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도 폴더 인사 꾸벅! 취재진을 향한 김준수의 인사에 카메라 셔터소리가 촤르르르르르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연습실을 울린다. 청바지에 검은색 스웨터, 책가방을 메고 쑥스럽게 들어서는 준수의 모습에서 광기의 샤차르트(‘모차르트!’)나 위험한 남자 샤토드(‘엘리자벳’)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미팅에서 ‘몰표’를 받을 것 같은 말간 대학생 오빠의 모습이었다고 하면 빠른 설명이 될까. 故 김광석 탄생 50주년 기념 창작뮤지컬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에서 김준수는 박건형과 함께 지욱 역을 맡아 스물다섯 살 로맨티시스트 복학생 청년부터 40대 중년에 이르는 세월을 소화한다.



첫사랑은 애잔하지만 짝사랑은 아픈 법이다. 29일 공개된 연습 현장은 사랑에 빠진 지욱(김준수)과 그런 지욱을 외사랑하는 여일(김슬기)의 만남으로 문을 열었다. 준수가 첫눈에 반한 여인 이연(오소연) 앞에서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장면이 연출될 때는 연습실 여기저기에서 여성들의 신음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오기도 했다. 연습에 임하는 준수의 얼굴에서 여유가 묻어난다.

사실 김준수의 이런 여유 있는 모습은 3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2010년 김준수가 ‘모차르트’로 뮤지컬 무대에 처음 섰을 당시만 해도 그를 향한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아이돌 출신이 어디까지 하나 보자!”는 의심과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 3,000석 규모의 대극장 공연 티켓 전 회를 매진시키는 놀라운 티켓파워를 보였다고 해도, 경쟁이 치열한 뮤지컬 무대 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타성을 뛰어넘는 그 무엇을 보여줘야 했다. 그로부터 4년. ‘천국의 눈물’ ‘엘리자벳’ 등을 통과하며 김준수는 4년 연속 한국뮤지컬대상 인기스타상을 받았고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으며 조승우 버금가는 뮤지컬계 블루칩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수상 유무나 티켓 매진 속도보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를 향한 ‘의심’을 ‘믿음’으로 바꿔놓았다는 점이다. 아이돌이라는 편견 속에 저평가되던 가창력과 숨겨진 연기력을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를 다그친 시간들. 그 시간이 모이고 모여 김준수는 뮤지컬 배우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연기자가 됐다. 겉멋 든 스타가 아닌, 성실한 노력파라는 평판 또한 그를 뮤지컬 배우로 자리매김하는데 적지 않게 작용했으리라.



그런 김준수에서 ‘디셈버’는 또 한 번의 시험대가 될 것이 자명하다. ‘디셈버’에서 준수가 맡은 지욱이라는 캐릭터는 우리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인물이다. 독특한 캐릭터일수록 연기하는데 유리한 면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지욱은 평범해서 더욱 어려운 인물이다. 캐릭터 자체가 강렬했던 ‘모차르트!’나 ‘엘리자벳’에 비해 정극연기가 요구됐던 ‘천국의 눈물’에서의 준수 연기가 약해보였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니 ‘디셈버’는 캐릭터가 아닌 온전히 김준수 개인의 연기력과 매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부담이 큰 작품인 셈. 이런 부담감을 그가 잘 이겨낼 것 같으냐고? 현장 공개를 본 입장에서 살짝 귀띔하자면,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1990년대로 간 김준수가 궁금한가? ‘광클’만이 정답이다! 아시다시피 그는 티켓 홈페이지 먹통의 주범이므로.

글, 편집. 정시우 siwooraini@tenasia.co.kr
편집. 박수정 soverus@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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