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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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강력한 한 방이다. 스타라는 왕관을 쓸 수 있는 기회말이다. 이민호에겐 드라마 ‘꽃보다 남자’가 그러한 강력한 한방이었다. 그리고 스타가 된 이후다. ‘이미지’로 소비되던 배우가 ‘이야기’로 읽히기 위해 넘어야 할 도약대. 유하 감독의 ‘강남 1970’을 보고 있자면, 이민호가 그 도약대를 이미 찾았다는 생각이 든다.

Q. 오전에 얼굴이 잘 붓는 편이라고 해서 부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네.
이민호: 살이 빠졌다.(웃음) 홍보 인터뷰하면서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저절로 빠졌다.

Q. 유하 감독님이 “‘강남 1970’이 뒤틀린 자본주의 반성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연예계야 말로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꼽히는 곳이지 않나. 그 한가운데에서 있는 배우로서 이런 메시지의 작품에 출연하는 것도 나름 새롭지 않을까 싶다.
이민호:
맞다. 자본주의 안에서 배우들은 일종의 상품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내 경우에는 그에 맞는 책임감을 항상 가지려고 한다. 가령 10억 짜리 광고가 있다면 단순하게 10억을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10억에 대한 가치를 해 주는 책임감이 더 필요하다는 느낀다. 많은 돈을 받는다고 해서 잘 나간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려 하고. 그리고 뒤틀린 자본주의는 감독님이 의도하신 부분이고, 나는 연기자로서 사람들이 가지는 감정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감독님이 “의식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더 잘 살고자 하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지 않나. 그런 감정선에 신경을 썼다.

Q. 배우는 상품일 수 있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만큼은 지켜야 한다고 보는 게 있나.
이민호:
작품적인 부분에서만큼은 배우 개인의 생각이 많이 개입이 돼야 한다고 본다. 작품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는가가 연출가의 일이라면, 그걸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가는 배우의 몫이니까. 결국 캐릭터를 본인만의 스타일로 소화하는 것은 배우의 능력이지 않을까 싶다. 반면 광고는 다르다. 광고는 이미지를 그려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짜여 진 틀 안에서 움직여도 무방하다고 본다. 자기 자신의 가치와 자존감을 지켜야 하는 작품과는 조금 다른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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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예상 보다 영화 표현 수위가 강하다는 얘기가 많다.
이민호:
아, 그런가. 나는 굉장히 ‘노멀(normal)’하다고 느꼈는데.(웃음) 사실 최종 편집 전에는 베드신이나 폭력의 수위가 더 노골적이었다. 그걸 미리 봐서인지, 조금 밋밋하지 않나 생각했다. 아, 그런데 편집된 내 베드신 부분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베드신이라고 표현돼서 그런데, 모든 상황이 끝난 후(?) 침대위에서 상의 탈의하고 담배 피며 얘기하는 게 전부다. 영화 전체 스토리에 큰 영향이 없는 얘기들이어서 편집됐는데, 덕분에 영화가 오히려 스피드해졌다. 물론 그 씬이 사라짐으로 해서 나의 유일한 상의 탈의신이 사라졌지만.(웃음)

Q. 가장 상업적인 장면이 될 수 있는 부분이 빠진 셈이다.(웃음)
이민호:
하하하. 그 장면을 위해 트레이너와 함께 다니며 운동을 하기는 했다. 탈의 씬을 딱 터는 순간, 운동과 이별했던 기억이 난다.

Q. 많은 남자 연기자들이 김은숙 작가(‘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 ‘상속자들’ 등)를 만나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적지 않은 꽃미남 연기자들이 유하 감독을 만나 스타가 아닌 배우로 거듭났다. 그 두 사람을 모두 만난 이민호는 일견 영리한 배우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민호:
그런 사례들만 보고 전략적으로 선택한 건 아니다. 물론 작품을 선택하는데 있어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지점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시나리오였다. 김은숙 작가님은 센스 있고, 가슴에 콕콕 박히는 직설적인 대사를 굉장히 잘 쓰신다. 나도 직설적인 편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너무 좋았다. 유하 감독님 작품은 묵직한 메시지들이 항상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작품은 더더욱 메시지가 큰 작품이라 그걸 표현하기 위해 폭력적인 부분도 많이 들어갔는데, 개인적으로 메시지 있는 대본들을 좋아하는 편이라 상당히 만족한다.

Q. 이민호를 세상에 알린 ‘꽃보다 남자’와는 확실히 대척점에 있는 작품이다. 이민호의 터닝포인트가 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민호:
그런데 나는 인정받고 싶다는 조급함이 없는 편이다. 그런 갈증이 있었다면 ‘꽃보다 남자’ 끝내고 바로 영화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상속자들’을 하지도 않았을 것 같고. ‘강남 1970’의 경우도 ‘내가 이제는 남자다움을 보여줄 때야!’해서 선택한 작품은 아니다.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시기에 마침 유하 감독님을 만났고, 유하 감독님이 조금 더 묵직하게 캐릭터를 그려줄 거라는 믿음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출연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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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거리 3부작의 완결판이라는 기대 혹은 부담도 있었을 텐데.
이민호:
‘말죽거리 잔혹사’는 고등학교 때 봤다. 고등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영화라서 굉장히 통쾌하게 봤던 기억이 난다. ‘비열한 거리’는 20대 초반에 봤는데, 그때는 이성보다 동성친구들에게 관심이 많을 때다. 그런 시기에 남자들의 배신을 다룬 영화를 만났으니 어땠겠나. 관객 입장에서 ‘재밌다, 멋있다’ 하면서 봤다.

Q. 과거의 당신이 권상우와 조인성을 보며 그랬듯, 이젠 반대로 많은 남자들이 당신을 보며 ‘멋있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까 싶다.
이민호:
하하. 일단 나는 객관성을 잃은 상태라, 순수한 관객 입장에서 영화를 볼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에서의 내 모습이 멋있다는 느낌은 크게 못 받았다. 그래도 진흙탕 액션 신에서 뒤를 돌아보는 장면만큼은…‘이건, 조금 멋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웃음) 그런데 이 영화는 단순하게 멋있음을 강조한 작품이 아니다. 그 시대의 메시지들이 분명 담겨있는 영화다. 이 영화를 하면서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다고 느꼈다. 당시에는 출구 잃은 청춘들이 갑갑한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없었다면 지금 세대에는 조금 더 많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20대에게 그런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Q. 출구 잃은 청춘이라는 말이 나름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이민호 하면 승승장구한 이미지가 있으니까.
이민호:
종대만큼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출구 없이 답답한 시간들, 탈피하고 싶은 시기들이 분명히 있었다. 20살부터 24살 까지가 그랬다. 그러니까 ‘꽃보다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 나도 암흑의 시간들을 보냈다. 그때의 감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종대(이민호)에게 공감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Q. ‘강남 1970’은 우정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혹시 믿었던 우정에 배신당해 본 적 있나.
이민호:
그런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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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단호하게 없다고 하네.
이민호:
정말로 없다. 상처 줄만한 소지의 사람들은 내가 미리 피한 것 같기도 하고.(웃음) 혹시 모르겠다. 나에게 반대로 상처 받은 사람이 있는지는. 하지만 나는 선한사람들이 좋고, 다행히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한 번도 상처를 받아 본 기억이 없다. 언젠가 배신을 당하게 되면, 아마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을 거다.

Q. ‘땅 종대, 돈 용기(김래원)’을 외치는 김래원의 대사가 강렬한데, 땅과 돈 중 어느 쪽 재테크에 더 관심이 가나.
이민호:
재테크라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 그런 것들에 신경쓰다보면 내가 해야 하는 기본적인 것들을 놓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아직은 특별한 재테크를 하지 않는다. 지금은 배우 활동에 집중해서 나아가야 할 때라는 느낀다.

Q. 꽉 찬 20대다. 스물아홉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나.
이민호:
아…하~(깊은 한숨) 정말, 한숨이 나온다. 나는 20대가 가는 게 너무 싫다.

Q. 어떤 남자 배우들은 빨리 나이 먹고 싶다고 하던데.
이민호:
나는 소년성을 잃는 게 싫다. 20대 까지는 소년처럼 보이고 싶으면 소년처럼, 남자답게 보이고 싶으면 남자답게가 가능하다. 그런데 서른이 넘고 뭔가 남자로서 나이가 먹어 가면, 내가 하는 말들에 무조건적인 책임져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은 장난을 치고 헛소리를 해도 ‘그럴 수 있지’ 해주시는데, 30대에도 똑같이 그러면 ‘나이 먹고 왜 저래’ 이럴 것 같다. 그런 주변의 시선들, 혹은 나이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하지 못할까봐 우려된다.

Q. 그나저나 당신, 예상했던 것과 다르다. 말도 생각보다 잘 하고…
이민호:
하하하. 말 되게 못할 것 같았나. 안하무인 구준표(‘꽃보다 남자’) 같은?(일동 웃음)

Q. 대중이 바라보는 나와 실제의 나 사이에 괴리가 큰가.
이민호:
크다. 엄밀히 말하면, 대중들은 나라는 사람을 거의 못 봤다. 작품을 통해서만 나를 보셨기 때문에 ‘반듯하고, 재미없고, 자기 밖에 모르는’ 지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 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처음 만난 분들로부터 “너 이렇게 웃긴 애였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런 것들이 나쁘지는 않다. 작품 속 캐릭터들을 잘 표현했기에 그런 이미지들이 생긴 게 아닌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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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창 연애도 해야 할 나이인데.
이민호:
항상 하고 싶다. 이성에 눈을 뜬 10대의 어느 시점부터 연애는 항상 하고 싶었다. 그런데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죽도록 일하자’가 목표다. 1년 치 스케줄을 이미 다 짜놓은 상태라, 연애를 하다고 해도 올해는 상대에게 상처만 주지 않을까 싶다.

Q. 그런데 뭐. 연애라는 게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불쑥불쑥 오는 게 연애고.(웃음)
이민호:
맞다. (아무리 바빠도 하려면)다, 하게 돼 있죠? 하하하.

Q. 이미 짜여진 1년 계획은 어떻게 되나.
이민호:
1년에 한 작품은 꾸준히 해 왔는데, 작년에 영화 개봉이 밀리면서 작품이 없는 해가 됐다. 그래서 욕심을 낸다면 올해는 영화 한 편, 드라마 한 편을 하고 싶다. 아직 확정된 건 없는데, 영화를 한다면 중반기 드라마를 한다면 하반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Q. 남자가 품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인격은 뭐라고 생각하나.
이민호:
남자는 항상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책임감은 여러 부분에서 얘기될 수 있다. 아빠로서의 책임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책임감, 자기가 내뱉은 말을 지킬 줄 아는 책임감… 그런 책임감들을 지닌 남자가 진짜 남자인 것 같다.

Q. 그런 입장에서 봤을 때, 종대는 책임감 있는 남자라고 생각하나?
이민호:
그렇다. 물론 자신의 조금 더 나은 출구를 위해 달려간 것도 있지만, 그 안에는 분명 가족이 있었다. 그리고 용기가 가까이 있는 돈을 보는 캐릭터였다면, 종대는 멀리 있는 땅을 보는 캐릭터였다. 그런 부분이 새롭다고 봤다.

Q. 그렇다면, 이민호는 어떤가. 당신은 책임감이 있는 남자인가.
이민호:
나는 책임감이 ‘개 쩝니다’.(일동 웃음) 진짜다. 내가 열심히 할 수 있는 이유는 모두 책임감에서 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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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왜 그렇게 책임감이 강한지, 생각해 봤나.
이민호:
쉽게 얘기하면 지켜봐 주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 명이 내 얘기를 들어주는 것과 100명이 들어주는 것은 다르니까. 더 책임감을 가져야만 100명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10명이 만족하고 90명이 불만족스럽다고 하면 내가 얼마나 창피하겠나. 나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서라도 책임감을 가지려고 한다.

Q.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스타는 책임감만큼 우월감을 갖기도 쉽다.
이민호:
나는 우월주의는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도 안 한다. 기본적으로 겸손은 하되 자존감과 자신감은 잃지 않으려 한다.

Q. 스타이기에 감내해야 하는 책임감, 혹은 시선들도 많다. 요즘의 대중들은 스타의 윤리적인 면에 민감한 게 사실이니까.
이민호:
사실 모든 것을 포기하며 살지는 못한다.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놀고 싶을 때는 1년에 한두 번 클럽도 가고 그런다. 내 선에서 가능한 것들은 ‘최대한 풀자’라는 게 있다. 그럼에도 또래들에 비해 엄격한 편이긴 하다. 최대한 논란은 만들지 말고,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것들은 피하자는 주의다. 그런데 인생이라는 게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지 않나.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는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100프로 계속 깨끗할 수 있을 거라는 말씀은 못 드릴 것 같다.

Q. 상당히 솔직한 대답이다. 그나저나 당신은 고전적이 미남형이다. 그래서 항상 궁금했다. 왜 어린 친구들이 미치게 좋아할까하고.(웃음)
이민호:
하하. 그건 캐릭터의 영향인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어린친구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분명 호불호가 갈리는 얼굴이다. 2015년에 딱 적합한 얼굴도 아니고.(일동 웃음) ‘트랜디하게 생기지 않았다’가 내 개인적인 평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동남아에서 광고를 찍으면 동남아 사람처럼 보이고, 중국에서 광고를 찍으면 중국 사람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70년대에 가져다 놓으면 또 70년대 사람 같은 느낌이 들고. 그런 게 배우하기엔 오히려 장점인 것 같다. 어쨌든, 어린친구들에게 계속 어필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Q. ‘땅 종기, 돈 용대’ 라는 수식어처럼, 스스로를 표현하자면?
이민호:
‘꽃미남’ 이런 건 아닌 것 같다.(웃음) 그보다는 매력적인 배우라는 애기를 듣고 싶다. 뷰티 이미지? 그건 계속 가져가야지. 그래야 계속 광고도 하고.(일동 웃음) 굳이 스타라는 타이틀을 벗기 위해 애쓰지는 않을 거다. 주위에서 자연스럽게 스타라는 타이틀을 주셨듯, 어떤 시점이 지나면 스타보다는 배우로 바라봐 주실 거라고 믿는다. 그런 시간이 오리라 믿으며 달리는 중이다.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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