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아
한동안 젊은 세대들의 메카인 홍대 앞거리에서 기타를 둘러매고 돌아다니면 손가락질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날부터 풍경이 확 변했다. 요즘은 기타를 둘러매고 활보하는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통기타 한 대와 하모니카를 둘러메고 거리마다 버스킹을 하는 무명 인디뮤지션들도 넘쳐난다. 또한 홍대 앞 라이브카페 ‘언플러그드’에 가보면 기타를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진지하게 줄 튕기는 소리가 영롱하다.
최근 포크 뮤지션들의 개체 수는 증가일로다. 김두수, 이장혁, 빅베이비드라이버, 시와, 김목인, 김사월X김해원, 최고은, 이아립, 강아솔, 프롬, 정밀아, 권나무, 곽푸른하늘 등 그 어느 때보다 뛰어난 포크 뮤지션들의 탁월한 창작 앨범들이 줄을 이어 발표되고 있다. 한국대중음악상에서도 그동안 없었던 포크부문을 금년에 신설한 것은 이 같은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포크송은 모든 음악의 뿌리 같은 존재지만 한동안 7080음악을 대변하는 추억의 산물쯤으로 취급당했다. 왜 지금 포크송이 다시 뜨겁게 회자되는 것일까?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는 말이 있다. 순수함을 지향하는 포크송은 70년대 군사정권시절에는 청년세대들의 저항의식을 대변하는 상징적 장르로 각광받았다. 삶이 팍팍하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장기적으로 계속되는 불경기는 회복의 기미가 보이질 않고 좌우 이데올로기의 갈등은 더욱 첨예해 졌다. 상상하기조차 힘든 흉흉한 사고의 빈번한 발생은 모두를 지치고 힘들게 만들고 있다. 위로와 힐링이 미덕인 포크음악이 슬그머니 우리들 마음으로 들어오는 한 가지 이유가 아닐까 싶다.
포크송은 통기타와 목소리만으로 삶과 인생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장르적 특징이 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잘 하기는 힘든 장르가 포크음악이다. 단순해 보이는 포크송에는 진심을 담은 진정성과 더불어 삶과 인생의 무게가 유려한 멜로디와 시적인 아름다운 가사에 채색되어 있다. 자연과 사람의 순수함을 노래하는 포크송의 질감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최근에는 팝 스타일이 스며들어 사운드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워졌고 가사는 더욱 내밀해졌다.
최근 정규 1집을 발표하며 등장한 정밀아는 한국 통기타 계보를 계승할 가능성이 충분한 기대주다. 뭐 하나 흠 잡을 구석이 없다. 대학시절 정밀아는 미미시스터즈의 작은미미, 굴소년단의 김혜린과 함께 3인조 밴드 ‘물체주머니’로 잠시 활동했다. 당시에는 보컬이 아닌 건반 및 송라이팅을 맡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오랜 기간 노래와 이별했었다. 2014년 만추에 발표된 정밀아의 첫 정규앨범 ‘그리움도 병’은 신선한 음색과 가슴 시리도록 정갈한 노랫말이 담긴 9곡이 수록되어 있다.
정밀아는 매사 신중한 성격이다. 무엇을 결정하는 데 오랜 시간을 요구하는 스로우 스타터지만 이거다 싶을 땐 행동으로 옮기데 주저함이 없는 맹렬 여성이라 생각한다. 늘 그랬듯 정밀아의 음악에 어울리는 이미지가 무엇일까를 고심했다. 겨울 시즌 송을 담은 정규앨범을 생각하니 영하12도가 넘는 추위에 얼었다가 해가 뜬 후 1시간 정도 눈꽃으로 변신했다 눈 녹듯 사라지는 ‘상고대’가 떠올랐다. 정밀아를 인터뷰하고 취재하는 동안 딱 한 번 기회가 왔다. 급하게 촬영 전 날 밤에 연락해 새벽 촬영이 가능한 지 여부를 타진했다. 그녀는 절대 절명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환상적인 피쳐사진은 그 결과물이다.
정밀아는 작사, 작곡, 연주, 노래에다 프로듀싱과 제작까지를 스스로 해결하는 멀티 플레이어다. 또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자 사진을 담는 사진가이기도 하다. 정밀아의 노래에는 이별과 그리움. 낭만과 상실. 눈물. 기쁨 등 다채로운 색채의 감성이 오랜 담금질을 통해 절제되어 녹아있다. 귀에 감겨오는 멜로디는 수려하기 그지없고 노랫말은 한 편의 낭만적인 시를 연상시킨다. 아날로그 시절의 정서와 디지털적인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그녀의 노래는 세대와 계층을 초월한 폭넓은 관객들을 파고들고 있다. 어쿠스틱 악기가 중심을 잡는 편곡과 라이브에 가까운 자연스런 사운드도 생동감이 넘친다.
정규 1집에서 정밀아는 클래식기타와 어쿠스틱 피아노를 직접 연주했다. 직접 디자인한 앨범 아트웍은 짧은 이야기들을 스케치한 한 편의 사진집을 보는 것 같다. 실제로 2007년부터 자신의 똑딱이 디지털카메라로 일기 쓰듯 찍어둔 사진들은 앨범 재킷과 모든 노래에 어우러진 부클릿으로 배치되어 노래의 힘을 극대화시키는 무기가 되었다. 그녀에게 음악, 그림, 사진은 서로 다른 표현양식이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창작과정임을 앨범을 통해 웅변하고 있다. 정밀아의 이름과 노래를 들어본 대중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소속사와 홍보 없이도 그녀의 정규앨범은 발매 후, 인디차트 46위에 랭크된 점은 놀랍다.
노래를 지배하는 정서는 온통 이별과 그리움의 회색빛으로 가득하기에 말랑말랑한 여성스런 노래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감정을 절제된 노랫말과 통기타 가락은 무게감이 느껴지는 예술적 향내를 뿜어낸다. 그녀의 음색은 7080시절의 질감에 가깝고 단순하고 느리지만 애틋한 정서가 치명적인 멜로디는 과거와 현재를 감싸 안는다. 슬픔과 기쁨의 정서를 절제하는 그녀의 노래는 싱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에 담긴 그리움의 정서는 청자를 그리운 사람과 공간, 애틋한 순간으로 순간이동을 시켜주는 마력을 발휘한다.
평범한 삶의 풍경을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리듯 노래하는 정밀아는 쓸쓸한 회색빛 정서와 밝고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희망의 정서를 ‘소리’라는 물감으로 풀어내는 신기를 펼쳐낸다. 그녀의 노래는 미처 주워 담지도 못한 채 무심하게 흘려버린 수많은 감정의 파편들이 되살리며 아름답던 추억과 챙겨주지 못한 모든 것들에 대한 미안함까지 환기시킨다. 단순해 보이지만 진심이 담긴 다양한 이야기로 들려주는 그녀의 노래들은 때론 진지하게 몰입하게 만들고 때론 애잔하게. 때론 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하며 놀라운 중독성을 발휘하는 마력의 가락이다. (part2로 계속)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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