스태프들이 표준근로계약을 체결했다. ‘상의원’과 ‘수상한 그녀’는 감독과 상의해서 ‘하루 12시간 촬영을 해 보자’ 자발적으로 참여한 경우고. 준비시간이 빡빡하긴 하지만 좋게 얘기하면 촬영할 때 긴장감이 훨씬 있다.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Q. 촬영감독으로서 성장하는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작품 혹은 사람이 있다면.김지용: 김지운 감독님. 시작도 시켜줬고, 중간에 할리우드 영화 ‘라스트 스탠드’로 전환점도 돼 줬다. 그러고 보니 진짜, 인생의 은인이시다.(웃음)

Q. 인생의 은인과는 자주 만나는지.(웃음)
김지용:
같은 동네에 사는지라.(웃음) 사실, 어제도 감독님이 영화 시나리오를 보내줬다. 한국영화는 아니고, 할리우드 저예산 영화다.

Q. ‘라스트 스탠드’를 찍을 때는 어땠나. 촬영적으로 한국과 어떤 것들이 달랐는지 궁금하다.
김지용:
미국은 책임에 대한 부담이 굉장하다. 촬영 뿐 아니라 모든 파트가 그렇다. 프로덕션 진행에 대한 부담, 예정된 스케줄을 정확한 시간에 끝내야 하는 부담 등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그나마 ‘라스트 스탠드’는 제작자가 편하게 해 준 편이라고 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게 많았다. 무엇보다 시간 계산이 힘들었다. 한국에서 빨리 진행되는 사안이 그곳에서는 굉장히 오래 걸리는 경우가 있었고, 반대로 여기서 오래 걸리는 게 거기서는 빨리 되는 경우가 있었다. 촬영 중반까지 그런 것들에 적응하는데 애를 좀 먹었다.

Q. 촬영감독은 사각 프레임을 통해 현장을 봐야 한다. 프레임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는 없나.
김지용:
촬영을 얘기할 때 프레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건 여러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프레임에 대한 고민도 까다롭게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빛의 성질’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볼 때 어떤 종류의 빛이 영화 전반을 관통할지를 중요하게 본다. 내가 조명도 함께 하기 때문에, 유독 빛을 더 보는 것도 있다.
김지용 촬영감독
김지용 촬영감독
Q. 아! 조명도 함께 하는 건 몰랐다.
김지용:
‘도가니’ 때부터 조명부를 꾸려서 직접 한다. 내가 조명 경험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달콤한 인생’ 때부터 4-5 작품 함께 했던 조명기사님에게 많이 배운 덕이다. 사실 ‘도가니’도 내가 할 계획은 아니었다. 그 기사님과 스케줄이 안 맞아서 직접 하게 됐는데, 그때부터 조명도 내가 쭉 하고 있다. 사실 이게 미국식이다.(DP 시스템) 미국은 촬영감독이 조명과 프레임을 함께 관장한다. 다만 오퍼레이팅은 다른 스태프가 하는데, 한국은 그것도 조명파트가 함께 해야 해서 힘든 부분이 있다. ‘도가니’ 때만 해도 정신이 없었는데, 지금은 많이 적응이 됐다. 그러고 보니 ‘도가니’도 전환점까지는 아니라도 내겐 중요한 분기에 있는 영화다.

Q. 촬영감독이 바라보는 배우는 또 다를 거다. 피사체로서 매력적인 배우를 꼽는다면.
김지용: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정말 잘 생긴 배우들. 조명을 아무리 만져도 마음에 안 들다가도, 그 배우가 들어서면 자동으로 뭔가가 ‘탁’ 켜지는 느낌이 든다.(웃음) ‘상의원’의 고수, ‘우는 남자’의 장동건 등 흔히들 잘 생겼다고 얘기하는 배우들이다. 거꾸로 그냥 서 있을 때는 ‘촬영을 어떻게 하지?’ 걱정 하게 하는데, 연기가 시작되면 달라지는 배우들이 있다. 역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배우들이다. 송강호, 김윤석 등 연기파 배우들. 그림이 썩 훌륭하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웃음) 움직이면 뭔가 빨려 들어가는 게 있다. 몰고 오는 기운이 확실히 다르다.

Q. 이젠 모든 상업영화가 디지털로 제작되고 있는데 필름과 디지털 작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김지용:
장단점 모두 있다. 일단 단점은 담을 수 있는 정보량이 줄어들었다는 거. 디지털 퀄리티가 점점 좋아지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필름이 가진 고유의 질감과 풍부한 색감을 따라올 수는 없다. 반면 찍은 후 결과물을 바로바로 확인 할 수 있는 건 장점이다. 예전에는 촬영이 끝나면 필름이 현상소로 가서 나오기까지 12시간 정도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했다. 지금은 그런 과정 자체가 없어졌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게 나에겐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 필름 때는 앞이 안보이니까 오히려 과감했던 부분이 있었다. ‘어떻게 되겠지’하면서 확 지르는 게 있었는데, 지금은 눈에 다 보이니까 오히려 뭉뚱그려지는 부분이 생겼다.

Q. 김지용에게 자극을 준 촬영감독이 있다면?
김지용:
김병서, 이모개, 정정훈(‘올드보이’ ‘스토커’ ‘신세계’ 등) 등 동료 촬영감독들에게 자극을 많이 받는다. 비슷한 시기에 영화를 시작했고 현재 비슷한 조건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 안에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내고 계속 노력하는 모습들에 자극을 받는다. 정정훈 촬영감독의 경우 지금 미국에 있다. 내가 ‘라스트 스탠드’를 찍을 때 그 형도 미국에서 박찬욱 감독님과 ‘스토커’를 찍었다. 이후 ‘신세계’를 하고 다시 미국에 갔는데 들어 올 생각은 안 한다. 정말 대단하다. 나는 말이라도 통하는데, 그 형은.(일동웃음) 지금 영어를 배우면서 독립영화 위주로 활동 중인 걸로 안다. 미국에서의 활동이 굉장히 기대되는 감독이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촬영 현장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촬영 현장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촬영 현장

Q. 작업물 중 ‘잊기 힘든 한 장면’을 꼽는다면.
김지용:
‘화이’ 마지막 부분에 화이(여진구)가 아버지들을 따돌리고 트럭으로 운전하며 도망가는 씬. 사실 카체이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비가 아니다. 진짜 중요한 건 운전 실력과 마음껏 달릴 수 있는 도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엔 그런 공도로가 많이 없는데 다행히 ‘화이’때 대전 근처에서 나쁘지 않은 공 도로를 찾았다. ‘라스트 스탠드’ 카체이서를 찍으면서 느낀 게 많았다. 과정에서 배운 것도 있고, 함께 일한 스태프들에게도 많은 걸 배웠다. 그때 배운 것들을 ‘화이’에서 많이 풀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시퀀스는 드라마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장면이다. 아이와 아버지들의 복잡한 심경이 뒤엉켜서 감정적으로 폭발해야 하는데, 카체이서 액선이 그런 감정을 어느 정도 더 부각시켜주지 않았나 싶어서 개인적으로 만족도가 높다.

Q. 김지용만의 ‘비장’의 무기라면.
김지용:
원만한 성격…을 가지고 싶다.(웃음) 그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영화라는 것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령 촬영이 멋지게 나오려면 혹은 미술이 아름답게 보이려면 미술팀과 촬영팀이 의사소통을 잘 해서 서로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의 원만한 의사소통은 필수다. 언변이 뛰어나면 조금 더 도움이 되기도 한다.(웃음)

Q. 마지막으로 촬영을 꿈꾸는 친구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
김지용:
‘무조건 많이 찍어라’고 말해주고 싶다. 과정에서 배우는 게 가장 많다고 믿는다. 과정에서 많이 배워나야 진짜 기회가 왔을 때 그 실력을 펼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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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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