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직장의 신> 등장인물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라는 말이 있다. 좁은 방안에 들어와 있는 코끼리처럼, 못 본 척 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데도 외면하고 있는 진실을 말한다. 비정규직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이와 같지 않았을까. 21일 종영한 KBS2 <직장의 신>은 이러한 사회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놓았다. ‘해결책은 없었다’거나 ‘말도 안 된다’라는 말은 잠시 접어두자. <직장의 신>에는 현실에선 이루어질 수 없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득했을지라도, 아픈 현실에 잠시나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수작이었음이 분명하다.

물론 우리가 <직장의 신>을 보며 모종의 동질감을 형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배우들의 호연도 주효했다. 그러나 그것이 주인공 덕만은 아니다. 마땅한 악역 하나 없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도,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저마다 절절한 사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인물 개개인이 상징하는 바가 달랐기에 <직장의 신> 속 인물들은 모두 개별자이자, 주인공이었던 셈이다. 이런 까닭에 드라마를 지켜보는 대중도 각자가 공감하는 지점이 모두 달랐을 터. <직장의 신> 속 인물들을 통해 그들의 삶과 우리사회를 되짚어봤다.

미스김" /><직장의 신> 미스김

미스김: 국내최초 자발적 비정규직 미스김. 그녀는 우리에게 회사도 동료도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일하라고 말한다. ‘미스김’이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는 드라마 속에만 있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표상하는 존재다. 바로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은밀한 환상의 욕구를 대신해서 말이다. 슈퍼갑 계약직 미스김이 남긴 것은 모두의 성장과 변화였다. 우리의 꿈을 품은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정규직이든 계약직이든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넌 그냥 너의 길을 가는 거야.”

장규직(왼쪽), 무정한" /><직장의 신> 장규직(왼쪽), 무정한

장규직: 장교주라 불릴 만큼 사회생활에 능하고 까칠한 성격을 지녔지만, 미워할 수 없다. 그도 사회의 경쟁구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다구니 쓰고 있었단 걸 알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계약직의 철저한 구분을 강조하며 갑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그도 긴(長) 정규직을 원하는 사람 중 한명에 불과했다. 동료 무정한과의 의리를 지키며 물류센터에 좌천된 그의 모습은 아무리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고 해도 끝까지 매정해질 순 없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과도 같다.

무정한: ‘무정한’이란 이름을 조금 비틀어 보면 ‘무한정’이 된다. 타인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한한 정(情)을 퍼주는 그에게 꼭 맞는 이름이 아닐 수 없다. 냉혹한 사회 속에서 ‘당연한 것’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은 오히려 미스김보다도 더 비현실적이다. 살아남기 위한 경쟁만 가득한 이 세상 속에서, 이미 ‘당연하다’는 말의 의미는 퇴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까. 황갑득 부장의 이사가 있음에도, “팀의 어른이신데 당연히 가야지”하며 고정도 과장의 이사를 돋는 모습이나, 고정도 과장과 계약직 정주리가 해고 위기에 놓였을 때 그들을 돕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훈훈함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정주리" /><직장의 신> 정주리

정주리: 삼류대·만년쏠로·계약직이란 타이틀을 지닌 암울한 청춘 정주리. 88만원 세대를 자처하는 그녀는 가진 게 없어서 줄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래서 남은 것은 정(情)뿐. 그녀가 유난히 주변 사람들에게 살가운 이유다. 뭐 하나 이 악물고 해보려 해도 착한 심성 때문에 홀로 상처받는 그녀는 위태위태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약자를 표상한다. 그런 그녀도 결국 미스김을 만나 변화한다. 계약직 연장이 결정됐음에도 동화작가의 꿈을 위해 와이장을 떠나는 그녀. 그 모습엔 나이테처럼 성장의 아픔이 오롯이 새겨져있어, 그녀의 홀로서기가 더 감동적으로 느껴진다.

고정도" /><직장의 신> 고정도

고정도: 만년 과장 고정도의 삶은 딱 그 정도였을까. 위에서는 찍어 누르고 아래서는 치고 올라오는 냉혹한 현실 속에 놓인 고 과장은, 우리 시대의 아버지의 표상이다. 입사할 때 받은 손목시계를 28년간 차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아날로그 감성이 풍부하다. 고 과장은 권고사직의 위기를 ‘손 글씨 계약서’로 극복하며,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던 미스김을 울린다. 고 과장을 연기한 배우 김기천은 “딸들이 고 과장 덕분에 아빠를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며 배역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매순간이 살기위한 발버둥이자 고난의 연속인 고 과장의 모습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자식이기에.

황갑득" /><직장의 신> 황갑득

황갑득: 황갑득은 말 그대로 ‘갑 중의 갑’이다. 그렇지만 그가 저지르는 갑의 횡포를 지켜보면서도 아무도 ‘황 부장은 악역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서 행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단 것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황 부장을 바라보는 시선도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부하 직원들에겐 큰소리치지만, 상사에겐 절대 복종해야 하는 그의 입장 때문에 우리는 황 부장이 밉지만, 묘한 동정심도 느끼게 된다. 결국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을이기 때문에 형성 가능한 공감대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사진제공: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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