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가 커지자, ‘광해’를 만든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는 트위터에 “솔직히 난 소심하다, 30대까지는 일 년에 한두 번 군대에 다시 가는 끔찍한(?)꿈을 꾸곤 했다, 영화 일을 하고부터는 군대 가는 꿈을 꾸진 않지만 개봉 전에 영상이 유출되는 꿈을 꾸곤 한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오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사태를 보곤 더 무섭다”라는 글로 이번 사건의 충격을 여실히 드러냈다. 현재 소니픽쳐스 홈 엔터테인먼트 코리아는 어떤 과정을 통해 해당 영상이 유출됐는지 조사 중인 상태다.
“역대 가장 긴 예고편이다!” “예고편을 돈 받고 극장 상영하는 소니는 철수하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풀버전 유출을 둘러싼 뼈아픈 농담들이다.
정말이지 어메이징한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지난 19일, 할리우드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영상이 유튜브에 ‘예고편’이란 이름으로 공개됐다. 하지만 해당 영상은 2시간 21분 34초짜리 풀버전이었다. 동영상에는 한글 자막까지 완벽하게 달려 있었다. 배급사 소니픽처스는 20일 공식 유튜브 계정에 올려져있던 본편 영상을 오후에 삭제했으나 이미 조회수가 47만뷰가 넘은 상태였고, 1080P 고화질 버전이 온라인상에 나돌고 있는 상황이었다. 7시간 만에 벌어진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 파일 유출 버전도 가지각색
영화 파일 유출 논란은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2001년 워너브러더스의 개봉 대기작 ‘오션스 일레븐’은 러프컷이 인터넷상에 불법 배포돼 논란을 빚은바 있으며, 2003년 개봉한 리안 감독의 ‘헐크’는 첫 시사를 2주 정도 앞두고 가편집 본이 인터넷에 유출되는 사고로 홍역을 치렀다. ‘헐크’의 경우 독특하게도 유출된 미완성본을 본 네티즌들의 불만스러운 악성 리뷰로 눈길을 끌기도 했는데, 실제 개봉 버전의 만듦새에서도 혹평을 받으며 흥행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잘 알려졌다시피, ‘헐크’는 여러 의미에서 리안의 흑역사로 기록돼 있다.
불법 파일 유출 홍역을 치른 ‘엑스맨 탄생: 울버린’ ‘헐크’ ‘오션스 일레븐’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시계방향)
2009년에는 영화 ‘엑스맨’ 시리즈의 스핀오프인 ‘엑스맨 탄생: 울버린’이 개봉 한 달을 앞두고 유출된 불법 파일로 인해 직격탄을 맞았다. 역시 일부 장면과 사운드, 특수효과가 빠지거나 보정작업을 거치지 않은 미완성 편집본이었다. 당시 FBI(미 연방수사국)는 제작진이 콘텐츠를 빼돌린 것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지만, 온라인 사이트에 유통되고 있는 불법파일을 막지는 못했다. 해당 파일은 바다 건너 국내에도 입성, 불법 파일 영상 사냥꾼들의 먹잇감이 됐다.같은 해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의 경우, 결말 유출로 인해 시나리오를 아예 바꾼 경우다. 촬영 시작 당시 ‘존 코너 역을 맡은 크리스찬 베일이 결국 터미네이터가 된다’는 결말이 온라인상에 유출돼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 바 있는데, 이에 맥지 감독은 결말을 과감하게 수정하는 방법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잘못된 선택이었다. 영화는 뜬금없는 결말이라는 혹평을 받으며 불법 파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입었다.
# 유출 방법이 기막혀!
국내에도 불법 파일과의 전쟁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불법 캠버전의 확산이다. 극장에서 캠코더로 촬영한 불법 파일이 하나의 웹하드에 업로드 되는 순간 급속도로 타 웹하드로 번져나가는 형식이다. 올해 1000만 관객 신화를 일군 ‘변호인’과 ‘겨울왕국’도 캠버전 유출로 인해 해당 배급사가 강경대응입장을 밝히는 등 불법 파일과 한차례 전쟁을 치러야 했다.
‘변호인’과 ‘겨울왕국’은 그나마 일반적인 사례다. 2009년 개봉한 하지원 설경구 주연의 ‘해운대’의 경우 경찰이 범인 색출에 나서는 등 그 심각성이 컸다. 당시 유출본 영상은 극장판 직전 버전이었으며 음향은 극장판과 동일한 최종버전이었고, 유출본은 그 둘을 조합한 형태였다. 불법파일이 모니터링 인력이 줄어두는 주말 아침에 유출됐다는 점에서 범행의 동기가 불손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해운대’는 불법 유출로 인해 300억 원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다. ‘해운대’의 누적매출액은 810억원으로 불법유출로 인해 전체 매출액의 27%에 이르는 손실을 본 셈이다. 동영상을 불법 복제해 인터넷에 유포했던 김 모씨 등 3명은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것으로 ‘해운대’의 불운이 위로받기에는 피해가 너무 컸다.
불법 파일 유출 쓰나미에 휩쓸렸던 ‘해운대’ ‘건축학개론’ ‘황제를 위하여’ ‘변호인’(시계방향)
전국에 첫사랑 열풍을 일으킨 ‘건축학개론’ 역시 불법 파일로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야 했다. 이 영화가 불법 파일로 입은 피해는 자그마치 75억 원. ‘건축학개론’의 영상 유출 과정은 그야말로 기가 막혔다. 군 시설이나 해외 문화원 등에서 무료 영화 상영을 하는 복지 업체에서 근무하던 윤 씨는 ‘건축학개론’ 배급사로부터 받은 영상 파일을 동영상 파일로 전환, 지인 A씨에게 “너만 보고 삭제하라”로 이메일로 보냈다. 하지만 A는 또 다른 지인 B에게 이 영상을 전했고 그런 식으로 퍼진 영상은 문어발처럼 확정돼 이후 파일 공유 사이트 등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 부족이 부른 참사가 아닐 수 없었다.최근에는 ‘황제를 위하여’가 IPTV 서비스를 시작한 가운데 ‘이태임 베드신’만 편집한 불법 파일이 유통, 여배우에게 아픔을 안기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영화의 인터넷 영상 유출을 ‘디지털영화와 VOD의 출현, 그리고 정보 저장과 전송의 디지털화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해킹의 경우 90%가량이 내부자의 부주의 때문에 발생한다는 의견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예방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다. 관리에 힘을 썼는데도 파일이 유출됐다면? 생각할 시간이 어디 있나. 최초로 배포된 파일 출처를 빨리 파악해 더 확산되는 것을 막는 것이 시급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사태에 대한 소니의 대응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무려 7시간이다. 본편이 예고편이란 이름으로 유튜브를 유영한 시간이.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영화 스틸,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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