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지점, 표정이 아직은 여유롭다](https://imgtenasia.hankyung.com/webwp_kr/wp-content/uploads/2014/11/2014111718252214573.jpg)
하지만 대회가 열리는 11월은 그야말로 광속으로 찾아왔다. 초가을의 불타던 의욕은 이미 차가워진 바람에 흔적도 없어진지 오래. 바쁜 업무를 핑계로 제대로 트레이닝을 해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기록단축은 커녕, 완주는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뇌구조의 절반을 넘어버린 가운데 지난 8일 오전 상암 월드컵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앞서 참가한 그린리본 마라톤에서 코스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결승지점의 업힐에 진이 빠져버려 기록단축에 실패했던터라, 며칠 전부터 지형이나 장애물의 형태, 그리고 장애물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미리 숙지한 것이 그나마 유일한 대비였다.
언뜻 살펴본 어반애슬론 서울 2014의 코스는 출발선을 넘어 상암월드컵경기장 내부로 들어서는 계단을 뛰어올라 초반 3km 내에 6개의 장애물이 몰려있고, 이후 3km 지점부터 7km 지점까지는 러닝, 이후 마지막 1km를 남기고 두 가지의 장애물을 넘는 형태였다.
마침내 들어선 경기장. 주최 측 집계에 따르면 이날 참가자 수는 3,000명 이상. 국내 첫 개최라는 점이 무색하게 현장 열기는 뜨거웠다. 일반 마라톤과 다른 장애물을 극복해야하는 경기 특성상 동호회를 중심으로 한 그룹형 참가자들이 많았던 분위기도 한 몫한 듯 하다. 또 전시용이 아닌 참여형 부스가 다른 마라톤에 비해 많이 마련된 영향도 컸다. 참가비를 내면 주는 기념품인 기념 티셔츠와 팔토시, 암밴드와 더불어, 다양한 스포츠 용품 경품에 잠시 완주 걱정을 지우고 신나게 줄을 섰다. 덕분에 이른 오전부터 축제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어 있었다.
보관함에 짐을 맡기고 무릎 테이핑까지 마친 뒤, 출발선 가까이에서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대부분의 마라톤에서 출발선에 선 순간, 오로지 ‘기록단축’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되새기기 바빴는데, 현장에 만연한 축제분위기 탓인지 아니면 ‘출발 드림팀’에서나 보던 장애물을 직접 체험하게 되리라는 기대심 탓인지, 호기심 반 설렘 반, 강력한 아드레날린이 느껴진다.
어느 새 다가온 출발 시간 11시. 서너그룹으로 나누어 대거 출발하게 되는 다른 마라톤과는 달리, 장애물에 참가자들이 몰리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15~20명 남짓 소규모의 인원이 10초 단위로 잘개 쪼개어져 출발을 했다. 그러다보니 출발에 걸린 시간만 상당했고, 앞서 출발한 인원들이 장애물을 넘는 모습을 영상을 통해 살펴볼 수도 있었다.
![월드컵 경기장 내부 계단 오르내리기 코스, 괜히 의욕이 불끈 생기는 코스다](https://imgtenasia.hankyung.com/webwp_kr/wp-content/uploads/2014/11/2014111718261418825.jpg)
이어진 코스는 마인드맵. 복잡하게 얽힌 막대 더미 사이를 헤쳐나가야 하는 구조의 장애물이다. 그런데 첫 진행된 대회인 탓에 문제는 이 구간부터 생겨버렸다. 10초 단위로 잘개 쪼개어 출발시켰음에도 참가자들은 두 번째 장애물에서 벌써 한꺼번에 몰려버렸던 것. 결국 마라톤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줄을 서 있는 광경이 연출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록 단축보다 즐기는 것이 목적인 참가자들이 많았던 탓인지 항의가 일어나는 소동은 없었다는 점이다. 여하튼 시간은 다소 지체되었고, 우여곡절 끝 두 번째 장애물을 넘었다. 역시 페이스 조절은 실패. 여기까지가 겨우 1km인데 말이다. 이렇게 되고보니 기록단축은 더 이상 목표가 될 수 없었다. 함께 참가한 동료들이 장애물을 제대로 넘었는지 확인할 수밖에 없는 경기의 특성 탓에, 개인의 기록단축보다 지치지않고 모두가 완주하는 것이 자연스레 목표로 재설정됐다.
![평균대 위를 걷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몇 차례나 떨어질 뻔](https://imgtenasia.hankyung.com/webwp_kr/wp-content/uploads/2014/11/2014111718264861063.jpg)
장애물 없이 불광천과 홍제천 러닝코스를 달리기 시작했다. 4km는 그리 긴 코스라 말할 수는 없으나, 이미 힘을 다 빼버린 상태인데다 호흡이 가쁘다보니 녹록치는 않았다. 구간 구간 개천을 지나는 돌다리도 있어 이 역시 마냥 단순한 러닝코스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개인 마라톤이 아니라 함께 하는 마라톤이 되버렸고 가까이서 페이스메이커처럼 서로를 살펴봐주는 동료들을 끌어주고 끌려가다보니 중간에 멈춰서 걷는 불상사는 생각보다 많이 발생하지 않았다. 호흡을 정돈하기 위해 딱 두 번 30초 정도 걸었던 것이 전부. 물론 완주 이후에는 끝까지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고 중간중간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한 이 순간이 가장 아쉽다. 주변의 경험담에 따르면, 한 번도 멈추지않고 내달려야 비로소 찾아온다(?)는 러너스 하이의 순간을 이번에도 맛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불광천 홍제천 러닝 코스, 힘들어 힘들어 말시키지마 표정](https://imgtenasia.hankyung.com/webwp_kr/wp-content/uploads/2014/11/2014111718314413168.jpg)
이어 의욕을 불태워주는 계단 코스 이후, 이윽고 보이는 결승점. 상쾌하게 골인하고 나니 의외로 10km 마라톤 최고 기록보다 34초 단축된 1시간6분 6초다. 내년에는 반드시 1시간 안에 들어오겠다는 의지를 불태워본다.
![마지막 장애물을 넘었다!](https://imgtenasia.hankyung.com/webwp_kr/wp-content/uploads/2014/11/2014111718270511752.jpg)
그렇지만 이 문제점들을 제외하고는 성공적인 상륙이 된 듯 하다. 무엇보다 전문 마라톤과는 또 다른 엔터테인먼트 레이스만의 매력이 잘 전달되었다. 마라톤이 힘든 스포츠가 아니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는 점을 잘 알려줬다는 점에서 마라톤 입문자들이 경험하기에도 좋은 스포츠이며, 서로를 응원하며 함께 장애물을 넘는 묘미 탓에 동호회 등 여러 단체의 팀워크에도 상당히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자 생활 6년차, 운동을 주기적으로 즐긴 기간은 그 절반인 3년이다. 운동을 하기 전의 인생은 과로 그리고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과도한 음주로 꽉 찬 잿빛이었다면, 마라톤이나 라이딩 등 레저 스포츠를 주기적으로 하기 시작한 뒤의 삶은 건강한 녹빛이다. 음주가 아닌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다보면 건강은 자연히 챙길 수 있게 된다. 여기에 꾸준히 늘어나는 완주 메달은 직장에서는 애처롭기 짝이 없는 어느 미생의 인생에 신선한 외도가 된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제공. 러닝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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