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브라이언 싱어님 엑스맨을 낳으시고, 매튜 본/브라이언 싱어님 엑스맨을 기르시니 ∥ 관람지수 9
돌연변이를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 센티넬로 인해 뮤턴트들의 입지가 좁아진 2023년. 종말위기에 놓인 엑스맨들은 울버린(휴 잭맨)을 1973년 과거로 타임슬립 시켜, 젊은 찰스(제임스 맥어보이)와 에릭(마이클 패스벤더)에게 도움을 청한다. 센티넬의 탄생을 막아 역사 자체를 수정하겠다는 것. 정해진 운명을 바꾸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엑스맨: 최후의 전쟁’(2006)은 팀 버튼 떠난 ‘배트맨’ 시리즈의 몰락을 떠올리게 했다. 브라이언 싱어 대신 메가폰을 잡은 브렛 래트너의 한계는 명확했다. 그에겐 ‘엑스맨’을 묵직하게 요리할 취향이나 재능이 부족했다. ‘엑스맨: 최후의 전쟁’은 한마디로 ‘엑스맨’ 시리즈의 돌연변이 같았다. 다행히 ‘배트맨’ 시리즈를 심폐소생술로 살려낸 크리스토퍼 놀란과 같은 구세주가 ‘엑스맨’에게도 나타났다. 프리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의 메가폰을 잡은 매튜 본은 2등석으로 강등된 ‘엑스맨’ 시리즈를 1등석으로 끌어올리며 시리즈 갱생의 발판을 다졌다. 갱생의 마무리는 다시 돌아온 브라이언 싱어다. 11년 만에 귀환한 싱어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자장 안에서 ‘엑스맨’ 시리즈를 완벽하게 복구해 낸다. 그야말로, 특급귀환이다.
오프닝이 거대하거니와 끝도 창대하다. (충성도 높은 팬들의 예습과 복습을 믿는) 브라이언 싱어는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결코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센티넬들과 엑스맨들의 처절한 싸움으로 문을 여는 영화는 아드레날린 넘치는 액션으로 초반부터 관객의 심박수를 끌어올린다.
이전 작들의 연장과 새로운 돌파구 사이에서의 조화는 브라이언 싱어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오리지널 ‘엑스맨’ 시리즈의 캐릭터(휴 잭맨, 패트릭 스튜어트, 이안 맥켈런, 할 베리, 엘런 페이지)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주역(마이클 패스벤더, 제임스 맥어보이, 제니퍼 로렌스)들은 물론 새로운 엑스맨(에번 피터스, 판빙빙, 숀 애시모어)들까지 품은 영화는 신구캐릭터들의 개성과 전사를 하나의 사건 안에 이물감 없이 잘 비벼낸다.
무엇보다 앞선 시리즈들이 풀어 놓은 이야기를 조합하고, 정렬하고, 재배치 한 후, 장점은 살리고,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하게 지워내는 솜씨가 감탄스럽다. 자칫 산으로 갈 수 있는 방대한 스토리 복구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시퀀스를 아우르는 힘 조절이 치밀하게 이뤄져 2시간 훌쩍 넘는 상영시간에 피로감이 거의 없다. ‘엑스맨’ 1, 2편이 자아냈던 ‘품격’은 이번에도 영화를 떠받치는 든든한 백그라운드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능력으로 따지면, (접촉한 물체와 순간적으로 일체가 되는) 동화 능력을 지닌 키티 프라이드(엘렌 페이지)와 가장 닮았다. ‘터미네이터’의 대체우주론, ‘백 투 더 퓨처’의 시간여행, 총에서 발사된 총알의 움직임을 초 슬로우 모션으로 잡아낸 ‘매트릭스’의 블릿 타임 기법 등 성공한 영화들의 장점을 쏙쏙 뽑아와 마치 자신의 것인 냥 시치미 뚝 떼고 동화 시켜버린다. 액션영화를 기대하는 팬들에겐 액션의 비중이 양적으로 아쉬울 수 있지만, 대신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액션 장면들은 완성도 면에서 질적으로 우수하다.
영화에서 관객의 마음을 가장 강렬하게 도둑질하는 뮤턴트는 ‘퀵 실버’이리라, 장담한다. 감옥에 갇힌 매그니토를 구출하는 장면에서 활약하는 퀵 실버의 배짱과 유머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음악(짐 크로스의 올드팝 ‘Time In a Bottle’)과, 위트와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퀵 실버의 매그니트 구출작전’은 우아하면서도 품격 있는 장면으로 기록 돼 있는 ‘엑스맨 2’의 탈옥장면(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매그니토가 손짓 하나만으로 간수의 철분을 모두 빼내 탈옥용 흉기를 만든 뒤 플라스틱 감옥을 빠져나가는 장면)과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한마디로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잠시 샛길로 빠졌던 시리즈를 갱생시키는 가장 근사한 형태의 모범 답안인 동시에, 전 시리즈를 관통하는 뮤턴트들을 무더기로 감상할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이자,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시리즈의 단단한 뿌리와도 같은 영화다.
물론, 마블의 영화들이 그렇듯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지론을 피해가지는 못한다. 가령 비행기 안에서 우격다짐하는 찰스와 에릭의 (귀여운) 신경전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를 보지 않고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다. 미스틱(제니퍼 로렌스)을 향한 찰스의 애잔한 마음과 미스틱과 에릭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교류 또한 그러하다. 이 영화만 보겠다고 해도 말리지는 않겠으나, 가격 대비 고성능의 쾌감을 만끽하고 싶다면 적어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보고 가길 권장한다.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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