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대중음악은 흑인음악에 경도돼 있다. 대중가요계를 휩쓸었던 ‘소몰이 창법’이나 미디엄 템포의 R&B곡들 그리고 힙합 열풍이 그걸 증명한다. 아쉬운 것은 수많은 국내가수들이 흑인음악을 표방했고 하고 있지만, 진정으로 흑인음악의 원형질을 선보이는 뮤지션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는 흑인음악이 담고 있는 ‘한의 정서’라는 깊은 내면을 성찰하기 보단 어설픈 흉내로 인기에 영합하려는 천박한 접근태도가 불러온 필연적 결과다. 한국 블랙음악계는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재빠르게 취하는 가볍고 천박한 특성이 만연되어 있다. 여기 흑인음악의 원류를 찾는 동시에 한국 전통장단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는 더없이 소중한 한국대표 레게 인디밴드 <윈디시티>가 있다.
최근 한국대중음악은 흑인음악에 경도돼 있다. 대중가요계를 휩쓸었던 ‘소몰이 창법’이나 미디엄 템포의 R&B곡들 그리고 힙합 열풍이 그걸 증명한다. 아쉬운 것은 수많은 국내가수들이 흑인음악을 표방했고 하고 있지만, 진정으로 흑인음악의 원형질을 선보이는 뮤지션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는 흑인음악이 담고 있는 ‘한의 정서’라는 깊은 내면을 성찰하기 보단 어설픈 흉내로 인기에 영합하려는 천박한 접근태도가 불러온 필연적 결과다. 한국 블랙음악계는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재빠르게 취하는 가볍고 천박한 특성이 만연되어 있다. 여기 흑인음악의 원류를 찾는 동시에 한국 전통장단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는 더없이 소중한 한국대표 레게 인디밴드 <윈디시티>가 있다.
최근 인디뮤지션들의 해외공연이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다양한 장르 음악을 구사하면서 탁월한 음악성까지 담보한 이들의 활발한 해외 활동은 케이팝의 저변을 넓히고 경쟁력을 높이는 새로운 동력이 되고 있다. 지난 3월, 한국형 청국장 레게밴드 <윈디시티>는 세계적인 뮤직 페스티발인 미국 SXSW(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와 캐나다 토론토 CMW(캐나디언뮤직위크)에 참여해 현지 음악애호가들로부터 놀라운 반응을 이끌어내고 귀국했다.
하이라이트는 미국 오스틴에 있는 세계적인 월드뮤직 명가 <플라밍고 칸티나 클럽> 초청 공연. 사실 미국인들은 동양의 밴드공연에 무관심한 편이다. 실제로 이번 뮤직 페스티발에 참가한 한 일본 밴드는 공연에 단 한 명의 관객도 오지 않는 치욕을 맛보았을 정도. 그래서 <윈디시티> 멤버들은 공연홍보를 위해 길거리로 나가 꽹과리와 북을 치는 버스킹을 시도했다. 현지인들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음악을 듣고 나서 “고맙다”는 반응과 “돈을 내고 싶은데 어디다 내야하나?”고 묻는 사람도 있었단다. 길거리 공연의 예상치 못한 반응은 입소문을 탔고 클럽공연은 400명에 가까운 관객들로 꽉 들어찼다.
첫 곡으로 자메이카 토속리듬 ‘나이아빙기’에다 우리의 ‘지루박’ 리듬을 섞은 ‘빙기인트로’를 연주했다.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로 죄다 앉아 관망하던 관객들이 하나 둘 일어서기 시작했다. 이어 한국적 이미지가 진동하는 자신들의 신곡 ‘잔치 레게’와 지상파 TV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서 화제를 모았던 이장희의 ‘그건 너’로 연주가 이어지자 객석 전체가 리듬에 몸을 맡겨 흔들거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또한 해외공연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진도아리랑을 세마치장단과 휘모리장단으로 무장한 ‘Culture Tree’를 연주하자 열광의 도가니가 연출되었다. 본래 주최 측에서 이들에게 배정한 공연시간은 단 30분.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관객들의 앵콜 요청으로 공연시간은 1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대성공이었다. 공연 후 자메이카 전설적 스카 레게밴드 <스카탈라이츠(Skatalites)>의 리더가 찾아와 명함과 이메일을 주며 “함께 공연하고 싶다”고 호감을 표시했고 평소 존경하는 세계적 밴드 펑카델릭(Funkadelic)의 키보디스트 ‘버니 워렐’도 극찬을 하며 함께 기념촬영까지 했다.
한국에서도 유명하지만 해외에 더 인정해주는 한국 대표 레게밴드 <윈디시티>의 역사는 상당히 복잡하다. 그 뿌리는 인디음악의 태동기인 1997년 5인조 소울 밴드 <바이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후 무수한 이합과정을 통해 2004년 5인조 레게 밴드 <윈디시티>가 태동되었다. 2013년 현재, <윈디시티>는 창립자인 김반장(본명 유철상. 보컬, 드럼)을 음악적 구심점으로 리더 라국산(퍼커션, 코러스), 백여사(본명 백정현. 키보드, 멜로디카), 신서방(본명 신재원. 퍼커션, 코러스, 디저리두), 오진우(기타)에 최근 가세한 노선택(베이스)까지 6인조 라인업을 구축해 새로운 음악여정을 시작했다.
밴드의 뿌리인 김반장은 사진 빨이 잘 나오지 않아 ‘꽃거지’로 불리는 뮤지션이다. 실물을 보면 키가 크고 늘씬하고 삼삼한 꿀 피부까지 구비한 귀여운 외모다. 모던 록을 했던 시절 허여멀건 뽀얀 피부는 신기하게도 블랙음악을 하면서 구리 빛으로 변했다. 충북 제천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때 김범룡 3집을 처음 들었고 김현식, 유재하의 노래에 감수성을 자극받고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같은 반 짝꿍의 영향으로 독일 밴드 <본 파이어>를 시작으로 미국 <신데렐라>, <메탈리카> 같은 헤비메탈 밴드음악을 고등학교 때까지 몰입해 듣었고 특히 <주다스 프리스트>와 텍사스 밴드 <판테라>의 음악을 좋아했다.
대학 경영학과에 진학하면서 드럼 소리에 마음이 끌려 공부는 뒷전으로 밀렸다. 당시 천원만 주면 살 수 있었던 국산 개미표 드럼스틱을 구해 서울 종로의 음악학원에서 스틱 치는 법을 배웠다. 이후 종로 세화합주실, 건대 앞 ‘하드앤헤비’ 합주실과 집에 틀어박혀 전공 책이 구멍이 날 정도로 스틱을 쳐댔다. 졸업 후 취직해서 사는 평범한 삶이 싫었던 그는 1994년 PC 통신 하이텔의 헤비메탈 동호회에 가입해 이름도 없이 3인조 헤비메탈 밴드를 결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멤버들의 학업 때문에 밴드는 곧 깨져버려 헤비메탈 밴드 <히야신스>의 드러머가 되었다. 이때 습작처럼 자작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언니네이발관> 리더 이석원은 1994년 ‘메탈동’ 동호회 내에 모던 락 소모임을 만들었다. 창단 멤버는 정대욱(정바비/현 줄리아하트 멤버), 윤준호(현 델리 스파이스 멤버), 류한길, 윤병주(전 노이즈가든 현 로타운30 리더)였다. 소모임에 사람들이 모여들자 정식 밴드를 결성했다. 결성 당시 <언니네이발관> 창단 멤버는 보컬 겸 기타의 이석원, 키보드의 류한길, 베이스의 류기덕, 드럼의 유철상이었다. 유철상의 선발 이유는 ‘그저 팔다리가 길었기 때문’이라 한다^.^ ‘김반장’은 유철상이 통신동호회 활동 때 사용한 닉네임이다.
한국대중음악사에서 드럼을 치며 노래하는 뮤지션은 60년대의 전설적인 가수 배호 이후 70년대에는 <딕패밀리>의 드러머 서원 이외에는 찾기 힘들 정도로 희귀한 존재다. 드럼을 치며 노래하는 뮤지션 계보를 잇고 있는 김반장은 1996년 발표된 모던 록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1집에 세션으로만 참여했다. 그는 “이전에는 듣지 않던 힙합을 듣게 되었는데 특히 시각장애인가수 ‘스티비 원더’의 노래를 듣고 드럼과 베이스의 조화가 살아 움직이는 울림에 감명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마음과 정서를 표현하는 음악이 힙합이라는 생각이 들자 블랙음악을 해보고 싶었다.”고 회고한다. 브리티시 기타 팝을 추구했던 <언니네 이발관> 멤버들과 음악적 지향점이 달라진 유철상은 자연스럽게 밴드를 탈퇴했다.
2001년 김반장은 <버스라이더스>멤버였던 윤갑열(기타), 김문희(베이스) 그리고 임지훈(키보드)과 함께 4인조 퓨전 솔 밴드 <아소토유니온>을 결성했다. 팀명의 ‘아소토’는 부두교 제사의식에 사영되는 북 이름에서 가져왔다. 본명으로 활동했던 김반장은 이때부터 예명을 정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2003년 발표한 <아소토유니온> 1집은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60위를 차지해 김반장의 험난한 음악 탐구과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당시 음악 좀 듣는다고 하면 누구나 이들의 음악을 입에 올렸다. 찐득하면서도 리듬감이 넘쳐나는 이들의 음악은 소울의 진정성과 펑키의 오락성을 버무려 새로운 음악에 목말랐던 당대 젊은이들을 빠르게 흡수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멤버들의 음악적 노선에 의견대립이 생겨났다. 그래서 김반장과 윤갑열은 레게로 나아간 ‘윈디시티WINDY CITY’로 임지훈과 김문희는 솔, 펑크로 파고든 <펑카프릭부스터Funkafirc Booster>로 ‘발전적 해체’를 했다.
이제 한국의 레게음악 역사를 살펴보자. 자메이카 토속 음악으로 백인들에게 억눌린 흑인들의 애환이 담은 레게음악은 ‘밥 말리’에 의해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음악 장르다. 이 땅에 레게음악이 처음 소개된 것은 1985년이다. 당시 <신촌블루스>의 엄인호는 박동률과 양영수와 함께 밴드를 결성했다. 비록 미완성으로 그쳤지만 밴드<장끼들>은 한국최초로 정통 레게음악을 시도했던 밴드였다. ‘영 일레븐’, ‘젊음의 행진’등 주로 TV출연을 많이 했던 이들은 나이트클럽 ‘블루 쉘’을 주 무대로 활동을 하며 가수왕 이용의 백밴드로도 활약을 했다. 하지만 생소한 레게음악을 구사한 이들은 곧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 참의 세월이 지난 1994년 김건모의 ‘핑계’가 각종 가요차트 1위를 석권하고 있을 때, 미국에서는 레게밴드 ‘빅 마운틴’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그보다 앞선 1992년 국내에 등장했던 7인조 레게밴드 <닥터 레게>가 1994년 ‘어려워 정말’이라는 노래로 가요차트에 오르며 잠시 레게 선풍을 일으켰었다. 그 후 2003년 스컬과 이낙으로 구성된 레게 듀엣 <스토니 스컹크>는 타이틀곡 ‘라가 머핀’으로 인기를 얻었다. 2005년 <윈디시티>에 이어 2009년에는 <소울스테디락커스>로 국내 레게 뮤지션 계보가 이어졌다.
본격적으로 레게음악을 연주하고 싶었던 김반장은 밴드 <아소토유니온> 시절, 길거리 공연을 할 때 악기를 날라주며 인연을 맺은 스케이트보드를 타던 꼬마 고등학생 정상권(퍼커션)을 영입해 2004년 5인조 레게밴드 <윈디시티>를 출범시켰다. 밴드 명 <윈디시티WINDY CITY>는 미국 시카고에서 음악적 재능이 탁월한 새로운 뮤지션들을 발굴해 전문적으로 소개했던 음반 레이블 회사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1999년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전설적 밴드< 임프레션스(The Impressions)>의 멤버 커티스 메이필드가 창립한 음반사다. 그러니까 <윈디시티WINDY CITY>는 멤버 개인의 숨겨진 재능을 서로서로 발굴해 끄집어내주는 화합과 조화의 정신을 지향하는 밴드인 셈이다.
“레게음악을 무엇이라 생각하냐?”고 물었다. 김반장은 “레게란 자연스런 삶의 방식에서 나오는 그러니까 노동요에서 시작해 최첨단의 감각과 만나 변화하는 음악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하는 말도 매일 같이 먹는 음식도 다 레게다. 일반적으로 다른 장르의 음악은 채워 넣는 특징이 있지만 공동체 성격이 강한 레게는 조화를 위해 빼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 그게 레게음악의 매력이다”라고 설명한다. (PART2로 계속)
윈디시티 프로필
1994년 김반장 5인조 모던 록 밴드 <언니네 이발관> 창단멤버
1997년 5인조 소울 밴드 <바이닐>결성. 정규앨범(1999년) 발표.
1998년 3-5인조 밴드 <브라운 슈가> 결성
2000년 김반장 4인조 솔 밴드<버스라이더스> 합류. 첫 레게 창작곡 ‘드라이브 레게’ 발표
2001년 4인조 퓨전 솔 밴드 <아소토유니온> 결성
2003년 <아소토유니온> 1집 ‘Sound Renovates A Structure’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60위 선정
2004년 5인조 레게밴드 <윈디시티> 결성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