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 신원호 PD(오른쪽)가 스태프에 지시를 하고 있다
입이 아플 정도다. tvN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공. 지난 해 ‘응답하라 1997′(이하 응칠)에 이어 올해 선보인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까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작년의 서인국, 정은지(에이핑크)에 이어 올해도 고아라, 김성균, 정우, 손호준, 유연석, 도희(타이니지), 바로(B1A4) 등 배우들이 상승가도를 달리고 있고, 세상은 이 시리즈가 말하는 1990년대의 추억을 다시 들춰보기 시작했다.Q. ‘응사’의 캐스팅은 ‘신의 한수’였다. 다시 생각해봐도 신기한 것은 어떻게 삼천포라는 캐릭터를 놓고 김성균이라는 배우를 떠올렸을까 하는 점이다. 그런 생각은 아무도 할 수 없었을텐데.
나정이(고아라)의 남편이 누구인가를 놓고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았었다. 시청자들은 인형의 위치, 책 제목 등 소품 하나하나를 뜯어보기 위해 눈에 불을 켰다. 무엇보다 이 시리즈의 매력은 인생에 있어 가장 풍요롭고 따스했던 시절에 대한 추억, 그리고 위로였다.
‘응칠’과 ‘응사’의 신원호 PD는 현재 떠들썩했던 ‘응답하라’의 세상에서 나와 조용히 2013년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그런 그의 휴식을 잠시 방해하고, ‘응답하라’의 뒷 이야기를 들려달라 청했다.
신원호 PD : 하루는 회의를 하다 상암동의 조용한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보았다. 평소에 회의하다 잘 안풀리면 작가들과 영화를 보러간다. 그날따라 ‘박수건달’이라는 영화 밖에 없더라. 딱히 보고 싶지 않았던 영화라 별 기대없이 보았는데 재미있는 거다. 예능하는 사람들 감에 맞는 영화였다. 그 중에서도 김성균이라는 배우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박수건달’의 저 캐릭터에 순박한 느낌을 입혀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진한 가발을 씌우면 또 다른 느낌이 나올 것도 같았다. 그렇게 김성균에 꽂힌 이후부터 삼천포가 만들어졌다. 그러니 만약 김성균이 끝까지 거절을 했더라면 그 캐릭터는 엎어버렸을 것이다. 같이 하면서는 이 친구가 굉장히 성실하고 착하더라. 그래서 삼천포와 잘 맞았던 것도 있을 것이다. 성균이에게 ‘이 드라마가 망해도 너는 건질 것 같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심성이 고운 그런 친구였다.
Q. 김성균이 특히 그랬지만, 유연석, 정우의 캐스팅 역시도 보통의 연출가들이 떠올리는 캐스팅과는 거리가 멀었다. 캐스팅 철학을 듣고 싶다.
신원호 PD : 기본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우리들은 비뚤어진 심정을 갖고 있다. 웃고 있는 사람을 울게 만들고 싶고, 우는 사람을 웃게 만들고 싶다. 아무 것도 안 그려져있으면 낙서하고 싶기도 하고. 때로는 무리수가 되기도 하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유연석이나 정우가 그런 경우인데, 특히 정우는 멜로와 안 어울리는 배우이니까 멜로를 입혀보면 어떨까 상상해보았고, 연석이도 악역을 주로 했던 아이인데 ‘응칠’의 윤제같은 짝사랑을 입히면 어떨까 생각했다. 글쎄, 철학이나 논리라기 보다 그냥 감이다.
‘응답하라 1994′ 신원호 PD가 대본을 보며 골똘히 고민 중이다
Q. 예능 출신 신원호 PD의 디렉션도 화제가 됐다. 명확한 디렉션과 정해진 설정 속에 연기를 하도록 만들지 않는다 들었다.신원호 PD : 명확한 가이드를 줘야할 때는 준다. 하지만 보통 ‘네 맘대로 한 번 해봐’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잘 안되면 내가 정한대로 가면 되고, 더 잘 나오면 내가 정한 100 이상이 나오는 것이다. 억지로 시켜서 하는 연기보다 열어두고 하고 싶은 것을 해보라고 했을 때 플러스는 분명히 생긴다. 배우들이 대본을 읽고 구현해내는 사람이지만, 앵무새는 아니지 않나. 스스로 마음이 닿아서 하는 장면들은 기존에 예상한 것 이상이 나올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사람들이 리얼 버라이어티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 리얼을 진심으로 하기 때문이다. 연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초반에는 당황스러울 수 있겠지만 그래도 ‘마음대로 해봐’라는 분위기를 많이 만들어줬다.
Q. 많은 시청자들이 ‘나정의 남편’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결국 쓰레기(정우)로 밝혀졌는데, 처음부터 쓰레기로 정한 상태에서 극을 끌고간 것인가.
신원호 PD : 100%였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다. 그것은 작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안테나를 세우고 사는 사람이다. 예능 PD들은 늘 한 주 찍고 그 다음주 반응을 보고 바꿔버리는 식으로 일한다. 드라마의 경우는 예능과 달라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과 생각이 잘못됐다거나 혹은 다른 변수로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방향성은 그대로 가자고 했다. 특히 멜로라인을 두고 사람들이 비비 꼴 것이라고 생각들 하는데, 작년도 올해도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멜로를 가지고 장난치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이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가는 이유는 일종의 시청자들을 끌고 가는 장치였다. 이야기꾼이 ‘여자가 있고 남자가 있는데, 둘이 결혼한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보다, ‘누구와 결혼했을 것 같아?’라고 시작하는 것이 훨씬 더 몰입도를 높인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한 반향이 이토록 클 것이라고는 작년도 올해도 예상을 못했다.
Q. 끝으로 차기작 계획을 묻겠다.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계속 될 것인지를.
신원호 PD : 모르겠다. ‘응사’는 물론 ‘응칠’의 인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단지 ‘응칠’이 터졌으니 ‘응사’하자 이런 것은 아니었다. 전국팔도에서 올라온 서울 상경기라는 콘셉트가 있었고 그것을 ‘응답하라’의 틀 속에서 해봐도 괜찮겠다 싶었기에 한 것이다. ‘응답’을 회사도 우리도 버리기는 아깝지만, 그 속에서 이야기 했을 때 좀 더 발전적인 콘셉트가 발견되면 할 것이고 아니면 다른 작품을 할 것이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제공.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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