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먼저 건강이 어떤지 궁금하다.(이날 인터뷰는 건강상의 이유로 당초 예정보다 1주일 뒤에 진행됐다.)
참 매서운 인상이다. 드라마 ‘로열패밀리’, ‘해를 품은 달’, ‘메디컬 탑팀’ 등 최근작에서 김영애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그런 인물을 연기해 왔다. 강하고, 표독스러운 표정이 먼저 떠오른다. 자신의 야망에 거슬리는 사람은 가차 없이 내치는 독기가 서려있다. 실제로도 그런 사람이겠거니 생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거 아닐까. 영화 ‘애자’에서 우리네 엄마를 연기하기도 했지만, 그 모습은 금세 잊혀졌다. 김영애는 변화가 필요했다. 그 선택은 ‘변호인’으로 이어졌다. 영화 외적인 논란이 있을 거란 걱정도 있었지만, 그 보다 색깔을 바꾸고 싶은 욕심이 더 컸다. 그리고 그 욕심은 제대로 적중했다. 김영애는 국밥집 주인이자 아들을 위해 눈물을 쏟는 평범한 엄마의 옷을 입었다.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표독스러움은 싹 사라졌다. 영화의 흥행을 떠나 김영애 개인에게는 성공적으로 색깔을 바꿨다는 게 더 기쁨으로 전해지지 않을까 싶다.
김영애 : 지난번에 너무 힘들어서 1주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다. 이돈구 감독의 ‘현기증’이란 영화를 9,10월 동안 찍으면서 드라마 ‘메디컬 탑팀’을 겹치기로 했다. 정말 오래 못살겠구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1주일만 더 있으면 정말 병원에 들어갈 것 같았다. 예술영화 한편을 욕심내서 하다가. 일을 하는 이유가 작품, 돈, 사람 등 세 가지다. 친한 사람이 내가 꼭 필요하다고 하면 하게 된다. 그 다음엔 생활해야 하니까. (웃음) 그리고 작품이 좋은 경우는 말할 것 없이 당연하다. ‘현기증’은 온전히 작품 때문이었다. 언제 이런 시나리오를 받을까 싶었다. 무리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무리일줄 몰랐다.
Q. 최근 단편영화에도 출연하는 등 영화 출연이 부쩍 잦아진 것 같다.
김영애 : 누군가가 나를 써서 자기가 말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겠다 싶어서 하게 된다. 하필이면 가장 바쁠 때 해서. (웃음) 앞으로도 기회가 있으면 하고 싶다. 누군가한테 좋은 일로 쓰일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다.
Q. 일을 하는 3가지 기준 중 ‘변호인’은 어느 기준에 부합한 건가.
김영애 : 작품이다. 색깔을 바꾸고 싶었다. 미니시리즈 3편을 하면서 약간 고급스러운 느낌 또는 경직되고 힘 있는 걸로만 인식돼 있는 것 같았다. 그것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했다.
Q. ‘변호인’은 영화 외적인 이슈를 가질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정치적인 이슈나 그에 따른 부담은 없었나.
김영애 : 그거 때문에 사실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변호인’이 많은 관심을 받을만한 작품이고, 그런 작품에 참여해 색깔을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란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보다 그 욕심이 더 컸다.
Q. 이런저런 직, 간접적인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데.
김영애 : 내 생각이 소중한 만큼 나와 다른 의견도 존중은 해줬으면 좋겠다. 각자의 몫이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변호인’을 시작하면서부터 정치색을 피해갈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개인적으로 영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 각자가 느끼는 건 각자의 몫이다.
Q. 앞서 말한 것처럼, 최근 드라마에서 강한 역할만 해서인지 사투리 연기가 새롭게 느껴졌다. 원래 부산 출신인데 말이다.
김영애 : 스무살까지 부산에 있었다. 그리고 동생이 바로 아래층에 산다. 매일 같이 (사투리로) 대화하니까 하나도 새삼스러운 게 없다. 친구들하고 통화할 때도 부산 사투리로 한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내가 부산 출신인지 모르고 있는 것 같더라. 어떻게 사투리를 잘하냐고 묻는 분도 있는데, 그럼 그냥 웃는다. (웃음)
Q. 강한 이미지가 많다 보니 그렇게 인식되는 것 같다. 부산 출신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것도 같고.
김영애 : 깍쟁이 같은 얼굴이라서 그런 거 같다. 이번에 ‘메디컬 탑팀’ 보면서 표정을 그렇게 지어서 그런지 몰라도 진짜 못되게 생긴 것 같았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웃음) 그래서 내가 부산이라는 생각을 못하신 게 아닌가 싶다.
Q. 영화의 주된 배경이 1980년대다. 1970년도 초에 데뷔했으니 그 당시에도 배우 생활을 계속 했을 것 같은데, 그 당시를 관통한 배우이자 사람으로서 그 당시를 이야기해 달라.
김영애 : 사실 먹고 살기 바빠서 일만 열심히 했다. 1971년도부터 배우가 됐고, 1973년 드라마 ‘민비’에서 주인공을 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가장으로 있었다. 사느라 바빠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언론시사회 때 영화를 처음 봤는데 보면서 많이 미안했다. 내 식구 외에 나는 과연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위해 날 희생한 적이 있었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Q. 그렇다면 그 시대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건가, 아니면 ‘변호인’을 하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든 건가.
김영애 : 누구나 자기 삶을 열심히 산다. 그런데 진실이나 정의, 이런 건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다. 그걸 위해서 내 이익을 던질만한 용기나 배짱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 자신이 그렇게 못하고 있고, 내 앞가림하느라 정신없이 살아온 몇 십 년이었으니까. 그런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잘 살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Q. 그 시절엔 정말 진실과 자유가 없었나.
김영애 : 1980년도면 지금부터 30여 년 전이다. 그러면 내가 30대 초반쯤인 것 같다. 그때는 주인공을 하면서 너무너무 힘들었다. 주인공을 한다고 돈을 많이 주던 것도 아니었다. 또 그때도 집안의 가장이었고, 그러다보니 사는 게 바빴다. 이외 다른 데에 눈을 돌릴만한 여유가 없었다. 솔직히 사회에 눈을 뜨기 시작한 건 사업하면서 부터다. 사실 사업도 배우를 근사하게 하고 싶어서 한 거다. (작품에) 겹치기를 하지 않으면 돈을 모을 수 없으니까. 그게 싫어서 돈은 다른데서 벌고, 연기는 근사하게 할고 겁 없이 뛰어들었다. 그런데 회사가 커지면서 몇 백 명의 직원들이 있다 보니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사회적인 책임 등을 느꼈다. 결국 망하면서 정리가 됐지만. 그때도 많은 직원들 때문에 정말 가슴 아팠다.
Q. 그런 경험이 다시 연기를 하게 됐을 때 어떤 영향을 미치거나 변화로 다가오던가.
김영애 : 연기 말고 다른 쪽으로는 사람 앞에 나서는 걸 되게 싫어한다. 카메라 앞에서는 겁나는 게 없는데, 무대 인사한다고 올라가는 건 굉장히 부담스럽다.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다. 그나마 내가 가진 능력 중 가장 나은 게 연기라고 생각한다. 배우가 안됐으면 어디에 쓸모가 있었을까 생각을 하곤 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연기자로 할 수 있는 건 하겠지만, 다른 현안에 목소리를 내는 건 안하지 않을까.
Q. 지금도 소위 정부에 다소 반하는 의견을 내놓는 연예인들이 알게 모르게 출연 제약을 받는다. 옛날에는 더 했을 것 같다.
김영애 : 그땐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 사회적으로 눈뜨지 않았고, 신문 사회면을 본 게 사업을 하면서부터다. 그리고 나서서 행동할 용기도 못 가졌고.
Q. 평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나.
김영애 : 솔직히 말씀드리면 젊은 시절은 잘 몰랐고, 대통령 되고 난 이후에 알았다. 그런데 (영화 같은) 이런 면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Q. 그렇다면 이 작품을 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김영애 : 나는 어떤 연기든지 내가 움직이는 대로 한다. 다행히 대본을 여러 차례 보다보면 인물이 들어온다. 완벽히 그 인물이 들어오게 되면, 가슴이 움직이는 대로 한다.
Q. 시나리오를 반복적으로 보면서 본인은 캐릭터를 완벽히 흡수했다고 하더라도 호흡을 맞추는 배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래서 연기할 때 상대 배우가 무엇보다 중요하겠다. ‘변호인’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들은 어땠나.
김영애 : 맞다.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연기하기 싫을 때도 있을 정도다. 그만큼 달라진다. 시완이는 ‘해를 품은 달’을 같이 했지만, 만난 건 처음이다. 송강호, 오달수 등 배우들 역시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송강호는 알아주는 배우다. 첫 촬영이 송우석 변호사를 찾아 가서 울고불고 매달리는 장면이었는데 너무 긴장됐다. 누군가의 평가도 무섭지만, 내가 보고 ‘김영애 이거 밖에 안 돼’라고 할까봐 많이 무섭고 떨렸다. 그런데 정말 송강호가 편안하게 받아줬다. 그리고 시완이와 첫 촬영은 면회 장면이다. 그게 영화의 두 번째 촬영이기도 하다. 시완이 눈을 쳐다보면서 울고불고 해야 했다.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두 장면을 시작과 함께 해서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이렇게 순서를 했냐고 짜증 많이 부렸다. (웃음)
Q. 특히 임시완과는 모자의 호흡을 맞춰야 했다.
김영애 : 우리 아들이 서른 살이다. 그냥 아들 처럼 느껴졌고, 시완이도 싹싹하게 나를 대해줬다. 사실 영화 할 때 시완이가 엄청 많이 긴장했다. ‘왜 이런 걸 택했지’ 싶을 정도였다. 고문당하는 게 너무 고생스러운 역할이다. 면회 장면에서도 완전 넋 나가 있는 걸 연기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시완이가 연기 잘한다고 칭찬 받을 수 있는 건 송강호의 공이 크다고 본다. 자상하게 잘 가르쳐 줬다.
Q. 다른 배우들 말고, 본인의 연기는 어땠나. 색깔을 바꾸고 싶다고 했는데 그렇게 된 것 같은가.
김영애 : 지금도 내가 한 걸 보면, 몸이 오그라들어서 편치 않다. 그래도 어쨌든 보긴 봐야 할 것 같아서 보긴 했는데, 맨 처음 들어온 게 내 눈가 주름살이다. (웃음) 원체 영화 무게가 있어서 영화에 빨리 빠져들었다. 모니터 한 작품 중에선 가장 빨랐던 것 같다.
Q. 그럼 가족하고도 잘 안 보는 편인가.
김영애 : 같이 안 본다. 혼자 보거나, 잘 못했다 싶으면 아예 안 본다. 지금도 현장에서 모니터를 잘 안 본다. 만족스러울 때가 많지 않은데 모니터 확인하고, 매번 다시 하자고 할 수 없지 않는가. 그래서 찜찜하니까 아예 안 본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연기를) 하고 나면, 내 느낌이 제일 정확한 것 같다.
Q. 그렇다면 지금까지 수십 년 연기를 해오면서 그래도 모니터를 할 정도로 마음에 든 작품이 많았나, 아예 안 본 작품이 많았나.
김영애 : 내가 해 놓고 잘했다는 소리를 어떻게 하나. (웃음) 일을 하면서 시간에 쫓기게 되는데, 내가 다시 해서 더 잘할 수 있는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 거다. 만족해서 넘어가는 게 없다. 그런 경우는 아주 가끔인데, ‘황진이’ 할 때 몇 번 그런 적이 있었다. 온전히 그 인물에 빠져서 내가 어떻게 한지 모르고 지나간 적 있다. 그럴 때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Q. 데뷔한 지 40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아직 연기가 그렇게 힘든가.
김영애 : 늘 첫날밤 같다. 모든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늘 떨리고, 새로 시작하는 것 같다. 나는 배우인 게 감사하고, 최고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막 희희낙락하면서 일은 못한다. 나를 많이 볶고, 힘들게 하는 편이다.
Q.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스타일이다.
김영애 : 그렇다. 잘 안되니까. 역할에 익숙해지고, 그 인물이 나한테 들어와야 편안해 지는데 그러면 이미 늦다. (웃음) 그래서 늘 힘들고, 어렵다.
Q. 드라마와 영화 촬영을 병행했는데 속도감이 있어 환경이 다를 것 같다. 거기에서 오는 차이가 있나.
김영애 : 영화는 배우가 최상의 것, 최선의 것을 뽑아낼 수 있게 준비를 다 갖춰놓는다. 영화를 많이 하고 싶긴 하다. 영화 하는 분들이 김영애라는 괜찮은 중고 신인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웃음) 한 눈팔다 들어오니까 배우로서 입지는 옅어져 있더라. (Q. 설마?) 아니다. 정말 그렇다. 금방 잊어버리니까. 그러니 괜찮은 중고 신인이 있다고 이야기 해 달라. (웃음)
Q. 앞으로도 연기 폭을 넓히는 데 주력할 것인가.
김영애 :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것보다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다는 게 우선이다. 43년 간 일하면서 ‘나 이거 했습니다.’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작품도 참 많았다. 그리고 그 다음에 가능하면 한 가지 색깔이 아닌 여러 가지 색깔로 만나고 싶다.
Q. 최근 종영한 ‘메디컬 탑팀’은 그다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반면 영화 ‘변호인’은 엄청난 흥행을 기록 중이다. 냉탕과 온탕을 오간 셈이다.
김영애 : 인생은 공평한 것 같다. 잘됐다고 그렇게 좋아할만한 일도 아니고, 망했다고 엎어져 있을 만한 것도 아니다. 실패를 하면 실패한 만큼 얻는 게 있다. 또 다 얻는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얻으면서 잃은 것도 있다. 그래서 얻으면 감사하고, 잃으면 좀 힘들겠지만 영원하지 않다.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한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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