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규어 로스의 내한공연이 5월 19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일단 석가탄신일인 17일부터 여러 음악 페스티벌 취재로 온몸이 지쳐있었다. 더구나 시규어 로스 공연과 같은 시간 세종문화회관에서는 키스 자렛 트리오의 공연이 열렸다. 내한공연 날짜를 분산시키지 않은 공연 기획자들이 야속할 따름이었다. 주변 음악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시규어 로스를 갈 것인가, 키스 자렛 트리오를 볼 것인가를 두고 상당한 고민들이 오가기도 했다. 아무래도 여러 번 내한했던 키스 자렛보다는 처음 내한하는 시규어 로스 쪽에 힘이 실렸다. 한편으로는 키스 자렛 트리오의 베이시스트 게리 피콕이 여든 가까운 고령이라 이번이 마지막 내한공연이 될 것 같다는 예상도 나왔다. 하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시규어 로스를 보기 힘들 것 같았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연휴의 마지막 날인 일요일 체조경기장으로 향했다.

체조경기장은 상당한 인파로 인산인해였다. 주최 측 추산으로 유료관객 약 6,000명이 몰렸다. 관계자 말로는 여타 공연에 비해 콘서트를 처음 경험하는 관객들의 비중이 크다고 했다. 시규어 로스의 힘이었다. 시규어 로스의 열성팬으로 알려진 배우 최강희를 비롯해 김동률과 이적, 허클베리 핀, 로로스, 정란 등 다양한 층의 뮤지션들과 MBC 남태정 PD 등 방송 관계자들도 눈에 띄었다.



무대는 하얀 커튼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첫 곡 ‘Yfirbor∂’로 공연이 시작되자 커튼 위로 영상이 흘렀고, 그 뒤로 연주자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음압이 점점 커져가는 가운데 커튼이 걷히자 객석에서는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무대 위에는 원년멤버인 욘시(보컬, 기타), 오리 파울 디러손(드럼), 기오르크 홀름(베이스)과 함께 브라스, 현악기, 퍼커션 등 12명의 연주자들이 자리했다. 이들의 연주는 하나의 오케스트라라 할 만큼 풍성하고 드라마틱한 사운드를 구현해냈다. ‘Ny Batteri’ ‘Vaka’ ‘Hrafntinna’ 등으로 곡이 이어질수록 공연에 대한 몰입은 점점 커져갔다.

국내 팬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Sæglopur’의 전주가 흐르자 객석에서는 즐거운 비명이 터졌다. 이날 공연은 정적이었으며 때로는 심오하고, 또 영적인 느낌까지 줬다. 관객들은 온전히 음악에 집중했으며 곡이 끝날 때마다 감격의 함성을 질러댔다. 공연은 비슷한 템포로 진행이 됐지만 각각의 곡들은 극한 서정부터 베수비오 화산처럼 폭발하는 풍경까지 매번 다름 감흥을 전했다. 매 곡마다 흐르는 영상도 인상적이었다. 시규어 로스와 닮은 장면들이 음악과 조화를 이루자 관객들의 심연은 바다를 유영하고, 영혼과 키스를 하고, 불타는 숲을 거닐었다. 그렇게 이승이 아닌 다른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시규어 로스의 사운드는 체조경기장임을 감안하면 훌륭한 편이었다. 이번 공연이 처음이자 마지막 내한공연이 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던 것은 체조경기장의 열악한 음향에 시규어 로스가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규어 로스와 연주자들은 앨범에서 들려준 드라마틱한 음악을 유감없이 재현해냈다. 특히 기타의 드라이브와 관현악의 조화는 단연 일품이었다. 욘시는 기타를 활로 문지르며 돌고래와 같은 가성을 토해냈다.

공연이 막판으로 흐를수록 시규어 로스와 관객들은 혼연일체가 되어갔다. 정말 멋진 라이브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다. ‘Festival’이 흐를 때에는 공연장의 분위기가 최고조에 흘렀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규어 로스는 조만간 다시 한국에 오겠구나.” 마지막 곡으로 ‘Brennisteinn’이 연주된 후 두 곡의 앵콜이 더 나오고 공연은 마무리됐다. 일요일 저녁 8시 13분.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사진제공. 프라이빗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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