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에서 군의관 역을 맡은 심희섭

변호인(송강호)은 짜장면과 함께 다급한 쪽지를 건내 받는다. 배달원으로 위장한 변호인은 사복 경찰의 감시를 따돌린채 성당으로 향한다. 성당 안에는 두려움을 이기고자, 용기를 얻고자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한 청년이 있다. 변호인은 다가가 그의 불안한 어깨를 꽉 잡는다. 청년이 돌아 본다. 죄책감과 두려움, 그리고 용기가 뒤섞인 얼굴로.

고문 현장을 목격하고 부림사건의 증인으로 선 군위관은 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한 축을 담당 한다. 군의관을 연기한 배우 심희섭은 단 몇 분의 등장만으로도 묵직한 존재감을 각인 시켰다. 심희섭의 얼굴은 영화 ‘변호인’(감독 양우석)에서 가장 신선했으며 깨끗했다.

‘변호인’은 올해로 스물 일곱살이 된 심희섭의 두번째 필모그래피가 됐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그는 2013년 ’1999, 면회’(감독 김태곤)를 통해 스크린에 처음 얼굴을 내비쳤다.

심희섭의 얼굴은 해사하고 선하다. 그러나 쉽게 속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의뭉스러운 데가 있다. 해맑게 웃는 그에게 칼 하나만 쥐어주면 장르는 금세 스릴러로 바뀔 기세다. 심희섭은 어디에나 어울리는 얼굴이면서 동시에 어디에도 없는 얼굴이다.


선하고 맑지만 마냥 투명하지 않은 그만의 떡잎은 그의 전작이자 데뷔작인 ‘1999, 면회’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떡볶이 코트 안에 ‘폴로’ 스웨터를 단정히도 받혀 입은 스무살 상원(심희섭) 은 그 속내가 단정치만은 않다. 친구 민욱(김창환)의 면회길에서 상원은 녹록지 않은 남자 어른들의 세계를 맛본다. 민욱의 여자친구로부터 온 이별편지, 다방 아가씨와 함께한 첫경험, 그리고 “서로 좋아서 한 것”인줄 알았던 그것이 ‘8만원 짜리’ 였다는 사실까지. 상처와 비밀들을 고스란히 떡볶이 코트안에 눌러 담은 상원은 문득 문득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채 친구 승준(안재홍)에게 버럭 화를 내며 분노와 불안함을 표출한다. 비록 상원이 눌러 담은 꿍꿍이가 다소 ‘웃픈’ 스케일이지만 심희섭은 상원을 통해 그 어떤 꿍꿍이도 품을 수 있을만한 ‘꿍꿍이의 큰 그릇’을 보여 줬다.

‘1999, 면회’에서 심희섭의 모습을 보노라면 스크린에 처음 얼굴을 내민 ‘와이키키 브라더스’(감독 임순례,2001) 박해일의 모습이 스친다. 첫 눈에 반한 소녀에게 변변한 고백 한 마디 못하고는 술 먹고 찾아가 꼬장을 부려대는 그 십대 소년의 모습. 단정한 얼굴 뒤에 ‘똘끼’를 그득 숨겨 놓은 듯한 박해일의 그 얼굴이 심희섭과 겹친다. 박해일의 그 ‘똘끼’는 ‘살인의 추억’(감독 봉준호,2003)에서는 연쇄살인범의 그것으로, ‘연애의 목적’(감독 한재림, 2005)에서는 성욕 충만한 교사의 그것으로 다듬어져 박해일 전매특허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심희섭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해사한 얼굴 뒤에 숨겨진 그만의 ‘똘끼’로 만들어낼 심희섭표 캐릭터가 궁금 하다. ‘단언컨대 2014년은 심희섭의 해가 될 것’이라는 덕담으로 마무리 짓고 싶지만 조심스럽다. 올 한해 검색어를 오르내리다말 스타 배우의 길을 걷는 심희섭이 아닌 뚝심있게 필모그래피를 쌓아 가는 좋은 배우가 되는 그가 보고 싶기 때문이다.

글. 강소은 silvercow@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