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조근 조근 꾹꾹 눌러 담는 화법. 느릿하고 낮은 음성이지만 전하고자 하는 맥락은 분명했고, 그 안엔 힘이 있었다. 공기를 녹이는 현빈의 고요한 목소리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인터뷰 도중 얼마나 여러 번 의자를 그의 앞쪽으로 잡아다 끌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실제로 만난 현빈은 상상 속 현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미세한 파동을 지닌 남자였다. 그것이 반가웠냐고 묻는다면, 당연하다.

‘역린’ 속 정조도 현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남자다. 아니, 현빈의 분위기가 ‘역린’의 정조를 그만의 독창적인 캐릭터로 만들어냈다고 보는 쪽이 맞을 게다. 암살의 위협에 맞닥뜨리는 젊은 왕을 통해 현빈은 지난 3년간의 공백을 조용히 깼다. 새로운 출발 앞에 선 현빈을, 정조를, 더 깊고 단단해진 배우를 만났다.

Q. 언제고 “‘시크릿 가든’은 내 만족보다는 팬들이 행복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결정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역린’은 어땠나? 현빈 스스로의 만족과 팬의 행복 중 어느 것이 작품 선택에 조금 더 영향을 준 것 같나.
현빈:
개인적으로 하고 싶기도 했고, 이 작품을 통해 전해 줄 수 있는 메시지가 있다는 판단도 있었다. 보시는 분들이 정조와 같은 군주상을 원하리라고 생각했다.

Q. 합의점을 찾은 작품이라는 말인가.
현빈:
그렇다. ‘시크릿 가든’ 때는 여러 고민이 있었다. 어는 날 필모를 돌아보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내가 하고 싶은 작품만 했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 나는 내가 선택한 작품 모두에 상업적인 요소가 있다고 본다. 아마 그 영화들을 제작하신 분들, 참여하신 분들도 같은 생각이셨을 거다. 많은 사람들이 봐주길 원하면서 작품을 만드는 건 모두가 같았을 테니 말이다. 다만 흥행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면 그 작품은 마니아 드라마 혹은 아트 영화가 되는 거다. 그런데어떻게 하다 보니, 마니아 적으로 사랑받는 작품, 연기적인 부분에서 더 많이 얘기되는 작품들을 계속 하게 됐다.

Q. 결과적으로 그것이 배우 현빈이 지닌 무기이기도 하다.
현빈:
하하. 맞다.내가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단 하나다. 시나리오다. 시나리오 외에는 어떤 것도 보지 않는데, ‘시크릿 가든’의 경우 그 기준점에서 하나가 더 포함됐던 거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관객들이 원하는 작품을 하자는 생각도 있었다.

Q. 아까 군주상을 잠시 언급했다. 영화에 나오는 ‘중용’의 메시지를 말하는 것일 텐데, 현 시국과 시기상으로 맞물린 부분이 있다.
현빈: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다.

Q. 관객들이 사극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런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더더욱 정조라는 캐릭터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은데, 배우로서 어떤가. 영화적 메시지가 사회적 상황과 맞물리면 부담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을 텐데.
현빈: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는 중용 23장 구절은 쉬운 말인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말이다. 사소한 상황에서의 생각까지도 바꾸게 하는 문구다. 그 대사가 이 시대와 맞물려서 어떤 작용을 하는가를 떠나서, 그리고 이 영화와의 관계와도 떠나서,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나 또한 그 말을 실생활에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Q. 데뷔 초엔 실제 나이에 비해 나이가 많은 캐릭터들을 주로 연기했다. 그러다가 비슷해지더니, 이번에는 서른 넘은 나이에 20대의 왕을 연기했다. 나이 보다 성숙한 남자를 연기하는 것과, 나이보다 미숙한 남자를 연기하는 것에 차이가 있나.
현빈:
작품 안에서‘내가 조금 더 어른스러워 보여야지’ 혹은 ‘어려 보여야지’ 하는 것은 없다. 부담도 없다. 그건 시나리오 안에서 상황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아, 그래도 말투에 대한 부분은 신경을 쓴다. 어린친구들이 말하는 속도나, 어미 처리는 어른들의 그것과는 확연이 차이가 난다. 어린 친구들의 말투를 처음 접목시켰던 게, ‘시크릿 가든’ 때였다. 과거에 돌아간 주원을 연기할 때 어미 처리에 신경을 많이 썼었다.

Q. 연예계 선배들과 친분이 두터운 걸로 안다. 손윗사람들과 친한 경우 두 가지 같다. 어른스러워지거나, 반대로 애교를 부리면서 더 철이 없어지거나. 우리가 보는 현빈은 전자 같은데.
현빈:
맞다. 성향상 어른스러운 부분이 있다. 성격이 활달한 것도 아니고. 일하는 초반에는 지금보다 더 내성적이었다. 촬영 시작할 때 “안녕하세요”, 끝났을 때 “수고 하셨습니다” 이게 끝이었다. 일을 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는 성격은 아니었던 거다. 그러다가 선배들을 만나고, 조언을 듣고, 좋은 영향을 받으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더 어른스러워진 것도 없지 않다. 나보다 한두 살 많은 형들이 아니라 열 살 정도 차이가 나는 형들이라, 아무래도…(웃음)

Q. 그 모임의 막내로 배우 김우빈을 합류시키고 싶다고 한 발언이 화제다.
현빈:
아, 그게… 그게, 참… 선배들이 김우빈에 대한 좋은 말씀을 많이 하셨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은 거잖나. 궁금증이 생겼고, 그래서 연락을 취한 것일 뿐이다. 그 친구의 의사를 들은 것도 아닌데, 그런 기사들이 나가서 괜히 미안하다. 반대로 다른 좋은 후배들도 많은데 그 친구들은 또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나. 우리가 무슨 조직도 아니고, 그냥 뜻 맞는 사람들끼리 시간이 될 때 만나서 취미 활동을 하는 모임일 뿐이데, 누군가를 콕 집어서 모인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같은 일을 하는 배우라면 어느 누구나 올 수 있는 자리다.

Q. 보통, 몇 사람이 모이나.
현빈:
많을 때는 스무 명 이상도 모인다. 임하룡 선배님도 오시고, 안성기 선배님, 김영철 선배님, 김상경 선배님도 오신다. 그런데 매번 거론되는 분들만 얘기가 되니까, 오해를 하시는 것 같다.

Q. 어떤 배우는 평생 한 번 경험하기도 힘든 절정의 순간을 당신은 두 번이나 맛봤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하 ‘삼순이’) 때와 ‘시크릿 가든’ 때. 정상에 있을 때 현빈은 그 순간을 즐기는 사람인가, 아니면 자신을 더 채찍질 하는 사람인가.
현빈:
2005년 벌어진 현상에 대해서는 솔직히 즐길 겨를이 없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인기였다. ‘이게 뭐지?’ 하다 보니 지나갔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시크릿가든’ 때 ‘삼순이’ 때와 비슷한, 혹은 더 큰 사랑을 받았다. 처음엔 몰랐다. 촬영할 때 비서 역으로 출연한 (김)성오 형이 “장난 아니야. ‘삼순이’때보다 여파가 더 큰 것 같다”고 하길래, “무슨 얘기야. ‘삼순이’때 시청률이 얼마나 높았는데 말도 안 돼!”이랬다. 성오 형 말이 맞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Q. 현빈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은 훨씬 뜨거웠으니까.
현빈:
그러니까. ‘삼순이’때는 노처녀와 관련된 사회적인 이슈 등이 반영돼서 인기가 뜨거웠던 거고, ‘시크릿 가든’ 때는 캐릭터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그걸 뒤늦게 안 거다. 드라마 후반에야. 그때는 어느 정도 재미있게 즐겼던 것 같다. 다만 짧았던 거지.(웃음) 더 느낄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또 계획대로 군대를 갔고, 이렇게 제대를 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배우로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Q. 중요하지 않다함은? 인기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인가.
현빈:
언젠가 잦아들 일이다. 인기도 관심도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대중의 사랑이 사그라지는 속도도, 작품의 여운을 음미하는 시간도 점점 단축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인기를 위해서는 아니지만,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인기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Q. 그럼 현빈이 생각하는 중요한 것은 뭔가.
현빈:
예전에 어떤 선배님이 그런 얘기를 해주셨다. 이만큼의 위치(정상)에서 떨어질 거면, 차라리 한번 크게 고꾸라지는 게 낫다고. 그래야 뭐가 잘못됐는지 빨리 판단하고 다시 올라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는데, 완만하게 천천히 고꾸라지면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감지를 못하고 방심하게 된다고. 그런 것들을 알고 있는 것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거라고 본다. 인기에 휘둘리지 않고 연기를 했을 때, 손해도 적고 상처도 적고 그리고 연기 변화의 폭도 훨씬 더 큰 것 같다.

Q. 방금 크게 한번 고꾸라지는 게 차라리 낫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역린’을 둘러싼 혹평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배우에겐 혹평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왜 그런 혹평이 나오는가를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에 따리 차이가 크겠지만.
현빈:
맞다. 혹평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쉬운 점, 잘못된 점을 말하는 평가는 당연히 받아야하는 일이라고 본다. 받아들일 자세도 되어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혹평을 다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도 생각의 차이이기 때문에, 모든 혹평에 공감하지는 않는다. 예전에 노희경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시크릿 가든’ 때였을 거다. 첫 회 방송이 나가고 내가 아는 분들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문자를 보냈다. ‘잘못된 부분이나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알라주십시오’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빈아 고쳐야 할 부분을 먼저 찾지 말고, 잘한 걸 칭찬해 줘라’라고 문자로 주셨다. 그 의미를 요즘 자주 생각한다.

Q. 뭔가 뭉클한 말이다. ‘잘한 걸 먼저 칭찬해 줘라’
현빈: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때 노희경 선생님이 대본을 다 써 두셨다. 배우들에게 처음 리딩 할 때 대본 네 권을 주고, 그 다음부터는 일주일에 두 권씩 주셨는데, 그때도 그런 말씀을 하셨다. “대본에 잘못된 게 있어도 그건 지금 내가 당장 고쳐야 할 게 아니다. 그건 내 다음 작품에 던져진 숙제”라고. 그 말씀의 의미를 이제야 100% 알 것 같다. 지금 혹평을 들으면서 빠른 시간에 뭔가를 찾아내려 하기보다는, 깊이 생각하고 곱씹어서 다음 작품에서 풀어내는 게 더 현명한 것 같다. 그때 관객들이 ‘현빈의 연기가 뭔가 달라졌구나’라고 느끼면 지금의 이 고민들이 의미가 있을 거라고 본다. 지금 그런 시간을 가지고 있다.


Q. 그럼 ‘역린’에서 스스로에게 칭찬해 주고 싶은 것은 뭔가.(웃음)
현빈: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름대로 다 한 것 같다. 정조로서 표현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다. 나에게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실존했던 인물이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왕으로 화자 되는 인물이기 때문에 영화에 허구가 가미 되더라도 완전히 허구처럼 연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몸 만드는 거, 말 타는 거, 대사 톤 잡는 거… 모든 걸 상의하고 찾아내고 수정하며 공들이고 열심히 했다. 그럴 수 있었던 또 한 가지 이유는 한동안 내가 연기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일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깨달을 후에 처음 카메라 앞에 선 작품이어서 조금 달랐다. 그래서 ‘역린’은 흥행이나 평가를 떠나서 내 개인에게는 굉장히 남다른 영화다. 그렇게 노력한 것들에 대해서 칭찬을 해주고 싶다.

Q. ‘역린’과 관련된 당신의 인터뷰들을 보니, 맥락은 대개 이랬다. ‘현빈이기에 짊어져야 하는 짐’, ‘현빈이기에 기대가 컸다’ 등등 ‘현빈이기에…’라는 말들이 많더라. 순간 궁금했다. 진짜 현빈은 그런 시선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정말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무게라고 생각할까.
현빈:
‘현빈의 복귀작’, ‘현빈의 정조’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던 것 같다. ‘역린’은 정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정유역변 당시 모든 인물들이 주인공인 영화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시점으로,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아마 ‘정조의 영화’라고 생각하고 본 분들은 배신감을 느낀 것 같다. 정조의 감정을 따라가고 있는데 플래시백으로 가 버리고, 또 집중하려는데 다른 쪽으로 이야기가 흐르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터뷰가 연기됐는데, 배우들과 감독이 영화에 대해 설명할 기회가 조금 더 빨리 있었다면, 오해의 폭을 조금 좁힐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Q. 지금의 ‘역린’은 예상했던 결과물인거네.
현빈:
나는 충분히 예상한 결과다. 그러니까 이게 단순하게 ‘재미있다/재미없다’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취향과 선택 등 여러 가지가 섞여서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 ‘역린’을 못 본 분들 혹은 앞으로 보실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정조 한 사람만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아니라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다.

Q. 군 생활을 어땠나. 해병 김태평은 다른 해병들과 같은 기준으로 군 생활을 하는 게 가능하던가.
현빈:
그 점에 있어서는 같이 생활한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입대당시 고위계급에 계셨던 분들의 시선이 나에게 많이 쏠렸다. 그 어떤 사건사고도 일어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특혜논란 역시 없어야 했다. 같은 훈련을 하더라도 대충시킨다는 얘기가 나오면 이분들 입장에서도 곤란하게 되니까. 그러니까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였던 거다. 오히려 더 혹독했다. 그러다보니 나와 같이 생활하는 친구들이 힘들어했다.

Q. 열외 같은 건 없었던 건가.(웃음)
현빈:
하하하. 없었다. 나 스스로도 그런 걸 싫어한다. 해병대엔 IBS훈련(해상침투 훈련)이라는 게 있는데, 그 훈련을 받으면서 아킬레스건에 문제가 생겼다. 아킬레스건 건염 진단이 나온 거다. (훈련에서) 빠지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훈련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창피한 것도 있었고. 결국 끝까지 끝냈다.


Q. 연예병사로 군복무를 했다면, 해병 김태평으로 제대한 것과 많이 달랐을까.
현빈:
완전히 달랐을 거다. 연예병사 쪽으로 갔어도 또 다른 경험을 하고 나왔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계획한 것들은 못하고 나왔을 거다. 당시 나는 철저하게 나에 대해서 집중하고 싶었다. 내 일에서 한 발짝 빠지고 싶었던 기간이기도 했고. 그런데 연예병사를 했다면, 내가 계획했던 것들은 어그러졌겠지. 분명히 달랐을 거다.

Q. 당신 개인뿐 아니라, 당신이 발 담겼던 세계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군대에서 가졌을 것 같다.
현빈:
완전히 제3자의 입장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그런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배우로서의 삶을 뒤돌아봤을 때, 연기는 고등학교 때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다. 조금 더 전문적으로 알고 싶어서 연기관련 대학에 진학했고, 그러다가 영화 오디션을 봐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오래도록 바라는 일을 하게 된 거다. 그러다보니 나는 내가 늘 좋아서 연기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봤더니 좋아하던 일이 정말 ‘일’이 돼 있었다. ‘일이니까 해야지’하고 있었던 거다. 군에 있으면서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감정들을 많이 떠올렸다. 그래서 ‘역린’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나와서 처음 접한 영화이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Q. 현빈의 20대는 치열하고, 바빴다.
현빈: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일만하며 20대를 보낸 건 아니다. 1년 365일 연기만 생각하고, 촬영만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대다수가 일과 관련된 추억이다. 개인적인 추억이 별로 없다. 그건 인간 현빈에게는 별로 좋은 삶이 아닌 것 같다. 어느 한 쪽을 잃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이루어진 것도 분명 있을 테지만, 30대에는 그 폭을 좁히고 싶은 바람이 크다. 일 안에서 개인적인 즐거움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Q. 2008년 당신이 출연한 영화 ‘나는 행복합니다’를 빌어 질문하자면, 현빈은 지금 행복한가.
현빈:
요즘은 행복을 많이 느끼고 있다. 원하는 일을 다시 또 이렇게 하고 있으니, 더 그런 것 같다.

Q. 참, ‘현빈 공공재설’이 있더라. 모두가 함께 공유해야 한다고. 하하하.
현빈:
하하하. 나는 공공재에서 빼 달라. 방금 말한 것의 연장선이다. 개인적인 삶과 배우로서의 삶에서 오는 폭을 좁히고 싶은 욕심이 있다. 또 그래야 할 때라고 본다. 결혼도 하고 싶고, 결혼을 하려면 이성도 만나야 한다. 그러고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게 경험인데, 이 직업을 함으로써 가장 차단되는 게 또 경험이다. 경험은 요(작게)만큼하면서 연기는 이(크게)만큼을 보여줘야 한다. 연기에서 진심이 묻어나지 않으면 관객은 실망을 하고. 결국 그걸 얼마나 잘 조절하느냐의 싸움인 것 같다. 30대 때는 절충을 잘해내고 싶다.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나도 한마디!][텐아시아 뉴스스탠드 바로가기]
[EVENT] 뮤지컬, 연극, 영화등 텐아시아 독자를 위해 준비한 다양한 이벤트!! 클릭!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