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샤이니, 자우림, 위댄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잔인한 너의 혀는 시뻘건 피를 마시며, 오늘을 노래하는가, 독을 뿜는 너의 혀는 검붉은 피를 마시며, 내일을 노래하는가카프카 ‘The Human Psyche’
카프카 ‘유령’ 中
송창열, 문채영의 일렉트로 팝 듀오 카프카(K.AFKA)의 6년만의 새 앨범. 지금이야 일렉트로니카를 응용한 음악들이 흔하디흔하지만 약 10년 전 카프카가 세상에 나왔을 때만 해도 이런 종류의 음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더구나 카프카는 단순히 전자음악으로 설명할 수 있는 팀이 아니었다.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처럼 초현실적이고, 또 외로운 존재였다고 할까? 새 앨범에도 역시 카프카 특유의 로킹(rocking)하고 촘촘한 질감의 사운드가 잘 살아있다. 카프카의 매력이라면 일반적인 트립 합이나 인더스트리얼 음악의 전형적인 진행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카프카를 들으면서는 다양한 상상이 가능하다.(카프카처럼 소리의 질감과 구성의 드라마틱함 양쪽으로 청자를 만족시키는 팀도 드물다) 헤비하고, 때론 댄서블한 음악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 이번에도 귀를 쫑긋 하고 들을 수밖에. 카프카가 낯선 이들에게는 음악이 다소 괴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마음을 열고 큰 볼륨으로 들어볼 것으로 권한다.
샤이니 ‘Everybody’
샤이니의 행보가 숨 가쁘다. 올해만 벌써 석 장 째 앨범. ‘Dream Girl – The misconceptions of you’, ‘Why So Serious? – The misconceptions of me’ 두 개의 파트로 나뉘어 공개된 정규 3집은 샤이니의 야누스와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드림 걸’이 친근하고 경쾌한 샤이니였다면 ‘와이 소 시어리어스’는 다소 심각하고 무게감마저 느껴졌다. 두 앨범의 공통점이라면 기존 보이밴드의 관성에 머무르지 않는 출중한 완성도를 들 수 있을 게다. 다섯 번째 미니앨범인 ‘Everybody’는 팀의 명함인 ‘컨템퍼러리 밴드’에 충실하며 샤이니의 디스코그래피 중에서는 R&B의 성향이 강한 축에 든다. 트렌디한 일렉트로 팝 ‘Everybody’, 복고풍의 R&B ‘닫아줘’와 같이 멜로디가 귀에 박히는 음악부터 ‘상사병’, ‘1분만’처럼 드라마틱한 전개가 돋보이는 곡들이 골고루 담겼다. 이것을 ‘드림 걸’과 ‘와이 소 시어리어스’의 절충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샤이니 특유의 청량감은 여전하다.
자우림 ‘Goodbye, grief’
이제 16년차를 맞이한 록밴드 자우림의 정규 9집. 한때 아마추어 밴드들이 남성 보컬이면 YB(윤도현 밴드)를, 여성 보컬이면 자우림을 카피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직도 여성을 프론트로 내세운 많은 밴드들이 자우림을 레퍼런스로 삼는다. 오랜 세월 바지런히 달려온 결과인 셈. 김윤아의 설명에 따르면 자우림은 1~3집에서 꽉 찬 사운드를 추구하고, 4~8집에서 여백을 주는 작업을 해왔다고 한다. 신보에는 ‘님아’와 같은 한국적인 록을 비롯해, ‘디어 마더(Dear Mother)’의 뮤지컬 풍의 악곡 ‘안나(Anna)’의 스케일 큰 오케스트레이션 등의 시도가 돋보인다. 특유의 우울한 매력 역시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청춘을 노래하되 막연한 희망이 아닌 냉정한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는 시각도 자우림답다.
위댄스 ‘Produce Unfixed Vol. 1’
후배에게 “요새 핫한 팀이야 들어봐”라고 위댄스를 소개하자 “어디서 핫한 팀이예요?”라는 수줍은 대답이 돌아왔다. 무심코 “동네에서 핫하다”라고 대답해버리고 멋쩍게 웃었다. (물론 농담이다) 위보(보컬), 위기(기타)의 2인조 밴드 위댄스는 몇 년 전부터 인디 신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정규 유통망을 통하지 않고 자신들이 CD를 직접 구워 판매해왔다. 작년 홍대 공중캠프에서 처음 본 위댄스의 CD는 ‘난장판’, ‘선명해지는 순간’ 등 곡 제목만 덩그러니 쓰여 있는 흰 종이와 함께 비닐에 담겨 있었다. 조악해보였지만 그 안에 담긴 음악만은 독특하고 생기가 넘치더라. 레귤러 앨범의 형태로 나온 ‘Produce Unfixed Vol. 1’에는 총 9곡이 담겼다. 위댄스는 2인조이기에 평소 공연에서 맥 컴퓨터로 일렉트로닉 비트를 깔고 공연을 했는데 이 앨범에서는 드러머 김간지가 참여해 리듬을 담당하고 있다. 위댄스를 아는 이들에게는 다른 질감의 사운드가 신선할 테고, 위댄스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역시나 독특한 감흥을 전할 것이다. 몸과 마음을 춤추게 하는 음악.
피해의식 ‘Magic Finger’
‘정통’ 글램 메탈 밴드 ‘피해의식’의 데뷔 싱글. 지난 12일 ‘잔다리 페스타’에서 피해의식의 라이브를 보고 완전히 반해버렸다. 글램 메탈에 대한 오마주를 담은 음악과 퍼포먼스도 좋았지만, 정작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이들의 만담, 그리고 가슴을 파고드는 가사였다. 보컬 크로커다일과 기타리스트 손경호가 주고받는 ‘마초’와 ‘찌질’의 경계에 위치한 만담은 하나의 콩트와도 같더라. “힐링 좋아하네! 내 킬링이나 받아라!”라고 외치는 피해의식은 묘하게도 힐링의 시간을 선사했다. 팀 이름을 피해의식이라고 지은 이유는 아직 앨범에는 실리지 않은 곡 ‘헤비메탈 이즈 백’의 가사 ‘통기타 치고 젬베 같은 거 두들기면서 존나 행복한 표정 짓는 병신 같은 너, 주둥이만 나불대는 힙합 돼지들 노래 안 하고 질질 짜는 감성 게이들, 사실 나도 너희들이 존나 부러워, 우리도 너네처럼 하고 싶은데’라는 가사를 보면 짐작할 수 있으리라. 싱글에는 발기부전 남성의 애환을 담은 타이틀곡 ‘매직 핑거(Magic Finger)’를 비롯해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 ‘난 니 친구가 아니야’가 담겼다. 이외에도 피해의식에게는 ‘첩이라도 괜찮냐는 니 말에’, ‘약탈’, ‘사면발이’ 등 강렬한 매력을 지닌 노래들을 가지고 있다. 어서 풀랭스 앨범을 발표해 우리에게 힐링을 선사하길.
그레이 ‘Mon’
군산 로컬 신(scene)에서 등장한 프로듀서 그레이(Graye)의 데뷔앨범으로 전자음악 전문 레이블 영기획에서 발매됐다. 그레이는 군산을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십여 장의 힙합 앨범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후 서울을 군산을 오가며 활동을 폭을 넓힌 그레이는 무키무키만만수의 리믹스 콘테스트, 정기 전자음악 공연 ‘WATMM’에 서며 지명도를 넓혀 나갔다. 앨범에는 ‘D’MON’, ‘E’MON’, ‘C’MON’, ‘A’MON’ 등 네 곡의 연주곡과 보컬 곡, 리믹스 곡까지 총 일곱 개의 트랙이 담겼다. 최근 클럽에서 흐르는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과는 확연히 다른 음악이다. 샘플링을 사용한다거나 음의 피치를 높여 청자를 흥분시키는 종류의 테크닉은 사용하지 않고, 하나의 테마를 지닌 음악을 만들었다. 때문에 댄스플로어보다는 방에서 감상용으로 듣기에 더 용이한 전자음악이 나왔다. 후쿠시 오요, 유카리, 다미라트 등 일렉트로니카 계열의 뮤지션들이 작업에 참여했다.
버디 ‘Fire Within’
열일곱 살 여성 싱어송라이터 버디(Birdy)의 정규 2집. 버디가 열다섯 살에 만든 1집을 들었을 때 단번에 ‘애늙은이’란 생각이 들었다. 1집은 한 곡의 자작곡과 열 개의 커버 곡으로 이루어졌는데, 커버 곡을 주로 수록한 이유는 중등교육자격시험을 준비하느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들려오는 목소리는 엄연히 성인여성이더라. (나이는 아이유보다 어린데, 아이유 이모뻘 되는 목소리다) 새 앨범에서도 역시 나이를 곱절로 먹은듯한 성숙한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전곡의 작곡에 참여했으며 피아노, 기타 연주를 보탰다. 이런 버디의 가능성을 알아봤는지, 아델의 프로듀서 댄 윌슨, 뮤즈, 악틱 몽키스, 시규어 로스의 프로듀서 리치 코스트, 멈포드 앤 선즈의 벤 로베트, 원 리퍼블릭의 러이언 테더 등이 앨범 작업에 참여했다. 버디의 재능에 날개를 달아준 격. 첫 곡 ‘윙즈(Wings)’부터 마지막 곡 ‘홈(Home)’까지 애늙은이 보컬의 진수를 선사한다.
플라시보 ‘Loud Like Love’
플라시보가 4년 만에 발표하는 정규 7집. 이제 플라시보도 어느덧 결성 20주년을 향해 달려간다. 리더 브라이언 몰코는 지난 7월 이메일 인터뷰에서 “모든 이야기가 한 가지 테마로 연결돼 있는 10개의 짧은 이야기의 컬렉션이라 생각하고 들어주면 좋겠다.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여러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해부했다. 우린 이번 앨범이 지난 앨범의 화답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마치 단편을 쓰는 작가처럼 가사를 쓴 것. 음악적으로는 전작과 어떻게 다를까? 몰코는 작업의 많은 부분에서 태블릿 장비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엑시트 운즈(Exit Wounds)’ 등에서 일렉트로 팝의 작법도 엿보인다. 그 외에 ‘투 매니 프렌즈(Too Many Friends)’, ‘어 밀리언 리틀 피스(A Million Little Piece)’, ‘보스커(Bosco)’ 등 피아노가 주를 이루는 곡들이 인상적이다. 몰코는 스마트폰을 쳐다보느라 자신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고 ‘투 매니 프렌즈’를 만들었다고 한다. 스마트폰에 목숨 거는 것은 그네들이나 우리들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
프란츠 퍼디난드 ‘Right Thoughts Right Words Right Action’
약 10년 전에 라디오에서 ‘테이크 미 아웃(Take Me Out)’을 들었을 때는 프란츠 퍼디난드가 이렇게 대형 밴드가 될 줄 미처 몰랐다. 그 노래만 듣고는 영국 최고의 신인이라는 수식어가 과장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프란츠 퍼디난드가 들려준, 포스트펑크에서 이어지는 거칠고 댄서블한 록이 어느새 대세가 돼 있지 않나? 지겨울 정도로 말이다. 4년 만에 발표하는 정규 4집에서는 예의 거친 사운드와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리듬이 역시 잘 살아있다. 첫 곡 ‘라이트 액션(Right Action)’을 듣자마자 기타연주로 춤추게 하는 능력은 프란츠 퍼디난드만한 밴드를 찾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브리프 엔카운터(Brief Encounter)’와 같은 곡에서는 신디사이저와 유럽의 고전적인 분위기가 잘 섞여 있는데 이런 것이 원숙함이라면 원숙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앨범을 통해서도 프란츠 퍼디난드는 지루하지 않게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에릭 클랩튼 ‘Unplugged’
이 앨범이 에릭 클랩튼의 대표작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앨범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1992년 발매돼 미국에서는 언플러그드 붐을 일으키는데 일조했고, 국내에서는 많은 이들이 이 앨범에 담긴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 ‘사인(Signe)’ 등을 카피하기 위해 기타 연습에 몰두했다. 팝 초심자들에게는 에릭 클랩튼이라고 거대한 세계에 들어가는 관문과 같은 역할을 해줬고, 아마도 이 앨범 때문에 블루스에 맛을 알게 된 이들도 꽤 있으리라. 발매 21년 만에 리마스터링 돼 발매된 새 버전은 6곡의 미발표 곡을 추가한 2CD에 공연 영상 및 미공개 리허설 1시간을 담은 DVD까지 포함돼 풍성한 내용을 갖추고 있다. 미발표 곡 중에는 1998년 앨범 ‘필그림(Pilgrim)’에 실려 히트하게 되는 ‘마이 파더스 아이(My Father’s Eyes)’가 포함된 것이 무척 반갑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