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참 팍팍하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녀석의 수학여행을 보내기도 쉽지 않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매일 같이 마트에 나갔다. 정규직 전환된다는 말에 ‘이제 좀 풀리나’ 싶었는데, 하루아침에 해고됐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영화 ‘카트’에서 염정아의 옷을 입은 선희다.

미스코리아 출신 염정아는 누가 보더라도 ‘화려한’ 삶을 살았을 것만 같다. 극 중 선희의 삶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염정아는 곧 선희였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엄마였고, 마트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였다. 화려한 의상이 아닌 푸른색의 마트 유니폼이 그녀를 대신했다. 선희로 보낸 몇 개월의 시간, 염정아는 그 시간을 텐아시아와 함께 이야기했다.

Q. 작품 선택 기준이 궁금하다. 필모그래프를 들여다보면, 끊임없이 변화와 도전을 해 온 것 같다. 이번 ‘카트’도 마찬가지고.
염정아 :
사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들어온 것 중에서다. 그중 최선을 다해 나한테 맞는 것, 하고 싶은 것 그리고 감독과 제작사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선택한다. ‘카트’는 캐릭터보다도 전체적인 이야기와 명필름이 선택 이유다. 누가 읽어도 감동적이고, 와 닿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도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많이 울었다. 그리고 제작사가 명필름이니까 당연히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Q. 만약 제작사가 명필름이 아니었다면, 선택하는 데 조금은 더 어려웠을 거란 의미인가.
염정아 : 조금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어떻게 만들어질 것인지도 생각해야 하니까.

Q. 여러 인터뷰를 보니까 남편이 원하지 않는 작품 알아서 피한다고 했더라. 그리고 자녀를 고려해서 선택하는 것도 있을 텐데.
염정아 :
당연히. 아이들이 봤을 때 해로운 것도 피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찍는 기간에는 극 중 캐릭터의 기분에 젖어서 살게 된다. 그게 너무 힘들 것 같으면 피할 것 같다.

Q. 작품에 푹 빠져들고, 쉽게 빠져나오는 성향이 아닌가 보다.
염정아 :
아니, 잘 빠져나온다. 그런데 영화 찍는 동안에는 그 사람처럼 상상해야 하고, 몰입해야 하니까. 그런 순간들이 힘들다는 거다.


Q. 배우 염정아와 사람 염정아, 그 사이에서 오는 괴리 같은 건 없다. 가령, 마트에 자주 간다더라도, 대중에게 ‘카트’ 속 염정아의 모습은 분명 신선한 지점이다.
염정아 :
괴리는 있지. 근데 연예인 생활이 오래됐고, 그런 것들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카트’ 속 선희 역할에 잘 녹아나는 거다.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다. 그럼에도 순간순간 힘들 때가 있다. 음….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대중 앞에 혼자 덩그러니 내던져졌을 때, 내가 모르는 사람이면 너무 편하겠다는 생각이다. 가령 다른 엄마들하고 똑같이 하는데, 나 같은 경우엔 얼굴이 알려졌으니까 불편할 때가 많다. 아이들한테도 장점보다는 단점일 수 있는 부분이다. 당연히 기뻐서 하고, 해야 하는 일임에도 가끔 불편할 때가 있다.

Q. ‘엄마’ 염정아는 어떤 모습인가.
염정아 : 굉장히 밝고, 아이들 일거수일투족을 신경 쓰는 엄마다. (치맛바람 세겠다.) 그런 쪽으로는 안 하고 싶다. (웃음)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엄마랑 같이 있는 시간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Q. 출연 배우 대부분이 여자다. 감독도 여자 감독이고. 이런 현장은 처음이었을 텐데 어떤 느낌이었나.
염정아 :
편했다. 굉장히 편했다. 거리낄 것도 없고. 분장 등 신경 써야 할 것을 다 내려놓은 상태다. 옷은 다 똑같은 옷이었고, 그러다 보니 예쁜 것에 대한 신경전이 있을 리도 없고, 연기도 서로 보완해가면서 하는 거였다. 동지라는 느낌이 컸고, 같이 일하는 배우들하고 정말 편했다. 단점은 전혀 없었다.

Q. 음….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닐지. 어린 나이들의 여자들이 모였다면, 굉장히 피곤하지 않았을까. 알게 모르게 자존심 싸움도 했을 것이고.
염정아 :
그럴 수도. 젊은 여자들끼리 있으면 좀 다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미스코리아나 국제대회 나갔을 때도 똑같이 느꼈다. 국제대회는 다 외국인인데, 결국 여자들은 다 똑같더라. (웃음) ‘카트’에선 다들 초월했으니까. 마음 착한 아줌마들만 모여 있다. 그래서 더 와 닿고, 슬프고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Q. 극 중 여러 배우 중에 김영애, 문정희 등과 주로 호흡을 이룬다. 문정희는 처음 만났고, 김영애는 ‘로열패밀리’에서 호흡을 맞췄다. 그땐 대립관계였고. 각각 어떤 느낌이었는지 궁금하다.
염정아 :
나와 정희가 선희와 혜미였던 게 알게 모르게 친해지는 데 많이 작용했다. 그래서 촬영장에서나 밖에서나 서로 좋아하고, 찾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도 매우 친해져서 개인적으로 연락 자주 한다. 선생님은 여전하시다. ‘로열패밀리’ 이후 연세 많은 친구로 지낸다. (웃음) 정말 소녀고, 예쁘시고, 귀여우시다.


Q. 마트 계산원을 연기하는 여배우들 무리가 만들어가는 호흡도 좋았다.
염정아 :
대화를 많이 나눈 건 아니지만, 그 안에 있으면서 자연스러웠다. 마트 안에 내 동료 같았다. 눈만 봐도 알고, 저 사람이 슬프면 나도 같이 울고. 저 사람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지만, ‘우린 하나’라는 게 있었다. 그리고 다 숙소 생활을 했다. 세트가 용인이고, 집이 동탄이라 난 집에 갔지만. 밤마다 시끌벅적했다고 들었다.

Q. 영화 찍은 후에 마트 가면 계산원을 보는 눈빛이 좀 남다르겠다.
염정아 :
아무래도 남 같지 않다. 마트 계산원으로 일하는 분들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까지도 더 유심히 보게 된다. 직접 가서 살갑게 하진 못하겠지만, 관심은 간다.

Q. 소녀 팬들에게 관심은 도경수의 엄마일 것 같다. 아이돌인 것을 떠나 연기가 처음이다.
염정아 :
연기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감독님이 경수를 옆에 두고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다만 연기할 때 진짜 엄마한테 하듯이 편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 거다. 그래서 편하게 해줬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그거밖에 없었다.

Q. 아직 어리지만, 실제 자녀를 키우고 있지 않나. 연기하면서 자녀 생각도 났을 것 같고. 특히나 극 중 태영(도경수)이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내미는데, 정말 울컥하더라.
염정아 :
선희로 있을 때 경수가 아들 같았다. 그리고 태영은 엄마한테 말만 살갑게 안 한다 뿐이지 삐뚤어지지 않고 착하게 큰 거다. 또 봉투를 내밀 때는 자랑스러운 마음보다 나 때문에 일찍 철든 게 오히려 미안했다. 철들어서 고맙지만, 너무 일찍 철들게 한 것 같은 거다. 나도 그 신 찍을 때 많이 울었다. 가족에 있어 감정은 누구나 똑같은 것 같다. 가족이라서 가능한 마음들, 그걸 훌륭하게 보여줬을 때 미어지는 심정은 정말 많이 와 닿았다.

Q. 아이돌이라서 다른 점은 없었나. 그리고 엑소에 대해 잘 몰랐을 것 같다.
염정아 :
다른 신인들과 똑같았다. 다만 촬영장 주변이 시끌시끌했다는 것. 그래서 아이돌이 어떻다는 건 와 닿진 않는다. 근래에 영화 홍보하면서 ‘이렇게 인기 많은 아이였어’라고 놀라고 있다.

Q. 엑소 노래는 좀 알고 있나. 좀 찾아보고 그랬을 것 같은데.
염정아 :
‘으르렁’ 노래가 좋은 것 같고, 춤도 멋있더라. 그리고 뭐더라. ‘미녀와 야수’ 맞나? (나중에 확인한 결과, 엑소의 ‘늑대와 미녀’였다.) 그 뮤직비디오도 찾아서 봤다. 경수가 현장에서보다 아주 화려해 보이더라.


Q. 흥미롭게도 그간 해온 영화를 보면, 유독 남편(또는 아이들의 아빠)이 없다. 이번에도 자주 언급은 되는데 어디서 뭘 하는지 정작 나오지는 않는다. 그런데 전작 ‘간첩’에서도, 더 올라가 ‘소년, 천국에 가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염정아 :
나만 그러는 건가? 이번엔 그래도 가장 현실적이다. 지금까지 했던 건 뭔가 현실에 없을 것 같은 캐릭터를 많이 했다. 또 현실에 있다면 세고 강한 캐릭터를 많이 했다. 그런 극적인 인물을 좋아하나 보다. 그리고 그런 연기를 하는 게 재밌다. (웃음)

Q. 실제 염정아는 조직 내에서 어떤 성격인가. 묵묵하게 일하는 초반부의 선희인가, 불의에 맞서 앞장서는 중후반부의 선희인가.
염정아 :
맨 앞에 서기는 싫고, 그렇다고 뒤로 빠지는 것도 싫다. 두세 번째 정도를 선호하는 것 같다. (웃음) 굳이 앞서진 않겠다. 다만 뜻을 함께한다. 이런 마인드다.

Q. 가장 신경 써야 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염정아 :
대중들이 영화를 볼 때, 선희의 감정을 가장 많이 따라가게 된다. 그래서 선희의 감정선이 중요했다. 지극히 현실적이어야 했고, 정말 그럴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일 매일 가장 큰 숙제였다.

Q. 영화를 홍보할 때도 이전과는 좀 다른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염정아 :
의미 있는 영화고, 사회에 힘을 줄 수 있는 영화라고 믿는다. ‘카트’는 우리 이야기다. 그리고 사명감 같은 것도 있고, 영화에 대한 자신도 있다. 소리 내서 ‘많이 봐 주세요’라고 하고 싶은 영화다.

Q. 영화와 드라마, 균형 있게 꾸준하게 해 오고 있는데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게 있나.
염정아 :
들어오는 작품 중 하고 싶은 것, 좋은 것 위주로 할 뿐이다. 뭘 하고 싶다는 것보다 만드시는 분들이 나한테 어떤 것을 줄까 궁금하다. 파격적인 역할도 타당성이 있다면 가능하다. 연기에 대한 욕심, 배역에 대한 욕심은 있으니까.

Q. 어떤 연기자로 기억되고 싶나.
염정아 :
가깝게는 김영애 선생님처럼 존재감이 확신한 배우, 세계적으로 본다면 메릴 스트립 같은 배우면 좋겠다. 그 연세에도 존경받고, 다양한 매력을 가진 배우다. 그렇게 되면 좋겠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SNS DRAMA][텐아시아 뉴스스탠드 바로가기]
[EVENT] 뮤지컬, 연극, 영화등 텐아시아 독자를 위해 준비한 다양한 이벤트!! 클릭!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