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뛰어난 완성도에 3040세대 중장년층 제대로 힐링 경험해

흔히 인생을 살아본 사람들은 30~40대가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황금기라고 말한다. 아직 젊은데다 사회적 위치도 자리 잡혀 가면서 가장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도 젊음의 방황을 접고 안정감이 생기기에 행복지수가 가장 높을 수 있는 때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기반을 마련해 더 이상 빈곤하게 살 필요가 없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30~40대들은 이런 황금기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현재 30~40대뿐만 아니라 50대까지 중장년층들 사이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보다 현재의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아등바등 대며 달리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렸건만 현실은 전혀 변하지 않고 미래는 여전히 우울하다.

젊은 시절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면 사회가 바뀔 것이라고 믿고 정신없이 달렸지만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또한 ‘꿈’ ‘희망’이란 걸 아예 꿈꾸지도 못하는 젊은 세대를 바라보면서 죄책감과 함께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무엇을 잘 못 살았는지 자책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해도 답을 찾기가 힘들다. 현재 우리 사회의 중심축을 잡고 있기에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도 없다. 중장년층들의 가슴 속 상처를 다독일 치유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발표된 가수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가 고개 숙인 대한민국 중장년층들에게 치료약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이유는 이번 앨범에서 전설의 가수 고 김광석, 김현식, 이문세, 조덕배, 김완선, 산울림, 클론 등의 80~90년대 명곡들을 리메이크하며 가수로서 성장한 모습을 선보였다. 이 앨범은 중장년층에게 젊은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에 머물지 않고 아픔을 치유하며 큰 위로가 되고 있다. 아이유의 청아한 목소리가 얼어붙은 가슴을 녹이며 오랜만에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고 있다.
사실 난 ‘꽃갈피’를 접하기 전까지는 아이유의 팬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나이에 비해 가창력이 뛰어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매력이 있다는 건 인정했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을 한방이 부족했다. 그러나 ‘꽃갈피’의 수록곡을 한곡 한곡 들으면서 놀라운 음악적 성장에 놀라며 무한반복 재생해 듣고 있다. 더 이상 귀엽기만 한 국민 여동생이 아니라 상처받은 대중들의 가슴을 치료해주는 진정한 ‘뮤즈’로 거듭나 있었다. 자신의 가창력을 뽐내려 하기보다 명곡들에 숨어 있는 감성을 담담히 형상화해내며 듣는이들을 추억의 기차에 탑승시키고 있다.

타이틀곡 ‘나의 옛날 이야기’를 들을 때 첫사랑이 기억나지 않은 남성들은 없었을 것이다. 마치 조덕배가 부른 원곡 속 소녀가 부른 답가의 느낌을 주는 이 노래에서 아이유의 신비스러우면서도 성숙된 음색은 중장년층 남성 팬들에게 죽어있던 세포가 살아나는 듯한 묘한 경험을 선사한다. 조덕배의 원곡을 들으며 첫사랑에 가슴 아파하며 밤 지새우던 소년 때의 순수한 감성을 되살린다. 나도 그랬다. 좋아하던 여자 아이에게 영화 보러 가자는 거 거절당한 후 이불을 뒤집어쓴 채 조덕배의 ‘나의 옛날 아야기’를 카세트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의 옛날 이야기’를 들은 후 ‘사랑이 지나가면’를 연이어 듣는다면 소주 생각이 분명 날 것이다. 사랑을 한번이라도 경험해본 사람은 누구나 알 것이다. 헤어진 후 옛사랑을 그리는 이 노래의 역설적인 가사의 의미를. 이문세가 아닌 아이유가 부르는 첫 소절 ‘그 사람 날 알아도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를 듣게 되면 대부분 무장 해제돼 추억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러며 정글 같은 사회생활을 하며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에게 아름다웠던 첫사랑이 있었고 누군가의 첫사랑의 대상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또한 자신도 한때는 빛나고 아름다운 젊음을 가졌었다는 사실도 되새기며 편안한 미소를 짓게 된다.



마냥 향수에 젖어 축 처지는 느낌이 들 때 ‘꿍따리 샤바라’를 듣는다면 활기를 금세 얻게 된다. 국가부도사태가 난 IMF 때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클론의 ‘꿍따리 샤바리’를 들으며 용기를 얻고 힐링을 경험했다. 우크렐라 반주를 배경으로 아이유가 클론과 함께 부른 ‘꿍따리 샤바라’는 귀를 정화시키며 가슴 속에 희망의 싹을 틔우는 느낌을 들게 한다.

이외에도 산울림 김창완과 함께 부른 ‘너의 의미’는 아빠와 딸의 협연 같은 훈훈함이 느껴진다. ‘꽃’에서는 고 김광석의 시(詩)에 가까운 가사의 감성을 살려내며 진정한 아티스트다운 면모를 선보인다. 김현식의 원곡을 재해석한 ‘여름날의 꿈’에서는 이제 소녀가 아닌 신비스러운 여인의 향취가 물씬 풍긴다. 김완선의 댄스곡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에서는 전설을 색다르게 재해석하는 후배 아티스트로서의 패기가 느껴진다.

음악만큼 대중을 움직이고 하나로 모으는 장르는 드물다. 책 한권이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듯이 노래 한곡이 사람의 인생을 충분히 바꿀 수도 있다.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희망을 전해줄 수 있고 앞으로 나가기 두려운 사람에게 한 발짝 성큼 나아갈 용기를 줄 수도 있다. 과거 여러 사람들의 인생을 바꿔온 명곡들을 모은 아이유의 이번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는 요즘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최고의 힐링 프로젝트다. 아티스트로서 성장도 눈부시지만 그보다 힘든 우리 중장년층에게 큰 위로를 전해줬다는 면에서 의미가 더욱 깊다. 아이유는 이번 앨범을 통해 젊은 층뿐만 아니라 중장년층까지 아우를 수 있는 가수가 됐다. 아이유가 앞으로 아티스트로서 또 어떤 변주를 시도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글. 최재욱 대중문화평론가 fatdeer69@gmail.com
사진제공. 로엔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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