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수목 드라마 ‘개과천선’이 16부작 여정의 끄트머리에 섰다. 국내 굴지의 로펌, 차영우 펌의 변호사 김석주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기억상실’이라는 진부한 소재를 통해 현실 속 비도덕적 엘리트들을 날카롭게 고발했다. 기억상실을 기점으로, 권력과 유착한 타락한 변호사에서 사회적 책임을 느끼는 변호사로 성장하는 내용을 담은 이 드라마는 실제 사건과 유사한 사건들을 연이어 등장시키며 현실 속 로펌이나 현실 속 인물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구태여 감추려 하지 않았다. 뉴스보다 더 뉴스같은 드라마, 한 편의 시사 프로그램을 본 듯한 드라마라는 이야기는 이 지점에서 나온다.
뿐만 아니라, 극의 완성도도 상당히 높았다. 군더더기를 최대한 덜어낸 서사는 스피디한 전개 없이도 몰입력을 높였고, 주인공 김석주 역의 김명민을 비롯해, 차영우 역의 김상중, 그리고 특별출연 형태로 등장하더니 주연급 비중으로 활약한 검사 이선희 역의 김서형 등 배우들의 안정적이면서 섬세한 연기력도 즐거운 관람이 되는 드라마였다.
이제 마지막 2회를 남겨둔 이 드라마는 끝까지 지켜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전하는 울림이 반드시 있을 것이기에.
‘개과천선’에서 김석주 변호사를 연기하는 배우 김명민
1회 첫 신부터 독보적 존재감으로 귀환을 알린 김명민이었다.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보상을 하지 않는 일본 기업을 변호하는 그의 모습에서 인간을 느끼기는 힘들었다. 재벌2세의 명백한 성폭행 범죄를 무죄로 뒤바꾸기 위한 변호를 맡는 그에게서 비열함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마치 어울리지 않은 가면을 쓴 듯한 김석주 변호사의 표정에서 변신은 이미 예고되었다.
2회 말미,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기억상실에 걸리게 된 김석주는 스스로를 무명남으로 부르게 된다. 이름이 없는 남자. 돌 석(石) 자에 기둥 주(柱)를 써 100년은 끄떡없는 그릇이 되란 아버지의 바람이 담긴 이름은 그렇게 다시 무명이 되어 스스로를 깨끗이 씻어내는 계기를 만난다. 이후 변호사로서의 능력은 그대로이지만, 모든 과거를 지워버린 그는 다시 양심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난다.
그런 격변을 겪은 김석주라는 인물을 배우 김명민은 완전히 다른 얼굴로 표현해낸다. 압권은 5회 등장한 롱테이크. 로펌 사무실을 나와 복도를 지나고 건물 바깥에서 피해 어민들의 아우성을 목격하는 동안 한 마디 대사 없이 걸어 나오는 김명민을 통해 시청자들은 김석주의 갈등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이 드라마는 굵직한 법정사건들이 연이어 등장하는 터라, 김명민의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 배우의 연기를 강조하는 연출은 최소화했다. 배우가 스토리 위에 존재하기보다, 스토리가 배우를 끌어가는 류의 드라마인 것이다. 그럼에도 김명민이기에 김석주라는 변호사의 존재감은 강력했다.
김명민은 초반 김석주 변호사의 혼돈에 몰입을 높일 수 있는 연기를 통해 인물의 내적갈등을 입체화했다. 또 중반 들어서는 기억을 잃어 존재조차 잊고 있었던 약혼녀, 와의 다소 애매한 관계 역시도 적절한 절제를 통해 그 미묘한 감정을 잘 표현해줬다. 후반에는 어떤가. 기억을 잃어 때로는 천진해지기까지 한 김석주의 얼굴 속에서도 재계와 법조계의 유착 속에 실망스러운 표정, 또 무엇보다 과거 자신의 비도덕적 삶에 개운하지 못한 표정 들을 잘 드러냈다.
이토록 캐릭터와 맞닿아있는 가운데, 철저히 스토리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연기는 더욱 훌륭했다. 김명민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베토벤 바이러스’를 비롯해, 최근작 ‘드라마의 제왕’을 통해 그는 극대화된 캐릭터로 화려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개과천선’ 김석주를 통해서는 그 특유의 발성을 지워내면서도 여전한 존재감을 입증해냈다. 그렇게 김명민은 또 한 번 ‘명민좌’라는 명성을 실감케 했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제공.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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