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선희가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여전한 열정으로 후배들을 감동시켰다

현대사회에서 급변화하는 ‘선후배’ 관계, 서로 존중하며 소통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는 ‘좋은 선배’가 되는 일이다. 예전처럼 술 사주고 밥 사주는 게 ‘좋은 선배’가 되는 지름길인 시대는 아니다. 잘해준다고 고마워하기는커녕 ‘호구’ 취급당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업무에 있어서 모든 일을 잘 챙겨주고 사생활까지 관심 가져주며 조언을 해주는 것도 더 이상 현명한 일은 아니다. 본의 아니게 필요 없는 간섭을 하는 걸로 매도당할 수 있다. 요즘 후배들은 업무로만 연결되기 원하지 인간적으로 친밀해지는 걸 꺼린다.

직장 생활 20년차인 나도 주위를 돌아보면 변화하는 세태에 놀랄 때가 많다. 선배가 후배들을 대신해 일을 많이 하면 후배들 길 안 열어주고 일 욕심이 많다고 욕 먹기 일쑤다. 반면에 많은 일을 맡기면 월급 더 많이 받으면서 하는 일 없이 논다는 소리를 듣는다. 사회가 개인주의가 심화되면 될수록 ‘선후배 관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 선배들이 자리를 잡고 살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눈치를 보며 맞춰주며 살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할 소리 하면서 욕 먹고 살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요즘 또래의 친구들 만나 술자리를 할 때 나오는 가장 흔한 주제는 ‘들이대는 후배들을 관리하는 방법’이다. 과거 일방적으로 선배들의 말에 순응해야만 했던 사회초년병 시절을 보낸 우리 세대들은 직장과 자신의 삶을 철저히 이분화하는 후배들의 모습에 당황스러워한다. 젊은 시절에는 권위주의적인 상사에 짓밟히고 관리자 입장에 서니 후배들에게 치이고 있다며 서로를 위로하곤 한다. 착한 후배들과만 일해온 나는 주로 들어주는 입장이 된다.

이런 가운데 최근 KBS2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를 보며 ‘좋은 선배’란 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지난 3월15일과 3월22일 방송된 ‘엘리지의 여왕-이미자 특집’과 3월29일과 4월5일에 방송된 ‘나 항상 그대를-이선희 특집’은 선후배간의 정이 뭔지 느낄 수 있어 뭉클한 감동을 전해줬다.

전설의 이미자는 엄격한 조언으로 정상급 후배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가수 경력 55년의 이미자와 가수 경력 30년의 이선희는 후배들의 노래를 들으며 다른 방식으로 애정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이미자는 후배들의 노래에 찬사만 남발하던 이전 전설들과 달리 엄격한 조언을 마다치 않아 후배들을 긴장시켰다. 현재 가요계에서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울랄라 세션, 거미, 정동하에게 전하는 아주 솔직한 감상평에서 55년간 가수로서 쌓아온 자부심이 물씬 느껴졌다. 현재 정상의 위치에 서 있는 후배들은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오랜만에 들어보는 쓴소리에 감사해하는 모습을 보여 감동을 더했다. 선배는 역시 일에 관련돼서는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 후배들에게 할 말은 해야 한다.

이선희는 엄격한 선생님이기보다 다정한 언니 누나의 느낌이 강했다. 아직도 현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가수답게 후배들의 공연을 유심히 보면서 공부하고 자극을 받는 느낌이 들어 더욱 신선했다. 30년차지만 가수로서 모든 걸 이룬 게 아니라 여전히 ‘배고픈’ 현재 진행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들의 헌정공연에 무작정에 감격스러워하기보다 새로운 기운을 얻어가는 모습이었다. 역시 인생은 끊임없는 배움의 연속. 자신이 모든 걸 알았다고 자부하는 순간 퇴보의 시작이다. 진정한 선배는 후배들에게서도 배울 점을 찾아야 한다.

김종서는 부활 김태원(왼쪽)과 신대철(오른쪽)의 도움을 받아 감동의 무대를 보여줬다

지난 4월12일 방송된 ‘내한 가수 특집’에 출연한 김종서에게서도 진정한 선배의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사실 김종서는 출연자가 아닌 ‘전설’로 출연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전설’이 되기보다 후배들과 호흡하며 ‘현역’으론 남고픈 그는 아들뻘 되는 아이돌 가수들과도 경쟁을 벌이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이날 ‘전설의 기타리스트’ 김태원 신대철의 도움을 받아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호텔 캘리포니아)’를 부른 그는 ’명불허전‘의 공연을 펼쳤다. 김종서의 우승이 예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제국의 아이들이 뉴키즈 온더 블록의 ’Step by step’로 에너지 넘치는 공연을 펼치자 전세가 금세 뒤바뀌었다. 후배들의 공연을 기분 좋게 즐긴 그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승자 자리를 내줬지만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후배들이 잘할 때 진심을 다해 칭찬해줄 수 있고 그 능력을 인정할 줄 아는 게 진정한 선배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과연 2014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좋은 선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후의 명곡’에 출연한 이미자, 이선희, 김종서를 보면 윤곽을 잡을 수 있다. 우선 자신의 일에서 확실한 능력을 가져야 한다. 능력이 있어야 카리스마도 생기고 조언을 제대로 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위에서 지시하려기보다 옆에서 지켜볼 줄 알아야 한다. 눈을 맞추고 이야기해야 요즘 젊은 세대들의 가능성이 더 잘 보이고 소통이 더 수월하다. 세 번째로는 생각이 유연해야 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만 옳다 생각해 가르치려하기보다 후배들에게서 새로운 감각을 배우고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이게 맘처럼 쉽게 되는 일은 아니란 건 나도 안다. 사람 일이란 게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이 안날 경우도 많다. 그럴 땐 하고 싶은 대로 살고 귀를 막고 사는 게 맘 편하다. 또한 노력해도 소통이 안 된다고 너무 속상해하지 말자. 자신도 예전에 좋은 후배였는지 곰곰이 따져보자. 아니였으면 업보라 생각하고 그냥 혼자 이렇게 속으로 되뇌길. “너 같은 후배 꼭 만나 고생해봐라!”

글. 최재욱 대중문화평론가 fatdeer69@gmail.com
사진제공.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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