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황후’ 30%대 육박하는 시청률에 ‘태양은 가득히’는 3%대 초라한 성적
우리 사회를 사는 중산층이라면 살다보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게 부지기수다. 정글 같은 직장에서나 안락해야 할 삶의 공간인 집, 편안해야 할 친구관계, 직접 만날 수 없는 온라인상에서 의도치 않게 피해를 입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이뿐만 아니라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들에게 납치당해 살해를 당하는 끔찍한 일도 수시로 뉴스에 보도된다. 잠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말 그대로 ‘눈 뜨고 코 베이는 시대’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사회적 시스템에 의해 피해를 보상받고 싶어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순리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다. 불공평한 일투성이고 벌 받아야 할 사람들은 멀쩡히 잘 사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사회적인 기반이 마련돼 있지 않으면 억울하다는 말도 시원하게 할 수 없다. 그러니 복수를 꿈꿀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럴 때마다 소시민들은 대부분 복수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잊으려 노력한다.
인생을 절반 정도 살아온 나도 항상 머릿속으로는 복수를 꿈꿔왔다. 어린 시절 몸이 약했던 나를 괴롭혔던 학교 친구들부터 군 복무 때 다채로운 ‘갈굼의 퍼레이드’를 선사했던 고참, 일을 시켜놓고 책임은 절대지지 않는 직장 선배, 내가 신참이었을 때와 달리 절대 고분고분하지 않은 후배들까지 복수하고 싶었던 대상들은 참으로 많고 많았다. 그러나 복수에도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 것. 그래서 시간의 흐름에 모든 걸 맡기며 잊으려 노력했다.
최근 몇 년간 방송가는 과히 ‘복수 드라마 전성시대’다. ‘복수계의 전설’로 꼽히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여주인공 금자(이영애)가 했던 명언 “받은 만큼 돌려드릴게요”를 충실히 실천하는 드라마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복수 타임’으로 불러야 할 아침과 저녁일일 드라마부터 주말극, 미니시리즈까지 복수를 전면으로 내세우거나 복수가 극의 한 축을 이루는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만큼 대한민국에는 가슴 속에 맺힌 게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내가 최근 가장 즐겨보는 복수 드라마는 역시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극본 장영철 정경순, 연출 한희 이성준)다. 불가능도 가능케 할 것만 같은 하지원이 원나라 황실을 배경으로 펼치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복수극이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사실 ‘기황후’는 처음에는 역사왜곡 논란 탓에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고려에서 공녀로 건너간 기승냥(하지원)이 원나라 황후에 오르는 과정을 그리는 성공 드라마가 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러나 역시 대중의 마음을 읽는 장영철 정경순 작가의 필력은 대단했다. 가상의 드라마로 콘셉트를 변경해 기승냥의 복수가 기둥 줄거리가 되면서 심장을 쫀득쫀득하게 하는 긴장감이 형성돼 빼놓지 않고 본방사수를 하고 있다.
이에 반해 같은 시간 KBS2에서 방송되는 ‘태양은 가득히’(극본 허성혜, 연출 배경수)는 같은 복수를 소재로 했지만 애국가 시청률과 비슷한 3%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아무리 경쟁작이 강하다 하더라도 너무 낮은 성적이다. 나도 다운받거나 재방송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막상 드라마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 복수극의 묘미를 잘 살리고 있고 몸을 사리지 않는 윤계상의 열연에 대한 찬사가 나오고 있다. 한번 보기 시작하면 다음회가 궁금할 정도로 완성도도 갖췄다.
상반된 결과는 왜 나왔을까? 우선 ‘기황후’의 기세가 너무 세고 소치 동계 올림픽과 첫방이 겹쳐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힘들었던 면이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그보다 대중이 전형적인 복수 드라마에 지친 면도 영향을 끼쳤다. 한 억울한 남자가 신분을 바꿔 복수에 뛰어든다는 설정으로는 요즘 같은 다채널 시대에서 눈길을 사로잡기 힘들다. 또 각종 막장 드라마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에게 ‘태양은 가득히’의 전개방식은 너무 점잖은 정공법을 택했다.
더구나 복수는 여자가 해야 제 맛이다. 근육질의 잘 생긴 윤계상이 펼치는 복수는 아슬아슬하기보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일찍 예측된다. 이에 비해 감수성이 풍부한 여자들의 복수는 한계치가 없어 더욱 흥미진진하다. 겉모습은 보이시했지만 사랑 앞에서는 천생 여자였던 승냥이가 갖은 수난을 겪은 후 독해져 복수를 펼치는 모습은 극적 재미를 배가한다.
더불어 드라마 밖 세상인 현실의 상황이 너무 암울하다. ‘기황후’는 팩션사극이어서 현실을 잊을 수 있지만 ‘태양은 가득히’의 분위기는 시청자들이 보기에 피로할 정도로 어둡다. 정치와 경제 등 현실이 힘든데 드라마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은 것. 그러나 막상 보면 복수뿐만 아니라 감동적인 러브 스토리도 한축을 이루며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린다. 제작진들이 아쉬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모든 문학 작품이나 영화, 드라마를 보면 복수를 이룬 사람들의 말로는 대부분 쓸쓸하다. 복수의 맛이 달콤하기보다 허무했던 것. 받은 만큼 돌려주려 해도 상실감은 결코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최고의 복수가 무엇인지 눈으로 확인했다. 러시아 국적으로 금메달 3개를 따내는 안현수를 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느꼈을 것이다. ‘최고의 복수는 성공’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지나온 날보다 앞으로 다가올 날을 바라보며 현실에 충실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현명한 방법일 듯하다.
글. 최재욱 대중문화평론가 fatdeer69@gmail.com
사진제공. MBC K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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