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악무니까 이가 깨지더라고요. 정말 이 악물고 열심히 살았는데 그게 결국은 저에게 독이 되서 돌아왔어요. 4~5년 전부터 정말 시끄럽게 살았죠. 잘 될 때는 너무 잘 됐지만 구설수에 오르니 한도 끝도 없이 내려가고… 원래 제 목표는 아버지 집 사드리고, 가요프로그램 1등하는 거였어요. 그 이상으로 해냈는데, 계속 뭔가를 갈구하게 되더라고요.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목이 말랐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목표를 정하지 않고 여유 있게 만들어보려 했어요. 덕분에 좋은 음악이 나온 것 같아요.”
가수 비(정지훈)가 3년 9개월의 공백을 깨고 정규 6집 ‘레인 이펙트’(Rain Effect)로 전격 컴백했다. 제대 후 새 앨범으로 돌아오기까지 한시라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최고의 스타로 이슈를 몰고 다녔던 비는 입대 후에 온갖 구설수에 휘말리며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좋은 뉴스보다 나쁜 뉴스가 훨씬 많았던 것이 사실. 하지만 지난달 26일 기자들과 만난 비는 의외로 침착한 모습이었다. “사실 제가 굴곡이 많았잖아요. 전 문제가 생겼을 때는 침묵하고 사실이 자연스럽게 밝혀질 때까지 기다리는 스타일이에요. 집착하지 않고 잘 털어버려요. 계속 녹음실에서 앨범 작업에만 몰두했어요. 아이디어를 짜느라 고민을 많이 했죠.”
비의 표정은 밝아보였지만, 마음고생이 많았을 터. 작년 초 열애설이 터지고 연예병사특혜논란이 이어졌고 제대 후에도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 심정이 어땠을까? “당시에는 ‘세상이 나에게 왜 이러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제가 잘못한 부분은 분명히 잘못한 거죠. 하지만 내용이 와전되면서 부풀려진 부분도 있어요. 억울한 것이 있어도 군인 신분이라서 변명을 할 수 없었어요. 연예인 최초로 군, 검찰, 경찰 3대 기관에서 모두 조사를 받았어요. 무섭기도 했죠. 하지만 지금은 모두 무혐의 처리 됐어요. 이제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어요? 열심히 제 음악을 할 때가 온 거죠.”
비를 세상에 알린 ‘나쁜 남자’가 2002년에 나왔으니 이제 솔로 데뷔 10주년을 훌쩍 넘었다. 당대를 대표하는 댄스가수였다. 비는 오랜만에 컴백하는 앨범인 만큼 직접 프로듀서를 맡는 등 음악적인 욕심을 내비쳤다. 유명 작곡가의 곡은 하나도 받지 않았으며 작곡 파트너인 배진렬(JR GROOV)와 함께 전곡을 작곡하고, 모든 가사를 직접 썼다. “요새 잘하는 작곡가가 참 많죠. 하지만 곡을 받아서 들어보면 음악은 좋지만 지금 유행하는 아이돌그룹과 너무 흡사한 거예요.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곡은 모두 피했어요. 물론 욕심은 많았죠. 지금 유행하는 스타일을 하기보다는 그냥 저다운 음악을 하려 했어요.”
비는 제대 후 몸 풀기로 아시아 단기투어를 돌았다. 이후 녹음실에서 밤을 새며 새 앨범을 완성해나갔다. 이번 앨범은 더블 타이틀곡인 ‘서티 섹시(30 Sexy)’와 ‘라 송(La Song)’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서티 섹시’는 어느덧 30대의 나이로 가수 활동을 재개하는 비의 원숙한 섹시함을 상징하는 곡으로 예전에 보여준 스타일의 연장선에 있다. “워낙에 저다운 곡이예요. 예전보다는 절제된 면도 있죠. 이제는 벗지 않아도 섹시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는 나 아니어도 벗을 사람이 많잖아요.(웃음) 안무를 먼저 짜고 그 다음에 음악을 만들었어요. 기존의 격렬한 안무와는 많이 달라요. 룸펜스가 만든 뮤직비디오를 통해서는 그림 위에서 춤추는 듯한 영상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매우 만족스러워요.”
‘라 송’은 예전의 비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리키 마틴 풍의 라틴 댄스 곡이다. “이제까지는 시도해보지 않은 장르라서 놀라실 수도 있어요. 일탈에 가까운 비라고 할 수 있죠. 제 노래 중에 다 같이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만들어봤어요. 2014년 월드컵에 어울리는 노래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보기도 해요.” ‘어디가요 오빠’에서는 같은 소속사 후배인 포미닛 현아가 피쳐링했다. “동생이 친오빠에게 놀아달라고 조르는 노래인데 현아가 잘 어울렸어요 ‘오빠 너무 열심히 하지마. 그러다가 죽어’라고 이야기하는 노래이기도 하죠.”
비는 예전에 비해 힘을 많이 뺐다. 항상 강렬하고 화려한 퍼포먼스를 추구했던 비가 절제를 알게 됐다. 춤의 난이도가 예전에 100이었다면 이번엔 60으로 낮췄다. 보는 음악보다는 듣는 음악에 집중하려 했다. “예전에 무대에 공을 들였다면 이번엔 음악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미디를 다 빼고 거의 밴드 사운드로 녹음을 했죠. 전 원래 비주얼 가수였잖아요. 처음부터 아티스트보다는 스타로 만들어졌죠. 하지만 이번에는 하루 종일 들어도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요. 전 이제 아이돌이 아니니까요.”
비는 슬슬 음악을 만드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고 한다. 예전처럼 독하게 달려들지는 않지만 음악적인 욕심을 더 부렸다. “곡을 만드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예전에 진영이 형(박진영 JYP 대표)이 비행기 탈 때 악기를 싸들고 타서 깔아놓고 곡을 만드는 것을 보면 제가 ‘형은 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요?’라고 묻곤 했어요. 그러면 진영이 형은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대답했는데, 이제는 제가 진영이 형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비의 컴백은 동방신기의 새 앨범 발매와 맞물린다. 선의의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셈이다. “동방신기도 데뷔 10주년이잖아요. 4집, 5집 때에도 동방신기와 거의 같은 시기에 나왔는데 서로 윈윈했어요. 그래서 같이 나오는 것도 느낌이 나쁘지 않아요. 오히려 재밌을 것 같아요. 윤호는 의리가 있는 동생이기도 해요.”
한편 비는 제대 전부터 미국 힙합 뮤지션 제이지가 설립한 락 네이션(Roc Nation) 측의 러브콜 소식이 알려지면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제이지와의 작업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예요. 미국 시장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좋은 프로듀서를 만나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난공불락의 시장이기 때문에 제이지든 팀바랜드든 현지 시장을 꿰뚫고 있는 프로듀서와 해야 비전이 있어요. 그런데 전 한국에서 먼저 잘하고 싶다. 일단은 한국 대중에게 먼저 인정을 받고 그 다음에 밖으로 나가는 것이 순서죠. 물론 마지막 한 방은 다시 한 번 미국 시장에 도전하는 거예요.”
비는 현재 브루스 윌리스, 존 쿠삭이 출연하는 할리우드 영화 ‘더 프린스’의 배역을 따낸 상태다. 이로써 이달 20일경에 영화 촬영을 위해 출국할 예정이다. 국내 앨범 활동이 촉박한 상황이다. “약 2주 정도 미국에 다녀와서 곧바로 굿바이 쇼를 하게 될 지도 몰라요. 하지만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없어요. 반응이 좋아서 오래 활동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콘서트는 아마도 여름쯤이 되지 않을까요? 땀 냄새 나는 공연이 너무 그리워요.”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큐브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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