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지난 10개월 사이에 연기 데뷔작 SBS ‘별에서 온 그대’를 시작으로 SBS ‘너희들은 포위됐다’ 영화 ‘패션왕’ ‘웨딩바이블’(중국)까지 무려 네 작품을 마쳤는데 컨디션은 괜찮나요?
때로는 만남만으로도 기분 좋은 에너지를 선사하는 이들이 있다. 시크하고 도도해보이는 화면 속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사려깊은 말투와 부드러움을 간직한 이 청년은 속이 꽉 차 있는 느낌이다. 지난해 10월부터 SBS ‘별에서 온 그대’ ‘너희들은 포위됐다’ 영화 ‘패션왕’ ‘웨딩바이블’(중국)까지 10개월간 무려 네 작품을 마치며 올해 떠오르는 신예 배우로 꼽히고 있는 안재현은 “아직 하루가 끝나지 않은 기분”이라면서도 특유의 평온함은 잃지 않은 모습이다.
안재현: 네. 격하게 좋아요.
Q. ‘너희들은 포위됐다’는 드라마로는 두 번째 작품이었어요.
안재현: 굉장히 많이 배우면서 촬영했어요. 연기할 때 어떤 리액션을 해야 할지는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거죠. ‘별에서 온 그대’에서 필요로 했던 부분을 ‘너희들은 포위됐다’를 통해 채운 것 같아요. 동갑내기 친구들(이승기, 박정민)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편하기도 했고, 그래서 더 많이 노력하기도 했어요.
Q. ‘친구들’이라고 지칭하는 걸 보니 촬영하면서 극중 다른 경찰 신입 멤버(이승기 고아라 박정민)로 등장한 배우들과 많이 친해졌나봐요.
안재현: 처음 작품을 시작할 때 친구들에게 얘기했어요. ‘두번째 작품이라 나는 너무나 미숙하니 양해 바란다. 다만 너희들의 감정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어떻게든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다행히 친구들도 좋게 봐 줬어요. 오히려 제 신보다 친구들과 함께할 때 더 잘 되더라구요. 중간에 작가님께 전화해서 ‘저는 많이 안 나와도 된다’고 말씀드렸어요. 큰 그림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하나의 그림자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Q. 수목드라마를 연달아 두 작품을 찍는 등 꽤 큰 작품을 만났는데 연기에 대한 자신감은 좀 붙은 것 같나요?
안재현 : 아뇨. 지금도 소화하기 급급한 상황인 것 같아요. 연기를 기타에 비유하자면, 정말 좋은 선물이라 받았을 때는 기쁘고 좋았는데 배우는 건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빨리 마스터해서 잘 치고 싶어요.
Q. 액션신도 꽤 있었는데요. 본인과 잘 맞던가요?
안재현: 저는 온 몸에 정말 멍이 많이 들 정도로 잘 ‘맞았어요’ 하하. 상대방과 합을 맞춰 다치지 않게 연기하는 기술이 있는데 그게 전 어렵더라구요. 촬영이 끝나고 나면 이곳 저곳 멍투성이였는데 아픈 줄도 몰랐어요. 드라마팀을 위해 내가 뭔가 하나는 해냈다는 홀로 느끼는 뿌듯함이 있더라구요.
Q. 연기하면서 현장 감각은 어땠나요? 애드리브도 살리는 편인지 궁금해요.
안재현: 감독님이 즉흥적인 리액션을 유쾌하게 받아들여주셨어요. 연기하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혼자 대사를 만들어 애드리브도 하곤 했거든요. 내가 준비했던 것과 달리 막상 상대 배우와 함께할 때 생각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나오는 게 연기의 묘미인 것 같아요. 마치 퓨전 음식처럼 어떤 사람과 맞추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게 신기한 경험이었죠.
Q. 사회초년생들의 얘기가 실제 본인의 나이 또래와 비슷한 이들의 이야기라 공감 지수는 높았겠어요.
안재현: 네, 그래서인지 현장은 항상 유쾌했어요. 매 신에서 웃음이 터졌고 활기찼거든요. 작품 주제가 특히 많이 와 닿았어요. 사회초년병일 땐 다들 잘 하고 싶은 마음에 실수도 하고 그러잖아요. ‘아 이 정도면 이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하는 생각에 예상치 못한 함정에 빠지기도 하구요.
Q. 모델로서 오랜기간 갈고 닦아 온 감성이 배우하는 데도 도움이 되나요?
안재현: 음…객관적으로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카메라 앞에서 멈춤과 움직임은 아예 다른 감정이니까요.
Q. 연기 점수를 스스로 매겨본다면요
안재현: 점수는 사치죠. 이제 시험지에 이름을 쓴 것 같아요. 아직 1번 문제를 풀고 있고, 듣기평가를 듣고 있는 중이에요.
Q. 그동안 수 차례 연기자 제안이 있었음에도 모델 활동만을 고수해왔던 걸로 알고 있는데 연기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안재현: 작년 10월쯤 장태유 감독님이 절 보고 싶어하신다는 얘길 듣고 인사하러 갔었어요. 근데 그 만남이 오디션이었더라구요. 감독님이 ‘별에서 온 그대’의 천윤재 역을 제안하셨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밖이라는 생각에 ‘못 해서 못합니다’라고 말씀드렸어요. 모델과 연기는 아예 다른 분야고, 공부를 해야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날은 감독님이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하시고 헤어졌는데 바로 다음날 조감독님과 함께 집 근처에 찾아오셨어요. 연기와 방송사 시스템이 어떻게 돼 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얘기해 주시는데, 이 분이라면 많은 걸 배우고 믿고 따라갈 수 있겠단 생각에 마음을 바꾸게 됐어요.
Q. ‘별에서 온 그대’ 이후 ‘너희들은 포위됐다’ 와 영화 출연도 자연스럽게 이어진 건가요?
안재현: 사실 ‘별에서 온 그대’를 하면서 아마 이 작품이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근데 이길복 촬영감독님이 다음 작품도 같이 하자고 하시고 ‘너희들은 포위됐다’의 유인식 감독님도 ‘내가 널 잘 다듬을 수 있고 좋아질 거니 함께 하자’고 제안해주셨어요. 사실 미리 잡힌 스케줄이 있었는데 드라마 촬영팀이 다 조정해주시고…. 그래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믿어주신 분들에 대해 보답하고 싶었어요.
Q. 말하자면 연기는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인해 시작하게 됐군요.
안재현: 네 저에겐 예기치 못한 인연이라는 부분이 컸어요.
Q. 원래는 모델이나 주얼리 디자인 쪽으로만 활동할 생각이었나요?
안재현: 모델계에서 이름이 있었으면 했어요. ‘안재현하면 모델이지’란 말을 듣고 싶었어요. 이왕 내가 선택한 직업에 끝을 보고 싶었고 모델 활동 영역을 넓히고도 싶었거든요. 패션계는 예전에 비해 많이 상승했는데 유독 모델에 대한 대우는 그대로인 것 같아서 나로 인해 모델계가 좀 올라갔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다 나이가 좀 차면서 패션이라는 영역과 대중과의 연결고리를 생각하면서 주얼리 브랜드도 자연스럽게 하게 됐죠.
Q. 지금은 어떤가요? 모델보다 연기가 주업이 됐나요?
안재현: 그렇진 않아요. 모델이 업그레이드 되서 배우가 된 게 아니라 안재현이라는 나무에서 모델이라는 열매가 열렸다면 이제는 연기라는 꽃이 핀 것 같아요. 계절이 바뀌듯이요. 만약 미리 잡힌 콜렉션 일정이 있다면 그 기간에는 연기는 쉬어야죠. 화보나 광고를 찍는 부분 등 연기자와 모델은 영역은 다르지만 겹치는 부분이 많으니 병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얘기를 듣다 보니 연기자로 데뷔하면서 꽤 심도 있는 고민을 한 것 같아 보여요.
안재현: 그렇죠. 모델로서 많이 해야할 일이 남은 것 같기도 한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연기를 하는 게 너무 급한건 아닌가란 생각은 들었어요.
Q. 혹시 모델 출신 연기자라는 말은 별로 안 좋아하나요?
안재현: 전혀요. 모델 출신 맞잖아요. 모델 일을 열심히 했다는 칭호니까, 기분 좋은 것 같아요.
Q. 모델 시절에도 꽤 팬층이 두터웠던 걸로 알고 있어요. 팬들이 연기를 시작한 데 대해 아쉬워하진 않나요?
안재현: 많이 이해해주시는 것 같아요. 자기만 알고 있는 단골집이 혼자만 알고 있다면 없어질 수도 있잖아요. 사람들이 많이 알고, 유명해지는 걸 팬들도 좋아하는 것 같아요.
Q. 연기 외에 케이블채널 Mnet ‘엠카운트다운’ MC로도 활약중이잖아요.
안재현: 워낙 음악 듣는 건 좋아해요. 힙합, R&B, 올드팝이나 재즈까지 가리지 않는데 요즘 아이돌 그룹 음악도 정말 멋져요. 블락비같은 친구들 보면 끼가 넘치고 노래도 잘하고…. 저렇게 잘 노는 친구들이 있구나, 참 부럽다싶기도 해요. 저는 상대적으로 쾌활한 이미지는 아닌데, 같이 진행하는 (정)준영이는 록커의 에너지 넘치는 느낌이 있어서 서로 잘 맞아요.
Q. 지난 10개월 정신없이 달려온 시간을 돌아보니 어떤 기분이 드나요?
안재현: 아직 돌아볼 시간은 없었어요. 장태유 감독님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아직 하루가 다 끝나지 않은 기분이에요. 하하 연기를 시작하면서 이런 저런 행사 등 일이 많이 생겼는데 불러주시는 것 자체가 좋죠. 누군가가 나를 초대해줬다는 건 그만큼 제가 그분들께 좋은 사람으로 남았다는 거니까요.
Q. 그런데 그렇게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 온 것 치곤 표정과 말투는 무척 평온해보여요.
안재현: 주얼리 브랜드를 하면서 느낀 건데 급할수록 돌아가는 게 중요하더라구요. 현재를 느끼고,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뭔가를 단시간에 이루려고 서두르면 오히려 더 뒤로 가는 것 같아요. 운전할 때도 안전 속도가 있고 신호등이 있는 것처럼 흐름에 맞게 가려구요.
Q. 자기성찰을 자주 하나봐요.
안재현: 평소엔 그렇진 않아요. 인터뷰하면서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하고 정리해보는 거죠. 밥먹을 때 밥먹고 책을 읽을 땐 책을 읽고, 매 순간순간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긴 해요. 수필집을 좋아하는데, 인생 선배들이 하는 얘기를 살펴보면 17세기나 21세기나 겹치는 부분이 많아요. 어르신들이 들려준 좋은 얘기에 귀를 많이 열어요. 다 행복하려고 사는 거고, 모든 일이 사랑에서 시작하는 거니까요.
Q. 추천해줄만한 책도 있나요?
안재현: 이번에 읽은 게 ‘다카페 일기’라는 일본 사진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책이에요. 아침에 눈뜨자 마자 찍은 사진, 봄 풍경, 가족들과 함께 한 모습같은 걸 담은 책인데 소소함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작은 부분에 감동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이에요. 저도 그렇거든요. 항상 너무 멀리 보고 당장의 소중함을 못 느끼죠. 지금의 작은 행복을 일깨워줄 수 있는 책인 것 같아요.
Q. 겉보기에는 시크하고 도도해보이는 첫인상인데 막상 말을 하니 무척 부드러운 느낌이 있어요.
안재현: 순하다기보다는 그냥 노멀해요. 사람들과 만날 땐 유쾌한 모습이 많아요. 굳이 가시를 내보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Q. 최근 트위터를 보니 어머니와 다정하게 데이트도 했더라구요.
안재현: 부모님 댁에서 나온 지 3년 정도 됐어요. 자주 못 뵈니 한번 데이트 할땐 격하게 해요. 하하.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Q. ‘혼자남’으로서 안재현은 어떤가요?
안재현: 행복해요. 새벽에 귀가할 때도 많은데 부모님이 깨시는 것도 죄송스럽고, 일을 좀더 많이 하고 싶어서 집에서 나왔거든요. 혼자서 영화 보고 맛있는 거 해 놓고 술도 마시고 음악도 들으면서 살아요.
Q.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안재현: 스케줄이 11월까지 빼곡히 잡혀 있어서 아마 쉴 틈은 없을 것 같아요. 앞으로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하루에 한번 정도는 절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나란 친구가 있는 걸요.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있는 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매력이고 고마움인 것 같아요.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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