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와 얼굴들, 국카스텐, 십센치, 장미여관 등 주류와 인디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인디밴드는 무수하다. 이들 이전에도 서정과 비트를 넘나드는 탄탄한 사운드와 여심을 사로잡는 애절한 보컬에다 잘 생긴 비주얼까지 소위 3박자를 고루 갖추어 기대를 한껏 이끌어냈던 밴드가 있었다. 3인조 모던 록밴드 마리서사다. 이들의 등장은 향후 한국대중음악계에 인디뮤지션들이 대중적 총아로 급부상할 것을 예고하는 신호탄 같았다.수려한 멜로디와 드라마틱한 작·편곡 능력을 담보했던 마리서사의 매력적인 록발라드는 ‘한국의 본 조비’를 연상시켰다. 특히 3옥타브 반을 넘나드는 박건준의 하이 톤 보이스는 슬픈 멜로디의 극치를 구현하며 여성들의 팬심을 무자비하게 자극했다. 이들로 인해 1990년대 이후 마니아 장르로 분류되어 대중으로부터 격리되었던 록 음악은 대중 친화적인 분위기로 방향타를 잡아 나갔다. 하지만 록 밴드 전성시대 부활에 대한 작은 기대감은 멤버들의 군 입대와 이러저런 사정으로 꽃망울을 터뜨리지 못하고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박건준이 군에서 제대한 2011년 1월 25일까지 밴드활동은 긴 휴지기로 접어들었던 것.
모던 록밴드 마리서사가 평단의 절찬을 이끌어냈던 정규 1집 이후 6년 만에 정규 2집 ‘러브시크(Lovesick)’를 발표하며 돌아왔다. 활동을 재개한 이들의 공연에는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꽃다발을 들고 찾아오는 여성 팬들이 여전해 살짝 놀라웠다. 밴드 결성이전부터 컴백까지의 음악여정과 향후 활동에 대해 듣기 위해 멤버들과 홍대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공백기인 군 시절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은 베이스 임민서를 스타트로 리더 박건준과 드럼 김성범 순으로 비슷한 시기에 군에 다녀왔다.
클럽에서 공연중인 마리서사
경기도 연천에 소재한 5시단 열쇠부대에 복무했던 리더 박건준은 군악대에서 3인조 밴드를 결성해 GPO 순회공연을 무수하게 경험했다. “데뷔시절 무대에서 그저 멋있는 척만 하다 순발력 있게 말을 해야 될 때마다 막혀버렸죠. 부족한 임기응변을 군부대 공연을 통해 극복했습니다.” 29세의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해 병사들 사이에 ‘형님’으로 통했던 그는 “안치환의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워’, 전인권의 ‘돌고 돌고 돌고’를 부를 땐 ‘군의 메탈리카’가 된 기분을 받았을 정도로 엄청난 반응으로 인기를 끌었다”고 말한다. 이등병이 되어 첫 휴가를 받아 나왔을 때 멤버들과 신촌 기차역 인근 클럽 ‘퀸’에서 깜짝 단독공연을 하고 복귀한 에피소드가 있다. 까까머리 병사 세 명은 합주 한 번 못해보고 무대에 올랐다. “공연은 엉망진창이었지만 팬들이 알음알음 참 많이들 왔어요. 중절모로 쓰고 최대한 머리를 가리고 공연을 했지만 다들 군인 아니면 소림사 3인방으로 알았을 겁니다(웃음).”팀명 ‘마리서사’는 시집 ‘목마와 숙녀’의 저자 박인환이 1945년 해방 즈음 서울 종로3가에서 운영하며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의 모태 역할을 했던 전설적인 헌책방 이름이다. 처음 결정했던 팀명은 마리서사가 아닌 Sleeping Forest 즉 ‘잠자는 숲’이었다. 헌데 주위에서 “한국어로 팀명으로 정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 당시 매니저가 마리서사란 이름을 제안했다. 처음 멤버들은 그 이름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시인 박인환과 연관이 있는 유서 깊은 공간적 의미를 알게 된 후 자신들의 음악정체성과 부합되는 것 같아 최종 결정했다. 2005년(2009년 정식유통) 첫 번째 미니앨범 ‘RED ROOM’을 발표했지만 정상적으로 유통을 하지 못하고 공연장에서만 판매했다.
박건준은 밴드 초창기 시절을 회상하며 “처음 밴드를 결성해 서울에 있는 한 여대의 축제무대에 올랐죠. 하필 바로 앞 무대가 인기 절정인 힙합뮤지션 ‘드렁큰 타이거’여서 관객들이 공연 후 썰물같이 빠져나가더군요.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어렵게 노래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라고 웃는다. 걸 그룹들과 아이돌 그룹이 세상을 지배했던 당시. 대학축제 공연에서 자극을 받은 인디밴드 마리서사는 원더걸스의 ‘텔미’, 빅뱅의 ‘거짓말’을 록 버전으로 노래한 동영상으로 인터넷에서 수 만 명이 클릭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데뷔 EP전 가내수공업으로 제작한 데모음반은 문화관광부 ‘이달의 우수신인 음반’에서 전문가 심사와 네티즌투표 1위를 차지했고 여세를 몰아 2006년 스카이 인디그라운드 연말 결선 인기상을 수상하며 순조로운 항해를 시작했다.
스카이 핸드폰에서 주최한 스카이 인디그라운드 경연대회는 1등부터 3등까지 500, 300, 100만원의 상금이 걸렸던 서바이벌 경연행사다. 홍대 앞 라이브클럽 롤링홀에서 치열한 예선을 거쳐 최종 본선이 열린 올림픽 홀에서 ‘너 없이는 행복할 수 없잖아’를 불러 3등 격인 인기상을 받았다. 당시 ‘얼스’가 대상, 2등은 ‘보드카레인’이 차지했다. 대회가 끝난 후 경연의 동영상을 보고 연락이 온 아트뮤직으로 소속사가 정해졌다. 마리서사의 첫 드러머는 박건준과 함께 포천고 스쿨밴드 <테디트>와 밴드 <졸리>에서 드럼을 연주는 윤정두다. 그는 세션개념으로 참여했지만 집안의 음악활동 반대로 탈퇴해 데뷔앨범에는 김성범이 참여하며 비로소 지금의 정식 라인업이 구축되었다.
당시 아트뮤직에는 잘나가던 4인조 혼성밴드 펄스데이가 음반작업을 하고 있어 정규 앨범 발표까지는 지루한 기다림이 이어졌다. 2007년 EBS와 싸이월드에서 주최한 뮤지션 발굴 프로그램 ‘헬로루키’에 선정된 이들은 군 입대 전 ‘기록을 남긴다’는 마음으로 인디와 주류의 소통 가능성을 보여준 첫 정규앨범을 발표했다. 드라마틱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타이틀곡 ‘너 없이 행복할 수 없잖아’는 “록 음악은 대중성이 없다”는 통념을 깨트렸다. 또한 고교 시절, 짝사랑했던 여학생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곡을 썼던 ‘마리아’ ‘숨’ 등 드라마틱하고 슬픈 감성이 녹아있는 트랙들도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담아냈다.
여심을 자극하는 음악적 코드들은 상상마당 라이브 홀에서 열린 앨범 발매 쇼 케이스를 대박으로 이끌었고 입소문을 타면서 롤링홀로 이어진 첫 단독공연은 여성관객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채우며 승승장구했다. 2008년 1집 타이틀 곡 ‘너 없인 행복할 수 없잖아’는 제 5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노래부문을 수상하며 스쿨밴드들의 단골 카피 곡으로 떠올랐다. 이 노래는 지금도 공연에서 따라 부르는 팬들이 무수한 이들의 히트곡으로 각인되어 있다. 또한 KBS의 서바이벌 <톱밴드2> ‘동영상 추천 베스트 10’에서는 5위를 차지해 슈퍼패스로 1차 예선을 통과하며 승승장구했다.(part2로 계속)
마리서사 프로필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박건준 (1981년 10월 11일) – 보컬, 기타, 피아노
임민서 (본명:임진호, 1983년 1월 15일) – 베이스
김성범 (1983년 11월 30일) – 드럼
1999년 박건준 포천고 4인조 스쿨밴드 <페디트PEDT> 경기도 청소년가요제 최우수상
2000년 박건준 5인조 메가데스 록 밴드 <샤인> 멤버
2001년 박건준 3인조 밴드 <졸리jolly> 결성
2004년 임민서 4인조 록밴드 <라즈> 멤버
2005년 3인조 모던 록 밴드 <마리서사> 결성, 문화관광부 ‘이달의 우수신인 음반’ 전문가 심사와 네티즌투표 1위
2006년 Sky 인디그라운드 인기상
2007년 EBS 스페이스 공감 7월의 헬로루키 선정
2008년 제5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노래 부문 수상 (너 없인 행복할 수 없잖아)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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