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한국에서 ‘여배우의 길’이라는 것이 그리 다양하지가 못하다. 필모그래피를 살피면 이 배우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대략적으로 가늠이 된다. 송혜교 역시 초반에는 그랬다. 드라마 ‘가을 동화’에서 얻은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무기로, 제작비가 큰 영화나 대중적인 드라마의 안전한 캐릭터를 오갈 것이라는 시나리오.Q. ‘아름답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젠 그 수식이가 별 감흥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한 시선을 비웃기라도 하듯 어느 순간부터 남들이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을 통해 현실 세상 속으로 성큼 들어오더니, 저예산 독립영화 ‘오늘’에서 자신을 실험하고, 중국 작품에 연이어 출연하며 모험을 이어나갔다. 송혜교는 현실에 안주하는 배우가 아니다. 그녀는 작품 안에서 매일매일 변모하고 진화하길 원하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그런 그녀가 더 넓은 세계를 만나기 위해 선택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런 그녀의 길에 예상치 않게 나타난 변수는 최근 불거진 세금 탈세 논란. 워낙 대중의 사랑이 컸던 배우이기에 논란의 크기도 그녀에게 향하는 질타의 목소리도 크다. “저의 불찰로 인해 ‘두근두근 내 인생’에 참여한 분들이 아파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그녀의 바람이 얼마나 전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결국 남은 것은 송혜교 스스로가 자신을 다시 증명하는 것일 텐데, 분명한 것은 그녀가 이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송혜교의 앞에는 어떤 길이 놓여 있을까.
송혜교: 아니다.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다.(웃음)
Q. 송혜교 같은 미모를 지닌 사람은,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면 어떤 생각을 할까.
송혜교: 내가 공리를 굉장히 좋아한다. 지난 6월 상하이국제영화제에 갔다가 대기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어찌나 아름답고 멋있으시던지. 완전 팬의 입장이 돼서 “와, 여신이다. 당신의 빅팬이다”라고 인사를 드렸다. 내가 중국에서 활동을 해서 그런지, 영광스럽게도 나를 알고 계셨다. 헤어질 때 양쪽 볼에다가 뽀뽀를 해주셨는데, 너무 좋아서 한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Q. 공리의 올해 나이가 50인 걸로 안다. 50의 송혜교는 어땠으면 좋겠나.
송혜교: 공리처럼 나이가 들면 너무 좋겠다. 카리스마 넘치게. 멋지게. 대화를 나눠보니 수줍음도 굉장히 많으셨다. 소녀감성이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했다.
Q. 극중 열일곱의 미라(송혜교)는 가수의 꿈을 버리고 엄마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 결국 인생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송혜교도 어릴 때 연기 대신 평범한 길을 택했다면 현재, 서른 셋 인생은 어땠을까.
송혜교: 원래 꿈이 연기자는 아니었다. 우연히 나간 교복모델 선발대회(1996년)에서 상을 받고, 소속사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연기를 시작하게 됐다. 내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연기를 시작한 것은 아닌 거다. 어렸을 때 “너 꿈이 뭐냐”고 누군가 물어오면 디자이너라고 했었다. 손으로 만지는 걸 특히 좋아하는데, 아마 연기를 안했다면 액세서리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Q. 처음 ‘두근두근 내 인생’ 시나리오를 봤을 때, 어떤 부분이 당신 마음을 건드렸나.
송혜교: 자칫 신파로 비칠 수 있는데, 나는 이 영화가 신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고 좋았던 것도 그 부분이었다. ‘관객을 울려야해!’ 이게 아니라, 등장인물들은 웃으면서 가볍게 얘기하는데 그것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씬들이 좋아서 이 영화를 선택했다.
Q. 김애란 작가의 원작 자체가 억지로 울리지 않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그 부분을 이재용 감독님이 아주 잘 살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강동원과 송혜교가 캐스팅 되면서 원작의 현실적인 미라와 대수(강동원)가 판타지로 승격된 면이 없지 않다.(웃음)
송혜교: 원작 자체의 워낙 인기가 많아서인지, 캐스팅 기사가 났을 때 반대의견도 많았다. ‘어떻게 송혜교랑 강동원이 부모를 연기 해?’ 하는 반응들. 감독님도 본인이 원하는 캐스팅을 했지만, 그 부분에 대해 고민과 대비를 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부분에 있어서는 감독님을 전적으로 믿고 갔다. 그리고 사실, 모두가 생각하는 모성애 강한 엄마 역이었다면 소화를 못했을 거다. 그런데 미라의 나이가 현재의 나와 같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밝고 명량한 모습이 강해서 다가가는데 부담이 덜했다. 아들 아름이(조성목)도 베스트프렌드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했다. “너 어제 뭐 했냐? 밥은 먹었냐?” 말을 툭툭 던지면서.(웃음) 그런 것들이 연기하는데 도움이 됐다.
Q. 말한 대로 열일곱에 아이를 낳은 엄마라서 ‘엄마’라는 어감이 주는 느낌이 덜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장성한 아들을 둔 엄마를 언젠가 연기하게 된다면, 여배우로서 어떨 것 같나. 그런 순간을 생각하면 두렵나?
송혜교: 아직 피부로 와 닿지 않아서 그런지 그 순간이 두렵지는 않다. 다만 그때가 되면, 배우로서 두렵다기보다는 여자로서 두려울 것 같다. ‘여자로서 내가 나이가 먹었구나’, ‘저 자리는 이제 나보다 젊은 친구들이 서는 구나’ 하는 그런 묘한 감정에서 오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싶다.
Q. 교복 입은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 걸로 봐서, 그 시간이 빨리 올 것 같지는 않다.
송혜교: 하하하. 꿈이 아이돌인 아이었으니, 얼마나 멋 부리는 걸 좋아했겠나. 그래서 교복도 모범생들과 다르게 타이트하게 줄이고 깻잎 머리를 했는데, 그렇게 하고 거울 앞에 서니 너무 민망했다. 그리고 해맑게 웃는 씬을 클로즈업으로 찍고 모니터를 봤는데, 주름이 너무 자글자글한 게 아닌가. 주름 때문에 스태프들이 상의도 했다. “이거, 어떻게 하지?” 이러면서.
Q. (웃음)그때의 심정은 어땠나.
송혜교: 숨고 싶지. 다행히 조명이 도와줘서 영화에는 괜찮게 나왔다.
Q. 클로즈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때 극단적 인물 클로즈업이 큰 화제였다.
송혜교: 그때 클로즈업은, 외모를 부각시키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연기한 오영은 시각장애인이다 보니 몸으로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많은 동작을 보여줄 수 없었기에, 얼굴로 심리를 표현하는 수밖에 없었다. 감독님께서 그걸 캐치하시고, 빅 클로즈업을 통해 미세한 찡그림이나 근육의 떨림이 감정적으로 잘 표현될 수 있도록 해주셨다.
Q. 배우입장에서 클로즈업이 들어오면 어떤가. 어떻게 보면, 배우를 믿기 때문에 카메라가 들어오는 것이기도 한데.
송혜교: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작품 안에서 예쁘게 보이겠다는 마음은 예전부터 없었다. 예뻐 보일 수 있는 곳은 많으니까. CF, 화보, 기자회견 등 충분히 꾸밀 수 있는 곳이 많기 때문에 작품에서까지 송혜교로 보이고 싶지는 않다.
Q. 미세한 표정이라고 했는데,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초반에 약간의 연기논란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송혜교하면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믿음이 대중들 사이에 깔렸고. 그런데 사실 ‘그들이 사는 세상’과 지금의 연기가 크게 차이 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어떤 변화가 감지되는 것은 뭔가 아주 미세한 차이에서 오는 것인데, 그 미세한 변화가 뭔지 간파하고 있나.
송혜교: 많은 분들이 뭔가가 달라졌다고 해주시는데,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경험이 쌓이면서 감정이 풍부해진건가 싶기도 하고. 30대에 들어서서 연기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 건 확실히 있다. 그게 아마 왕가위 감독님의 ‘일대종사’를 만난 시점에서 변한 것 같다. 20대에도 연기에 대한 욕심은 있었지만, 그때는 마냥 내가 부각됐으면 좋겠고, 어려운 씬은 빨리 넘어갔으면 좋겠고, 일 빨리 끝내고 가서 쉬어야지, 하는 게 컸다. 현장에 있는 게 행복한 느낌은 아니었던 거다. 그런데 30대에 들어서,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편하다는 선배님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게 됐다. 내 촬영분량이 끝나도 상대배우가 하는 걸 보고 가는 게 너무 재미있고, 끝나고 나서 내일 할 씬들에 대해 감독님과 토론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고, 또 어려운 씬들이 왔을 때 그 씬을 빨리 피하려고 했던 내가 ‘이 씬을 어떻게 고쳐서 더 풍부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하고. 그런 것들에서 재미를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바뀐 것 같다. 그리고 ‘일대종사’를 시골에서 찍었는데, 감독님이 촬영 전날에야 다음 날 일정을 알려주시곤 했다.
Q. 그건 중국 촬영 스타일인가, 왕가위 감독님 스타일인가.
송혜교: 왕가위 감독님 스타일이다. 내일 찍는다고 했다가 1주일 동안 못 찍는 경우도 있고, 굉장히 유동적으로 촬영을 하신다. 내 입장에서는 그러다보니 혼자 방 안에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덩달아 감정의 기복이 심해질 때도 있었다. 현장도 쉽지 않았다. 감독님이 “장영성(송혜교)은 청순한 여자야”라고 해서 그에 맞춰 연기했는데, 갑자기 “못된 여자로 해봐!”, “이번엔 요부라고 생각해서 연기해 봐” 하시고. 한 캐릭터를 정말 여러 가지로 바꿔서 주문하셨다. 어느 순간 혼란이 왔다. 결론도 안 나고. 그런데 감독님은 저 구석에 앉아서 웃고만 계시고. 나로서는 미치는 거지.
Q. 배우를 제대로 ‘들었다 놨다’ 하는 감독님이시구나.
송혜교: 그러니까. 솔직히 ‘감독님이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나’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나중에야 알았는데, 감독님이 나의 이전 모습이 조금이라도 나오면 모두 NG를 내셨다. 그것이 감독님 영화를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내가 지니고 있는 틀을 깨뜨려주고 싶었다고 하더라. “내가 널 애정하니까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당시엔 몰랐다. 그런데 ‘일대종사’를 끝내고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을 찍는데,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안에서 뭔가가 변한 것을 느꼈다. 그때서야 감독님의 그때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얼마나 나를 위한 것이었나를 알았다.
Q.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함께 연기한 강동원과는 친분이 있어서 호흡을 맞추는데 한결 수월했겠다.
송혜교: 억지로 친해져야 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그건 면에서 많이 편했다. 덕분에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Q. 강동원은 정말 여배우들의 기피대상인가.
송혜교: 기피대상이다. 얼굴이 너무 작으니까. 키까지 커서 얼굴이 더 작아 보인다. 웬만하면 옆에서 사진을 안 찍는 게 좋다. 나도 많이 피해 다녔다.(웃음)
Q. 대수와 미라가 처음 만나는 계곡 씬을 강원도에서 찍었다고. 물에 빠지는 씬인데, 엄청 추웠다고 들었다.
송혜교: 그 장면은 꽃샘추위가 있던 3월에 찍었다. 계곡에 손을 잠시 담갔다가 뺐는데, 손마디가 아플 정도였다. 물 안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칼로 에는 느낌이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을 대비해서 앰뷸런스를 항시 대기해 두고, 대야라고 해야 하나? 큰 대야에 뜨거운 물을 받아두고, 컷 하면 대야로 달려가서 몸을 녹이곤 했다.
Q. 대야에 들어가 있는 송혜교와 강동원이라~(웃음)
송혜교: 하하. 제작부에서 큰 대야를 세 개 준비했다. 하나에는 뜨거운 물을 계속 받고, 한 통엔 내가 들어가고 다른 한 통엔 동원 씨가 들어가고.(웃음) 그렇게 추위를 견뎠다.
Q. 열일곱살 때 걸그룹을 꿈꾸던 ‘씨X공주’ 미라는 서른셋에 아들을 포용하는 듬직한 엄마로 바뀌었다. 열일곱의 송혜교와 서른셋의 송혜교도 많이 다른가.
송혜교: 너무 많이 달라졌다. 데뷔 전에는 소심하고 소극적이고, 사람들 앞에도 잘 서지 못하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학교에서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 노는 것도 정말 친한 친구들과만 어울려 다녔다. 그런데 데뷔를 하고 나이를 먹고, 많은 분들을 만나고, 사람들과 어울려 술도 한잔 하고, 연애도 하면서 성격이 외향적으로 변했다. 예전에는 내 의견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의사표현도 확실하게 하는 사람이 됐고. 어렸을 때 성격보다 지금의 성격이 더 마음에 든다.
Q. 미라처럼 결혼에 대한 환상이 있었나.
송혜교: 20대 때는 환상이 있었다. 아이를 워낙 좋아해서 빨리 하고 싶었다. 그런데 30대가 되니까 일에 대한 욕심이 더 많이 생긴다. 20대에 작품을 많이 못한 것이 후회도 되고. 그래서 요즘은 결혼 전에 작품을 많이 남겨두자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주변에 결혼하신 분들이 다들 늦게 가라고 하던데.(웃음) 빨리 가서 좋은 거 없다고. 결혼을 언젠가 하긴 할 텐데, 지금은 내 자신도 책임질만한 여유와 자신이 없다.
Q. 책임과 여유라는 말이 나와서 묻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잘은 모르겠지만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런 상황(세금 탈루 논란)에서 인터뷰를 하고 것이 너무나도 도망가고 싶거나, 반대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거나.
송혜교: 두 가지 다인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무지로 시작된 일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이렇게 나와서 사진을 찍고 말을 하는 게 과연 맞는 것일까, 하고. 어른들께 여쭤봤더니, (대책)회의를 하셨다. 다들 내가 숨거나 피하지 않고 사과할 것에 대해서는 사과하는 게 맞다고 했다. 인터뷰는 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약속된 것이기에, 이것마저 어기면 두 번 잘못하는 거라는 말씀도 해 주셨고. 물론 숨고도 싶었다. 너무 무서우니까. 그래도 부딪쳐서 사과드리고, 내 개인적인 일로 인해 작품에 책임이 안 가도록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에 인터뷰를 하게 됐다. 나로 인해 이 영화에 공을 들인 많은 분들이 상처를 안 받기를 바랄 뿐이다.
Q. 최근 중국에서의 활동이 잦다. ‘일대종사’에 이어 ‘태평륜’이 개봉을 앞두고 있고, 중국 베스트셀러가 원작인 ‘나는 여왕이다’ 촬영도 조만간 시작된다. 중국에서의 활발한 활동은 어떤 기대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혹시 국내에서 여배우들이 할 수 있는 작품이 한정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인지.
송혜교: 중국에서 뭔가를 하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이것 역시 자연스럽게 진행된 거다. 사실 오우삼 감독님의 ‘태평륜’은 5-6년 전에 제작을 발표하고, 촬영이 무기한 연기됐던 작품이다. 영화가 중간에 엎어진 줄 알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다시 재정비가 되면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출연하게 됐다.
Q 스무 살 때 찍은 드라마 ‘가을동화’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인기도 얻고, 광고도 찍고, 스타가 됐다.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으로 ‘가을동화’를 꼽았던데, 지금의 송혜교가 그때의 송혜교를 만난다면 뭐라고 말해주고 싶나.
송혜교: “힘든 일이 많을 것이다”라고.(웃음) 그땐 스무 살이었고 첫 미니시리즈 주연이었기 때문에 무서운 게 없었다. 당시엔 사람들이 나에 대한 큰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연기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용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연기는 비록 어수룩했지만 순수했던 것 같고. 그런데 연기라는 게, 한 작품 한 작품 할수록 더 어려워진다. 경험치가 쌓이고, 진짜 감정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되면서, 표현에 더 신중하게 되는 거다. 그래서 스무살의 나를 만난다면, 연기라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Q. 한 작품 한 작품 할수록 더 어려워진다고 했는데, 당신 자신과 특히나 부딪혔던 작품은 뭔가.
송혜교: ‘황진이’ 아무래도 첫 사극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있었다. 사극 대사 톤을 익히는 것도 쉽지 않았고, 머리 위에 얹은 가체에서 오는 육체적인 스트레스도 엄청났다. 스트레스 때문에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고, 현장에서 조명 바꿀 때 꾸벅 졸았다. 7-8개월 동안 그러다보니 당시 살이 엄청 많이 빠졌었다. 그때가 연기적으로는 가장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나 싶다.
Q 사실 여배우들의 행보를 살펴보면 어느 방향으로 나갈지 대충 가늠이 된다. 당신 역시 초반에는 그랬는데, 어느 순간 예측할 수 없는 행보를 걸어 나가는 느낌이다.
송혜교: 독립영화 ‘오늘’이라는 작품을 찍고 비슷한 질문을 받았었는데, 그때는 어떠한 행보를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요즘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어떤 길로 가야지 한 것은 아니지만 기존 이미지와 겹치는 건 피했다는 생각이 든다. 은연중에 ‘어릴 때 많이 맡았던 귀엽고 발랄한 이미지’와 반대되는 작품들을 선택했던 거다. 그런데 또 진중한 작품들을 연달아 하다보니까, ‘두근두근 내 인생’처럼 밝은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결국 지금의 나는 하나의 이미지에 갇히기보다 다양한 작품을 하고 싶은 것 같다. 다양한 선택을 용기 있게 하는 사람이고 싶다.
글. 정시우 siwoorain@tenais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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