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건 없지만, 자신감이 넘친다. 단숨에 반해버린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대학생이라 거짓말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밤에는 호스트바에서 손님들을 상대하고 사장 몰래 외제 차를 훔쳐 타고 그녀를 만나지만, 후환이 두렵지도 않은지 방글방글 웃는다. 속물인지 생각이 없는 건지 감을 잡기 어려울 때쯤, 친구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서는 아이처럼 눈시울을 붉히는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종잡을 수 없는 순수한 매력으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은 배우 최태환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난 13일 종방한 종합편성채널 JTBC ‘밀회’에서 손장호 역을 맡았던 최태환은 크지 않은 비중에도 제대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한때 모델 활동을 했던 경력을 증명하듯 긴 팔다리를 휘저으며 브라운관을 한껏 누볐건만, ‘날티’가 나기는커녕 되레 캐릭터의 순수함만 빛났다. 극 중 이선재(유아인)와 박다미(경수진)의 ‘절친’으로 출연한 그는 풋풋하지만, 꼭 그 나이 때에만 담을 수 있는 허영심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며 ‘밀회’에 녹아들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작품이 사실상 그의 첫 정극 데뷔작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 지난 2012년 KBS2 ‘드라마스페셜-습지생태보고서(이하 습지생태보고서)’를 통해 데뷔한 뒤 영화 ‘변호인’에서는 피고6 역으로, SBS 드라마 ‘상속자들’에서는 최영도(김우빈)의 친구 역으로 얼굴을 비쳤지만, 아쉽게도 임팩트는 없었다. 그런 그가 톱스타가 즐비한 ‘밀회’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았을 터. 하지만 그는 주제만큼이나 무거웠던 극의 또 다른 한편에서 완충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이름조차 생소했던 그의 연기에 마음이 가기 시작했던 것도 딱 그즈음부터이다.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은 최태환은 연신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말하며 신인 배우다운 겸손함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럼에도 눈빛에서는 배우의 길을 갈망하는 ‘연기에 대한 열정’과 자신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는 ‘남자의 자신감’이 묻어난다. 배우가 되기에 좋은 조건에 적절한 야망과 패기까지 갖춘 이 남자, 조만간 한 건 할 것 같다.

Q. ‘밀회’의 반응이 뜨거웠다. 인기를 실감하는가.
최태환: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직도 지하철 타고 다니는 데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하하.

Q. 오디션을 통해 ‘밀회’에 합류했다고 들었다. 안판석 PD는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하는 걸 선호하지는 않는 타입이라고 들었는데.
최태환: 나도 처음에는 출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다. 안 PD님과 정성주 작가는 물론이고 김희애, 유아인, 박혁권, 김창완 등 출연 배우 라인업이 대단하지 않았나. 정말 오디션을 보러 들어가서 긴장한 탓에 바들바들 떨었다.

Q. 오디션 때 준비했던 게 무엇인가.
최태환: 운이 좋았던 건지, 친하게 지내는 성준과 김영광 선배가 출연해 즐겨봤던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대본을 받았다. 그래서 영광 선배에게 물어보면서 차근차근 준비해나갔다. 막상 오디션을 볼 때는 안 PD님이 분위기를 리드해주셔서 편하게 했다. “(네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편하게 해라”고 하시더라. 사실 오디션을 마친 뒤에도 붙었다는 생각은 안 했었다. 다만 안 PD님이 용기를 북돋아 주셨던 게 기억에 남아 한동안 멍했던 기억이 난다.



Q. 결국, ‘밀회’에 출연하게 됐고 소위 ‘안판석 사단’이라 불리는 배우들과 현장에서 호흡을 주고받았다. 이러다가 사단에 합류하는 거 아닌가.
최태환: 하하하. 아, 정말 그러고 싶다. 너무나도 그러고 싶다.

Q. 당신이 워낙 신인이다 보니 현장에서 많은 선배 배우들이 조언을 해줬을 것 같다.
최태환: 김희애 선배는 이름을 외워서 살갑게 불러주셨다. 정말 아직도 그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가네? 하하. 박혁권 선배는 항상 내게 존대를 하시고 “밥을 먹었느냐”고 먼저 인사를 건네셨다. ‘밀회’ 현장에는 좋은 선배의 표본이 가득했다. 연기만큼이나 값진 배움을 얻은 기분이다.

Q. 자, 이제 작품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당신이 바라본 장호는 어떤 인물인가.
최태환: 스무 살 청년 장호는 정말 철이 없는 친구다. 가수도 배우도 아닌, 연예인을 꿈꾸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근데 사람 자체는 나쁘지 않다. 다만 꿈을 이루기에는 조건이 여의치 않았던 상황에서 우성(김권)을 만나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되는 거다.

Q. 장호를 어떤 인물로 그려내고 싶었나.
최태환: 안 PD님은 딱 한 가지만 강조하셨다, “장호가 인간이기를 원한다. 연기한다는 느낌보다도 정말 인간이기를 원한다”고. 모든 고민은 그 지점으로부터 시작됐다. 사실 대본이 워낙 디테일해서 캐릭터를 잡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선재의 가장 편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Q. 초반부에 짧게 언급이 되기는 했지만, 선재, 다미, 장호의 관계는 보통 끈끈한 게 아니다. 특히 세 사람의 자연스러운 호흡에서는 미처 그려지지 않은 세 사람의 과거까지 표현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태환: 사실 나도 선재처럼 친구가 많지 않다. 그래서 더 잘 몰입할 수 있었나? 하하. 선재, 다미, 장호는 친구라기보다는 가족과 같은 느낌이 강했다.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으면서 함께 스무 살의 통과 의례를 겪고 있는 그런 친구들. 그래서 다미가 선재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드러냈을 때나 선재의 불륜을 알게 된 뒤에 같은 지점에서 고민하고 울어줄 수 있었던 거다.



Q. 선재와 혜원이 발 담군 세계에는 상류층의 허위의식이 가득했다면, 장호가 머무는 세계에도 나름의 허영과 속물근성이 넘쳐났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유라(진보라)에게 거짓말을 하고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장호의 모습이 묘하게 처연하고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최태환: 가족 관계마저 비즈니스가 돼 버린 그들의 세계만큼은 아니지만, 장호의 세계도 허영이 가득했다. 또 장호가 자신이 하는 일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채 멋도 모르고 움직이는 게 더욱 그런 느낌을 자아내지 않았을까 싶다. 어른들의 세계와는 다르지만, 또 아주 다르지는 않은 그런 세계를 그려보고 싶었다.

Q. 물론 주어진 배역의 공도 있겠지만, 장호 역을 연기하는 당신의 모습에서는 위화감이 없었다. 연기 경력이 짧은 것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인상적인 성과다.
최태환: 아직 멀었다, 하하. 현장에서 매일 느끼고, 경험하고, 고쳐나간 결과이다. 정말 배우가 되고 싶었으니까. 그 마음이 조금이라도 나의 연기에 담겼다면 다행이다.

Q. 한때는 잘 나가는 모델이었다. 왜 그렇게 배우가 되고 싶었나.
최태환: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어느 순간 ‘이제는 연기해야지’하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아마 제대 후 ‘습지생태보고서’에 출연했던 경험이 컸던 것 같다. 첫 작품이 내게 남긴 묵직한 감정이 나를 배우의 길로 이끌었다.

Q. 아무리 몸으로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있을지라도 모델과 배우는 상당히 다른 작업이다. 그간 어렵게 쌓아온 경험을 내려놓고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겠다.
최태환: 정말 많이 다르다. 나날이 마음이 단단해져 간다, 더 단단해져야 하고. 처음에는 잘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생각하지 않고 뛰어들었다. 큰 역할은 아니었지만, 몇 편의 작품을 마친 뒤에야 내가 부족한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힘이 난다. 뭐가 문제인지 아니까, 연기 수업도 연습도 전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있다.

Q. 최근 모델 출신 배우들의 인기가 대단하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들보다는 다소 늦게 연기자의 길에 뛰어들었다는 생각도 든다. 뒤처지는 것에 대한 조바심은 없나.
최태환: 내가 꼭 그들과 같은 선상에 서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자리를 잡고 싶다. 하지만 그건 배우로서 나만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를 의미하는 거다.



Q. 아, 어찌 보면 군대도 다녀왔으니 상대적으로 유리한 측면도 있겠다, 하하.
최태환: 왜 아니겠나? 하하. 나도 그 틈을 노리고 있다.

Q.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리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가 아닐까. 당신만의 색깔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배우로서의 성장과 직결될 것 같다.
최태환: 배우로서 살 것이라면 색깔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빨강, 파랑, 이런 게 아니라 나만의 느낌을 담는 것 말이다. 짧은 경험이지만, 연기가 나를 바꿔놓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연기를 시작한 후에는 성격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변했다. ‘좋은 배우가 되려면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말, 그 말대로 살기 위해 노력할 거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나도 한마디!][텐아시아 뉴스스탠드 바로가기]
[EVENT] 뮤지컬, 연극, 영화등 텐아시아 독자를 위해 준비한 다양한 이벤트!! 클릭!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