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미미는 작고 귀여운 소녀 같은 분위기와는 달리 어른스럽고 예술가적인 기질이 넘치는 외유내강 형이다. “외모로는 저를 언니로 보시지만 실제로는 이해심 많은 작은미미가 늘 언니 같아요.”(큰미미) 아버지의 직업으로 인해 작은미미는 2살 때 경남 마산으로 이사한 것을 시작으로 초등학교를 무려 다섯 번이나 옮겨 다녔고 일본, 미국에서도 거주한 적이 있다. 사교적인 그녀의 성품은 잦은 이사로 인해 친구를 사귀기 힘들었던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배양한 나름의 적응 노하우다.



작은미미는 대구광역시 대신동의 교육자 집안에서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민주화운동을 했던 아버지 박홍규씨는 대학 교수이고 어머니는 고등학교 교사, 할아버지도 고등학교 교감선생님 출신이다. 4살 때 일본 오사카에서 2년 간 살다 귀국해 경남 창원에서 성장했다. 작은미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는 아빠와 함께 무수한 영화를 섭렵했다. 5살 때, 가족과 일본 현지의 온천여행을 가서 보았던 호러영화는 밤에 불을 끄고 자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다. “지금도 불을 끄고 공연할 때는 무서워요. 공중화장실도 항상 누가 보고 있는 것 같은 공포가 있습니다.”(작은미미)



교육열이 대단했던 어머니는 7살 때부터 딸을 동네 ‘이화음악학원’에 보냈다. 항상 머리에 보랏빛 그라데이션이 들어간 안경을 쓰고 엄하게 피아노를 가르치며 ‘이대 나온 여자’라는 것을 강조한 40대 피아노학원 원장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다. 유명 브랜드 옷만 입었던 원장 선생의 동갑내기 아들은 바이올린 연주 실력으로 또래 여자아이들을 홀렸다고 한다. “그야말로 마성의 모자였어요. 저도 그 남자아이에게 반했는데 서로 무관심 전략으로 일관해 제 첫사랑은 시시하게 끝났습니다.(웃음)”(작은미미)



경남 창원시 용남초등학교 2학년 때, 친하게 지냈던 동네친구 심유진의 집에서 본 영화 ‘마지막 황제’의 비오는 장면에서 들었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연주곡 ‘Rain’ 또한 그녀는 잊지 못한다. “10년 뒤에 다시 들었는데 완전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라는 사실을 알고 친구 부모님에게 감사한 마음이었죠.(웃음)”(작은미미) 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 알링콘으로 이사를 갔다. 음악을 좋아하고 6학년 오빠들과 데이트를 즐겼던 성숙한 아이였던 동네 생선가게 딸 멜리사와 친하게 지냈다. 당시 딸을 피아노 영재로 여겼던 어머니로 인해 유명 음악학교인 잉글랜드 뮤직 컨사버토리의 영재 프로그램 테스트를 받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귀국해 대구 동도여중에 진학했다. 빨간 드레스와 치마를 입고 다리를 쫙 벌리고 첼로를 연주하는 도발적인 그림을 보고 섹시한 여성이 되고 싶어 첼로레슨을 자청해 받기 시작했다. 글쓰기를 좋아해 중3 때는 친구들과 음악학교 학생들의 치열한 경쟁과 사랑을 소재로 돌림소설을 쓰기도 했다. 대구여고 시절 3년 내내 반장을 했던 작은미미는 극심한 사춘기를 겪었다. 부모님이 다투면 방문을 잠그고 아파트 단지가 떠나가도록 볼륨을 높여 베토벤의 ‘황제’를 틀어 난리가 났다. 고3 여름방학 때는 아빠차를 훔쳐 온 남자친구와 저녁 12시에 나갔다가 새벽 6시까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너바나, U2, 시나위, 유앤미블루, 노브레인 등 록 음악을 들으며 질주하는 일탈의 정점을 찍었다.


고2까지 피아노 레슨을 받았지만 음대진학을 포기하고 한예종 영상원 시나리오과에 입학했다. 수능 후, 동네음악학원에 기타를 배우러 갔다. 키가 작았던 기타선생은 국자 같이 큰 손으로 자꾸 다른 곳을 만져 보름 만에 그만두었다. “혜은이의 감수광을 통기타로 마스터한 기쁨을 나누려 방학역 앞에 있던 비밀스런 공간이었던 큰미미 방에서 함께 노래하고 영화 로미오와 쥴리엣 비디오도 봤습니다.”(작은미미) 작은미미는 한예종 최초 음악동아리인 소규모 오케스트라 ‘아마ama’에 가입해 첼로를 연주했다. 당시 학교보다 홍대 인근에 모던 록, 브릿팝 뮤직비디오 틀어주었던 음악감상실 ‘빽스테이지2’를 아지트로 삼아 학사경고를 2번 연속 받았다. 3번 경고 받으면 아웃인지라 휴학을 하고 가족들과 함께 일본 교토로 반 년 정도 떠났다가 1년 후 복학했다.



큰미미가 연출한 독립 뮤지컬영화 ‘한 여름 밤의 꿈’에 주연 록커 역으로 출연했다. 오케스트라 멤버였던 남학생들이 모두 군대를 가버려 보름 배웠던 통기타 실력으로 키보드, 장구, 기타로 이루어진 3인조 걸밴드 ‘물체주머니’를 결성했다. “굴소년단 키보드 김혜린과 포크가수 정밀아가 멤버였어요. 그때 처음으로 노래를 만들었는데 아마추어 증폭기의 한밭이 저희 노래를 듣고 성인민요를 추구하는 밴드라 했지요, ‘떡뽁이’ 같은 노래는 가사는 야하고 해맑은 멜로디였는데 알고 있는 코드가 단순해 동요 수준이었습니다. 주로 학교에서 공연하다 클럽 빵에 오디션을 보러 간 것이 문제였습니다.”(작은미미)



클럽 빵의 오디션은 밴드해체를 불러왔다. “저희 3명은 모두 혈액형이 B형이라 잘 될 수가 없었어요. 오디션이 끝나고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아 서로 너 때문에 망했다고 서로 싸움이 났어요. 그런데 한 달 뒤에 연연하라는 연락이 와 죄송하지만 해산 했노라 말씀드렸죠(웃음).”(작은미미) 6년 간 다닌 대학을 졸업하고 변형주감독과 영화 ‘발레교습소’ 각색 일을 시작했다. “리오만 쓰고 살던 암흑기죠. 죽도록 일만 했지만 영화화된 결과물이 극히 부족해 심리적으로 위축되었습니다.”(작은미미) 영화시나리오 작업에 피로감을 느끼던 작은미미는 총각귀신이 자신을 만지는 기괴한 경험을 했다. “느낌이 좋다고 말하고 다니면 총각귀신이 친구까지 데려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댄스 커뮤니티를 운영하던 큰미미에게 무섭고 우울하다고 말했더니 오라고 해 춤을 배우러 갔습니다.”(작은미미)



스윙댄스를 9개월간 배운 후 초급자 강습을 시작한 큰미미는 에반스 건물에 인터넷 커뮤니티 ‘딴따라 땐스홀’을 창립해 운영했다. 2008년 같은 시기에 작은미미와 더불어 2인조 밴드 기타트윈스를 결성한 밴드 눈뜨고코베인의 보컬 까막귀와 신입사원 이기타가 춤을 배우러 왔다. “이기타가 솔로활동을 시작하는 친구가 여성코러스 2명이 필요하다고 연결해주었습니다. 그게 장기하였죠.”(작은미미)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사진제공. 작은미미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SNS DRAMA][텐아시아 뉴스스탠드 바로가기]
[EVENT] 뮤지컬, 연극, 영화등 텐아시아 독자를 위해 준비한 다양한 이벤트!! 클릭!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