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속 천송이라는 여자야말로 별에서 온 것일까? 그녀는 이름처럼 천 가지 정도의 표정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순수한 얼굴을 할 때는 보는 이의 마음까지 정화시킬 정도로 한없이 사랑스러운데 금세 눈물을 떨어뜨릴 듯 세상 가장 처연한 표정도 지을 줄 안다. 또 다른 날에는 여배우의 우아한 자태를 머금더니 “아임 쏴리” 과한 영어 액센트가 터져나오는 순간의 반전은 또 예측불허다. 그러다 세상만사 다 겪은 듯 노곤함과 조롱을 뒤섞은 얼굴도 존재한다.
그런 천송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매력의 진폭은 엄청나며, 이런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난 배우는 당연히 날갯짓을 하게 된다. 그런데 천송이를 연기하는 배우 전지현을 캐릭터의 수혜자로만 평가하기는 아쉽다. 도리어 천송이라는 캐릭터가 배우를 잘 만나 더욱 탄력적으로 그려진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을 정도이니까.
대중이 기억하는 천송이의 가장 강력한 장면을 꼽자면, 6회에 등장한 ‘천송이가 랩을 한다’ 신일 것이다. 이 신은 알려진대로 대본에는 없는 전지현의 애드리브가 빛을 발한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여러 코믹신에서 원래 대사에 살을 더 붙여 천송이의 엉뚱한 면모를 더욱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럽게 살려냈다. 덕택에 매회 등장하는 천송이의 말랑말랑한 매력이 느껴지는 신이 시청자들을 매료시킨다. 전지현을 칭찬해주고 싶은 대목은 그러나 이런 애드리브 신만은 아니다. 보는 이의 허를 찌르는 진짜 반전은 엉뚱한 대목이 아니라 그녀가 노련한 배우임을 알려주는 ‘완급조절’에 있다.
전지현은 분명 천송이의 말랑말랑 재미있는 신들이 대중에 먹힐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영리한 배우는 이런 신들에만 힘을 쏟지 않고 아직은 대중이 주목하지 않고 있는 천송이의 아픔까지도 알듯 모를듯 새겨넣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천송이가 당장 처한 위험인 소시오패스 재경(신성록)과의 관계에서 오는 불안함, 아직은 시청자들이 알지 못하는 (어쩌면 배우 본인 역시 온전히 알지 못하는) 전생(?) 속 이화와의 연결고리, 그리고 아역배우 김현수가 연기하는 어린시절 천송이의 숨겨진 아픔들까지 차곡차곡 오늘날 천송이의 표정 속에 채워넣고 있다.
자칫 넘칠 수 있는 캐릭터가 될 수 있었던 천송이를 사랑스러운 바탕 색감 속에 피뢰침처럼 번쩍거리는 매력으로 하이라이트를 주고, 군데군데 규칙적인 가랑비를 내려 아픔을 덧칠해내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전지현이라는 배우의 노련함 그리고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2001년 ‘엽기적인 그녀’로 대한민국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던 스타 전지현은 한때 CF퀸에만 머무르는가 싶더니, 2012년 영화 ‘도둑들’ 속 예니콜로 화려한 제2의 전성기를 열어젖히며 그녀의 건재함을 알렸다. 이후 2013년에는 영화 ‘베를린’ 속 련정희라는 먹먹한 캐릭터로 무거운 진동을 느끼게 해주었고, 무려 14년 만에 TV 컴백작인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로는 매주 이틀 대중을 매료시키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천송이와 전지현을 떨어뜨려놓고 생각할 수 없고, 그런 천송이와 전지현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이 겨울이 참으로 행복하다. 그래서 14년 만에 TV 속으로 걸어들어온 그녀의 존재는 더없이 반갑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제공. HB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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