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음악 관계자들에게서 케이팝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그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그레이트’라고 무조건적인 칭찬을 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케이팝보다는 막걸리가 미국에 진출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라고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다.(물론 이런 말은 기사에 쓰기 어렵다) 이렇게 극단적인 반응들이 나오는 이유는 대개 케이팝을 제대로 느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미사여구 식의 칭찬이나 고민 없이 던지는 폄하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들의 케이팝에 대한 관심도 및 이해도는 점점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외국 관계자들의 케이팝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 6~8일 서울 이태원에서 열린 2014 서울국제뮤직페어(MU:CON SEOUL 2014, 이하 뮤콘)를 통해 해외 음악관계자들이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아이돌그룹부터, 록, 퓨전국악, 일렉트로니카, 재즈, R&B 등 다양한 한국 뮤지션들의 음악을 체험했다. 텐아시아에서는 그들 중 프로듀서 토니 마세라티, 디자인뮤직의 작곡가 안느 쥬디스 위크, XL레코딩스의 프로듀서 로디 맥도날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안느 쥬디스 위크(Anne Judith Wik)는 노르웨이의 작곡/프로덕션 회사 디자인뮤직(Dsign Music) 수석 작곡가로 세계적인 작곡가팀 ‘스타게이트’ 출신이기도 하다. 노르웨이에 거점을 두고 있는 디자인뮤직은 미국, 아시아 등 여러 나라의 아티스트들과 작업 중이다. 케이팝 아티스트들 중에는 소녀시대, 엑소, 보아, 샤이니, 에프엑스, 이효리 등의 곡을 만들었다. 디자인뮤직은 여러 나라의 작곡가들이 함께 스튜디오에 모여 작업을 하는 ‘송캠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 중이다. 엑소의 ‘늑대와 미녀’가 재작년 ‘뮤콘’, SM, 유니버설이 함께 한 송캠프를 통해 만들어진 곡이다. 안느 쥬디스 위크를 8일 논현동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Q. 꾸준히 케이팝 작업을 해오고 있다. 한국에는 몇 번째 방문인가?
안느 쥬디스 위크(이하 앤): 세 번째 방문이다. 올 때마다 참 좋다. 음식도 맛있고, 사람들의 스타일, 서울 거리의 모습도 좋다. 영감을 주는 곳이다.

Q. 케이팝 작업은 처음 어떻게 접하게 됐나?
앤: 2008년에 시작을 했다. 처음 작업한 곡은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였다. 디자인뮤직이 유니버설뮤직 퍼블리싱과 계약을 했을 때 퍼블리셔가 우리에게 아시아에서 케이팝 붐이 일고 있으니 함께 작업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유튜브를 통해 케이팝 뮤직비디오들을 찾아봤는데,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신선한 음악들이었다. 작업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Q. 디자인뮤직에서는 케이팝 외에 미국 등 여러 나라의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대중음악과 케이팝의 다른 점이라면?
앤: 케이팝은 매우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다. 보통 5명 이상의 보이밴드들, 소녀시대와 같이 9명의 소녀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멤버가 많다보니 그들 모두가 빛날 부분을 유념하면서 작업해야 한다. 그렇다보니 특정 멜로디에만 집중하지 않고 매우 복합적인 구성의 곡이 나오게 된다. 이건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하지만 복잡한 만큼 시도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케이팝 작업을 할 때 해보고 싶은 걸 마음껏 해보는 편이다. 정해진 법칙은 없다.

Q. 당신이 작곡에 참여한 소녀시대의 ‘아이 갓 어 보이(I Got A Boy)’는 매우 복잡한 곡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만들게 됐나?
앤: ‘스위치 오브 송’이라고 해서 1분~1분 30초 정도의 다른 곡들을 이어 붙이는 작업이 있다. ‘아이 갓 어 보이’는 그런 방식으로 만들었다. SM에게 그 곡을 주면서 “한 번도 못 들어본 노래일 것”이라고 말했었다. 처음에 그 곡 데모를 보낼 때에는 3개 정도의 파트로 이루어졌었다. 그런데 SM에서 더 많은 파트를 붙여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우리는 다시 스튜디오로 들어가서 다른 파트를 연구했다. 그래서 하나의 곡에 인트로, 아웃트로를 포함해 6~7개의 파트가 더해진 곡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마치 음악으로 여행을 하는 듯한 곡이다.

Q. SM을 비롯해 한국의 여러 기획사와 작업을 했다. 한국 기획사와 작업을 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앤: 먼저 우리가 만들어놓은 데모를 레코드 컴퍼니에 보낸다. 그러면 의뢰인들이 곡을 고르고 어떤 부분을 바꿔달라고, 가령 랩 파트를 넣어 달라, 멜로디를 다르게 해달라는 식으로 요구를 한다.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오면 각 멤버들의 파트, 안무 등을 고려하면서 곡을 계속 수정해나간다.

Q. 아이돌그룹의 음악은 곡 못지않게 퍼포먼스가 매우 중요하다. 퍼포먼스까지 생각하면서 곡을 만드는 것인가?
앤: 그렇다. 무대 위에서 어떤 안무가 나올지, 어떻게 하면 더 ‘쿨’하게 보일 수 있을지를 다 신경을 쓰면서 곡을 만든다.

Q. 소녀시대, 샤이니, 에프엑스, 보아, 이효리 등 많은 히트곡을 만들었다. 만족도가 가장 컸던 곡은?
앤: 다 만족스럽다. 특히 처음 작업했던 ‘소원을 말해봐’가 자랑스럽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1위를 하지 않았나. 그 외에 보아의 ‘허리케인 비너스’ 엑소의 ‘늑대와 미녀’, 그리고 최근에 작업한 레드벨벳의 ‘해피네스’ 등 모두가 다 좋았다. 어느 하나만 고를 수는 없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케이팝 작업이 대기 중이다!

Q. SM의 유영진, 켄지, 히치하이커를 비롯해 박근태 작곡가 등 여러 한국 작곡가들과 작업을 했다. 박근태는 앤 당신을 천재라고 하던데.
앤: 하하하! 박근태 역시 대단한 작곡가다. 그를 비롯해 한국의 작곡가들은 정말 훌륭하다. 그들과 작업하는 것을 매우 즐긴다. 동양과 서양이 만난다고 할까. 그들은 정말 ‘쿨’한 트랙과 비트를 만들어낸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들려줘서 내가 놀랄 때가 많다.

Q. 송캠프의 장점은 무엇인가?
앤: 서로 취향과 배경이 다른 작곡가들이 만나는 것이다. 같이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다보면 마법처럼 새로운 곡이 나오곤 한다. 전혀 다른 아이디어를 가진 이들이 만나서 전혀 생각지 않은 방향으로 곡 작업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매우 창조적인 작업이다. 한국 작곡가들과도 송캠프로 함께 작업했다.



Q. 최근에는 레드벨벳 ‘해피네스’를 만들었다.
앤: ‘해피네스’는 작년 노르웨이에서 열린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송캠프인 ‘송엑스포’에서 만든 곡이다. 우리 스튜디오에 넵튠스의 채드 휴고, 그리고 프로듀서 윌 심스가 다 같이 모여 이 곡을 만들었다. 트랙에다가 다 같이 노래를 불러보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을 섞어서 만든 곡이다. 항상 그렇게 ‘미친 듯이’ 작업을 한다.

Q. 본인의 음악적 취향이 궁금하다. 어린 시절에 어떤 음악을 좋아했나?
앤: 장르는 가리지 않았다. 일렉트로니카, 록 등 다양하게 들었다. 특히 좋아했던 것은 90년대 R&B다. 내가 10대였을 때 그 음악들을 정말 좋아했었다. 그 90년대 음악이 나에게 좋은 영향들을 줬다. 그리고 유행은 돌고 돌기 때문에 그 시절의 스타일들이 다시 각광받을 것이다.

Q. 디자인뮤직이 만든 케이팝을 보면 R&B를 중심으로 록, 일렉트로니카 등 다양한 장르가 혼합돼 있는 경우가 많다.
앤: 정말 유니크하지 않나? 그러한 믹스가 케이팝이 만들어지는 중요한 과정이고, 그것이 곧 케이팝의 정체성이라고 본다. 그처럼 두려워하지 않고 음악들을 믹스하고,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는 것이 다음 레벨로 넘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Q. 작업 과정에서 SM이 특별히 요구하는 것이 있나?
앤: 작업을 할 때 ‘브리프(brief, 일종의 제안서)’를 준다. 가령, 소녀시대, 에프엑스가 새로운 곡을 찾을 경우, 원하는 장르, 스타일을 요구하면서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를 준다. 우리는 그 ‘브리프’를 따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철저히 무시하고 작업을 하기도 한다.(웃음) 곡을 만드는데에는 정해진 법칙이 없으니까.

Q. 케이팝 외에 또 어떤 작업들을 하는가?
앤: 미국, 아시아 여러 나라와 함께 곡 작업을 하며, 뮤지컬 작업도 병행하는 중이다. 디자인뮤직 본사는 노르웨이에 있는데 최근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도 작업실을 마련했다. 원래는 아시아 마켓에 집중했었는데, 최근에는 미국 팝가수들의 의뢰도 늘고 있다. 한국 뮤지션들과는 앞으로도 계속 작업하고 싶다.

Q. 케이팝이 아시아 외에 미국에서도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앤: 물론이다. 영어로 노래한다면 미국에서 통할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다.

그들이 본 케이팝 ② 토니 마세라티 “케이팝 자체가 한국적인 사운드다” (인터뷰)

그들이 본 케이팝 ③ 로디 맥도날드 “기획사가 만들어낸 케이팝의 이미지도 곧 문화” (인터뷰)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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