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별에서 온 그대’(왼쪽)과 영화 ‘맨 프럼 어스’ 포스터

UFO를 타고 온 외계인이 신분을 감춘 채 지구에 정착했다?! 최근 시청률 20%대를 돌파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SBS 수목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중심에는 ‘400년 전 지구에 떨어진 외계남’ 도민준(김수현)의 활약이 있다.

1609년 9월 25일 조선 땅에 떨어진 이후 404년 동안 지구에 처음 왔을 때와 똑같이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생의 삶을 사는 외계인 민준. 하지만 민준 보다도 먼저 지구를 찾아 1만 4,000년의 세월을 살아온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영화 ‘맨 프럼 어스(The Man From Earth)’(2007)의 존 올드맨(데이빗 리 스미스)이다. 이 주체 못 할 생명력과 매력을 가진 두 남자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도민준과 존 올드맨은 지구에서 의심받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교수’라는 직업을 택했다. 지방의 어느 대학에서 10년간 교수로 일해 온 존 올드맨은 10년마다 자신이 늙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다른 신분으로 바꿔 이주해왔다. 이 부분은 도민준도 동일하다. 어느덧 404년간 지구에서 살아온 민준은 지금은 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는 외과교수로 일했고, 조선 시대부터 무려 49년 7개월을 군대에서 복무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영화 ‘맨 프럼 어스’의 존 올드맨(데이빗 리 스미스)

‘외계에서 온 지적 생명체’다운 남다른 지능과 학습 능력도 이들의 공통분모. 존 올드맨은 이 능력을 활용해 시대별로 다양한 언어를 배우며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는 법을 배워왔고, 민준 또한 ‘아시아의 맹주’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가지 직업을 경험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이 견딜 수 없었던 단 한 가지 어려움은 영원히 살 수 없는 인간과 함께하면 겪어야 하는 이별이다. 외계인이지만 인간처럼 누군가에게 사랑의 감정도 느끼고, 정을 나눴던 이들은 반복되는 이별의 상처를 견디지 못해 극도로 시니컬한 인간으로 변해버린다. 특히 민준은 인간들이 말하는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건 결국 호기심, 질투, 성욕, 소유욕, 연민, 의리, 습관 내지는 착각이라 단정 지어 버리고 만다.

하지만 ‘별에서 온 그대’와 ‘맨 프럼 어스’가 다른 점은 작품 속에 두 외계인을 변하게 하는 연인의 존재 여부. 물론 ‘맨 프럼 어스’에는 존 올드맨과 연인 관계에 있는 애니카 피터슨(샌디)가 있지만, 존 올드맨은 그녀에게 냉정히 자신의 상황을 말하고 관계를 정리한다. 반면 도민준은 방송이 거듭될수록 걷잡을 수 없는 심경의 변화를 겪게 된다. ‘사랑은 없다’고 단언하던 민준은 자신의 집에 찾아온 천송이(전지현)에게 조금씩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SBS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김수현)

이 부분에서 김수현의 연기는 빛을 발했다. 냉정하게 감정의 흔들림 없이 매사에 기계적인 반응을 보이던 민준이 천송이를 만나 조금씩 평정심을 잃어가는 모습을 김수현은 미묘한 눈빛만으로도 확실히 그려내고 있는 것. 장영목 역을 맡은 김창완이 “김수현은 연기가 굉장히 섬세한 배우”라고 극찬한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또 도민준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별에서 온 그대’가 극적인 변화를 예고하며 또 다른 관전 포인트로 자리 잡았다. 민준은 “특별한 능력을 갖춘 외계인이 인간을 도와줘야한다는 것은 착각”이라고 송이에게 못 박아 말했지만, 지난 2일 방송된 6회에서는 취재진에 둘러싸여 위기에 처한 그녀를 구하며 매니저까지 자청하게 됐다. 언뜻 보면 이해가 가지 않을 상황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사랑하는 소녀를 잃은 뒤 오열하는 연기까지 펼친 김수혁의 공이 컸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을 ‘섬’처럼 격리한 남자와 ‘스타’라는 직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섬’이 되어버린 여자. 두 남녀가 ‘외로움’이라는 공통분모를 찾은 이후 2m이던 마음의 거리는 1m가 되어버렸고, 이제 그 간격마저 사라질 순간이 가까워져 왔다. 마음의 상처에도 다시 한 번 사랑에 도전하기를 마다치 않는 조금 특이한 외계인 도민준. 이쯤 되면 ‘맨 프럼 어스’의 존 올드맨보다도 김수현이 연기한 도민준에 마음이 쏠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제공.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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