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유지태 감독." />영화 <마이 라띠마>의 유지태 감독.

‘배우’가 아닌 이제 ‘감독’이다. 영화 <마이 라띠마>는 유지태 영화가 분명하지만 유지태는 없다. 그의 연기 대신 그가 매만진 인물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매 작품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유지태, 이번에는 한발 뒤로 물러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누군가를 지켜보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유지태의 감독 데뷔가 뜬금없는 일은 아니다. 또 인기 배우의 ‘무모한’ 도전도 아니다. <자전거 소년> <나도 모르게>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초대> 등 단편 영화를 통해 차근차근 장편 감독 데뷔를 준비해 왔다. 그의 단편은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마이 라띠마>, 결코 허투루 만들지 않았단 의미다. 제15회 도빌아시아영화제는 그에게 심사위원상을 안기기도 했다. ‘감독’으로서 ‘인정’ 받은 셈이다.

물론 오해의 눈길도 많다. 그간 상업영화 테두리에 있었던 유지태가 들고 온 <마이 라띠마>는 저예산 영화다. 박중훈, 하정우 등이 상업영화 감독 데뷔를 하는 것과 다른, 다소 아이러니한 포지션이다. 어찌 보면 그를 만나기 전까지 색안경이 씌워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그러다 보니 고지식하고 어려울 거란 편견도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하지만 보기 좋게 ‘배신’ 당했다. 영화의 메시지는 분명했고, 유지태가 매만진 영화 속 인물들이 전하는 감정은 또렷했다. 저예산으로 높은 퀄리티와 많은 재미를 주려는 고민의 흔적도 엿보였다. ‘감독’ 유지태의 차기작이 기대될 정도다. 여태껏 ‘배우’ 유지태를 만나왔지만, 이번엔 ‘감독’ 유지태를 만나 그의 ‘감독세계’를 들춰봤다.

Q. 배우 유지태는 많은 개봉을 경험했지만 감독 유지태는 처음이다. 기분이 색다를 것 같다.
유지태
: 사실 개봉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상상을 안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지, 어떻게 현실화 시킬지에 대해 많이 집중했던 것 같다. 언론시사회 날 아침, 극장에서 트레일러를 보는 순간 마음이 두근두근했고, 감동이 밀려왔다.

Q. 그동안 단편 연출은 있었지만 장편 연출은 처음이다. 첫 연출을 하면서 이 이야기를 꺼내든 이유가 뭔가. 더욱이 15년 전부터 품고 있었던 이야기라고 알려졌는데.
유지태
: 개인적 취향이다. 영화학도 시절 좋아하는 감독, 존경하는 감독들의 데뷔작이 주로 성장영화였다. 그게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또 15년 전 처음 생각했던 것은 어촌 마을이 배경이었다. 어른들이 고기 잡으러 가면 온전히 아이들만 남는데, 그 때 아이들은 ‘본능적인 장난’을 한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생기는 아이를 낙태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갈등을 일으킨다고 하더라. 물론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그래서 사각지대에 있는 부류가 뭘까 고민하다가 이주민이 떠올랐고, 지금의 이야기로 변모됐다.

Q. 그런데 보도자료에는 각본에 대해 자세히 안 나왔더라. ‘연출, 각본 유지태’라고 홍보할 만한데. 아님 그런 생각을 품고 있던 찰나에 이런 시나리오를 만난건지.
유지태
: 직접 쓴 건 맞다. 그런데 새로운 작가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었고, 내가 썼다고 해서 큰 욕심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배우 출신이지 않나. 여하튼 작가와 내가 같이 완성했다고 보면 된다.



Q.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주제라면 굉장히 잘 만들고 싶은 욕심이 당연히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첫 연출작 보다는 감독으로서 좀 더 성숙됐을 때 하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유지태
: 성숙이라고 하면 40~50대를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내 생각은 그때그때 만들 수 있는 영화가 다른 것 같다. 지금 만들어 질만 하니까 만들어졌고, 조바심을 낸 것도 아니다.

Q. 유지태에게 단편영화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단편들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나.
유지태
: 내 안에 약간 고지식한 게 있는 것 같다. 단편부터 만들고, 장편을 해야겠다란 생각이 있었다. 하늘에서 똑 떨어진 뛰어난 감독도 있지만 대부분 어떻게 살았냐를 보고 평가하지 않나. 그런 지점들에 있어 ‘영화 연출하고 싶다’고 말만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든 단편을 보고, 진지하게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한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었다.

Q. 박중훈, 하정우 등 감독 데뷔를 앞둔 배우들은 일찌감치 ‘상업영화’를 한다고 소개가 됐다. 반면 유지태는 저예산, 예술영화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어렵진 않을까, 대중성은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도 있다.
유지태
: 사실 그런 선입견을 깨고 싶은 것도 있다. 독립영화, 저예산 영화가 너무 고루하다, 난해하다 또는 예술성만 있다 등의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영화 자체로서 바라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그런 영화들도 주목해서 봐야하고, 산업적인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필요하다.

Q. 첫 연출작으로 박중훈, 하정우 등처럼 상업영화를 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유지태
: 할 수 있다. 다만 자본 논리에 의해, 너무 재미에만 집중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또 아무래도 저예산 영화하곤 환경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것들을 잘 핸들링 할 수 있을지 고민이긴 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깊숙이 물어봐야 할 일인 것 같다. ‘영화를 왜 만들려고 하니’ 이 물음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Q. 그렇다면 메가폰을 잡아야겠다. 또는 장편 영화 연출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나.
유지태
: 커다란 계기라기보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 같다. 단순하게 말하면, 한 선배가 카메라를 들었는데 너무 멋있는 거다. 이게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배우의 경우도 ‘오~ 정우성 멋있는데’ 이런 생각으로 배우의 길을 걷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 그리고 이에 열정을 다하고,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기적 같은 일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처음 연극영화과 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되게 웃었다. ‘니가 무슨 연극이냐’고. 모델을 한다고 했을 때도, 배우를 한다고 했을 때도, 감독을 한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선입견을 깨면서 사는 것도 쾌감이 있다. 뭐 즐기는 건 아니지만. 여하튼 하고 싶은 게 뭔지 스스로 질문하고,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이렇게 흘러오게 된 것 같다.

Q. 박찬욱, 홍상수, 허진호 등 유명 감독과 작업을 같이 해 왔다. 그런 감독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게 있다면.
유지태
: 당연히 영향을 받는다. 그들의 영화세계를 직접 겪었으니까. 그보다 더 좋은 선생님은 없다. 각각 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그 다름을 몸으로 배운 게 아닌가.

Q. 그렇다면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감독을 꼽는다면.
유지태
: 글쎄요. 매번 다르기 한데 최근에는 수잔 비에르 감독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 어릴 때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알렉산더 페인 감독 등이 내게 영향을 준 것 같다. 뭐 장 뤽 고다르나 프랑소와 트뤼포 등 이런 명감독들도 마찬가지다.



Q. 배우이기 때문에 배우를 잘 보듬어줄 수 있지만, 반대로 배우이기 때문에 배우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 왜 여자의 적은 여자란 말도 있지 않나.
유지태
: 배우 생활에 대한 경험이 있다 보니 배우가 혼자 서 있을 때 얼마나 외로운지를 안다. 그런 점은 충분히 배려가 가능한 것 같다. 또 영화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 이미 해 보지 않았나. 가령 마이 라띠마 역을 위해 태닝이나 태국어 연습 등을 직접 제안했다. 나 같은 경우 작품에 필요한 것을 혼자 알아서 준비하기까지 15년 걸렸다. 물론 이걸 빠른 시간에 받아들어야 하니까 힘들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하하.

Q. 말이 나왔는데 마이 라띠마 역을 맡은 박지수, 정말 잘해서 깜짝 놀랐다. 실제 태국 이주민 같더라. 이 캐스팅을 위해 한국 신인 배우는 다 봤다고 했는데 실제 태국 배우는 고려하지 않았나.
유지태
: 외국 신인 배우도 많이 찾았다. 마지막에 춤추는 배우는 진짜 태국 사람이다. 처음엔 그 친구를 주인공으로 할까 했는데 그 친구는 연출을 할 사람이더라. 그래서 연출부와 함께 지수의 언어 선생님 역할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기는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반복하고, 집중하고, 현장에서 감독과 맞춰나가는 작업이다. 거기에 맞춰 지수와 같이 만들었다.

Q. 이런 평가에 굉장히 뿌듯하겠다. 어떻게 보면 배우가 잘했다는 건 감독의 평가이기도 하니까.
유지태
: 우리 배우들 한 명 한 명 다시 평가 받아야 한다. 박지수가 신인이어서 부각 돼 보이는데 배수빈 씨와 소유진 씨도 자신의 역할을 굉장히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그게 전부다. 배우로서 멋있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Q. 말이 나온 김에 배수빈과 소유진은 어떤 배우인가.
유지태
: 감독으로 바라본 소유진과 배수빈은 내 인생의 배우들이다. 하하. 배우들이 영화를 했던 마음 등을 많이 집중하고 관찰하는 편이다. 그들의 행동을 봤을 때 순수한 마음을 가진 배우라고 생각됐다. 물론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 것일 수도 있다. <탈주>가 없었다면, DMZ영화제가 없었다면 소유진, 배수빈과 함께 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Q. 앞으로 이 배우와 꼭 작업하고 싶다. 이런 배우가 있다면.
유지태
: 같이 참여했던 배우들하고 계속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을 보면 2001년 <성냥공장 소녀>의 주인공이 2011년 <르 아브르> 주인공으로 다시 등장하더라. 그 모습이 부러웠다. 20년 후에도 같이 했던 배우, 스태프가 함께 했으면 한다. 그렇다고 ‘군단’으로 불리고 싶다는 건 아니고 그 같은 연대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Q. 출연에 대한 욕심은 없나. 단편에선 출연하지 않았나.
유지태
: 나한테 맡는 역할인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감독할 땐 조금 더 감독에 집중하고 싶다. 장난삼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럼에도 충분히 장난삼아 한 부분이 있다. 단편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몇 장면은 단편과 굉장히 흡사하게 찍었다.



Q. 그렇다면 아내이자 배우인 김효진 씨와 함께 작업할 생각은 없나. 혹시 아나. 멋진 작품 만들어서 감독과 주연 배우로 나란히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게 될지.
유지태
: 하고자 하는 영화가 우선될 것 같다. 시나리오를 먼저 써보고, 효진 씨의 이미지에 맞을 것 같다면 같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Q. 한 가지 더. 김효진은 어떤 배우고, 어떤 사람인가.
유지태
: 참 괜찮은 배우고, 괜찮은 사람이다.

Q. 감독과 배우, 앞으로는 어떻게 균형을 맞춰갈 것인가.
유지태 : 마이클 케인이 연기론 책을 썼을 때 ‘자기는 감독을 하고 싶지만 경제적 부분을 포기할 수 없어 감독을 못했다’고 한 부분이 있다. 개인적인 삶으로 보면 배우가 금전적인 면에선 이득이다. 하지만 돈이 많다고 행복을 주는 건 아니다. 밸런스를 잘 맞춰서, 어떤 부분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족까지 생기지 않았나.

Q. ‘배우’ 유지태가 좋은가, ‘감독’ 유지태가 좋은가.
유지태
: 유지태씨가 가장 좋다. 배우나 감독이나 유지태일 뿐이다. 호칭을 하고, 얘기하면서 벽을 만드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

Q. ‘배우’ 유지태와 ‘감독’ 유지태의 계획은 무엇인가.
유지태
: 배우 유지태로서는 <더 테너>가 올 추석 개봉될 것 같다. 그리고 우정 출연한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인류자금>이 곧 일본 개봉된다. 감독으로서는 지금 말하기 어렵지만 준비는 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제는 장편에 집중할 것 같다.

Q. 배우로서 흥행도 해봤고, 쓴맛도 봤다. <마이 라띠마>의 흥행을 예측한다면.
유지태
: 숫자로 평가해서 좀 그렇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지슬> <똥파리> 등이다. 거기만 충족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리고 이보다는 이런 작은 작은영화들이 다양해져야 신선한 감독들도 생겨난다고 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도 <메멘토>가 없었다면 지금 위치가 있을까. 이런 작은 영화들이 자양분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양분은 개인이 알아서 하긴 너무 힘들다. 그래서 지원이 필요하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채기원 ten@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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