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연석

김동률의 철 지난 히트곡 ‘기억의 습작’을 듣는 사람들이 급증했고, ‘납득이’(조정석)는 수차례 패러디됐다. 영화 <건축학개론>이 개봉했던 2012년 봄의 이야기다. 관객들은 저마다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겼다. 감정 이입이 너무 잘돼서일까. 당시 영화를 본 남자들이 입을 모아 욕한 캐릭터가 있었으니, 바로 유연석이 연기한 ‘압서방 선배’ 동욱이다. 실제 그의 친구들마저 “야, 너 수지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라고 따졌을 정도다. 비중도 그리 크지 않았고 욕도 많이 먹었지만, 결과적으로 유연석은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해가 바뀌어 2013년이 됐고, 유연석은 다시 수지를 만났다. SBS <구가의 서>에서 담여울(수지)의 정혼자 박태서 역할을 맡은 것이다. 친구 최강치(이승기)를 배신하고 강치와 여울의 사랑에도 장애물이 되는 박태서. 그러나 시청자들은 박태서를 욕하지 않았다. 대신 가족들에 대한 마음 하나만을 품고 살아가는 박태서에게 연민을 느꼈다. 박태서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 동생 청조를 지키겠다는 마음, 담여울과의 사랑, 강치의 정체를 알고 나서 느끼는 혼란까지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캐릭터다. <건축학개론>에서와 달리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한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고, 유연석은 박태서의 감정을 때로는 섬세하게, 때로는 거칠게 표현했다.

Q. 많은 화제를 낳으며 <구가의 서>가 종영했다. 이렇게까지 시청률이 잘 나왔던 작품은 처음인 것 같은데, 드라마 방송 전과 달라진 게 있나.
유연석 : 아무래도 시청자 연령층이 젊다 보니 예전에 비해 젊은 분들이 많이 좋아해주신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작품 속 캐릭터를 많이 기억해주셨다면, 이번 드라마를 찍고 또 <화신>에 출연하고 나서는 배우 유연석으로 알아봐주시는 것 같다.

Q. <별순검2>에 잠시 출연했던 것을 제외하면, 사극은 처음이다. 그럼에도 역할을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유연석 : 주변으로부터 ‘사극은 힘들다’라는 얘기를 꽤 많이 들었다. 연기를 하는 방법 면에서도 워낙 현대극과 다른 부분이 많지 않나. 그리고 <구가의 서>가 방송 초반부터 주목을 많이 받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걱정도 많이 되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또 그런 만큼 열심히 준비했다. 다행스럽게도 드라마를 보신 분들이 잘 어울린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시더라.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

Q. 연기경험이 많은 선배들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새롭게 배운 부분이 있다면.
유연석 : 유동근 선배님, 조성하 선배님, 이성재 선배님까지 다들 편하게 연기할 수 있게끔 분위기를 풀어 주셨다. 그리고 대선배님들이지만 카메라 뒤편에서도 최선을 다해주시더라. 내 바스트 샷을 찍을 때 리액션을 해준다던지…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선배가 되면 거들먹거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선배와 후배 사이에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 같다.

Q. <구가의 서>에서 연기한 박태서는 담여울과 청조, 두 명을 모두 사랑하는 인물이다. 한 명은 여자로서, 한 명은 동생으로서. 다른 감정을 표현해야 했는데, 힘들지 않았나.
유연석 : 청조를 연기한 이유비의 경우, 촬영 현장에서 실제로 나를 친오빠처럼 따랐다. 드라마 외적으로 그런 정서를 느끼다 보니, 연기하면서도 청조를 볼 때 그런 눈빛 나오더라. 그리고 수지는 가까이서 눈을 마주보고 연기하면 떨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혼자를 바라보는 눈빛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Q. 종영 후 쉴틈없이 <응답하라 1994>에 캐스팅됐다. 전작(<응답하라 1997>)이 너무 잘돼서 부담이 클 것 같은데.
유연석 :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작가님, 피디님과 얘기를 해보고, 또 캐스팅 라인업을 보면서 좋은 작품이 그려질 거라는 확신이 들더라. 지금은 우려보다도 기대가 좀 더 크다. 얼마 남지 않은 준비기간 동안 철저히 준비해서, <응답하라 1997>을 뛰어넘는 작품을 보여드리고 싶다.

Q. 1편과 비교해봤을 때 좀 더 차별화되는 부분이 있나.
유연석 : 사실 제작진들은 그대로 똑같이 가는 거니까 그 부분은 비슷할 것 같다. 내 생각엔 조금 더 연기 경험을 갖춘 배우들이 참여한다는 점이 전작과 다른 부분인 것 같다. 물론 흥행을 보장하는 톱스타는 아니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연기에 안정감이 있고 좀 더 오랫동안 연기를 해온 배우들이 캐스팅됐기 때문에 그 부분을 기대하셔도 좋을 것이다.

배우 유연석

유연석이 처음 연기자를 꿈꾼 건 초등학교 때다. 학예회 때 연극 무대에서 학부모?학생들에게 받았던 박수가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유연석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결코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연기자의 길을 밟아왔음을 알 수 있다. 초등학생이 뭘 알았겠냐며 웃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일찍 목표를 정했기에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연기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Q. 데뷔작이 무려 <올드 보이>다. 유지태의 아역을 연기했는데, 어떻게 캐스팅됐나.
유연석 : 고등학교 때 연기학원을 다녔는데 그 때 친했던 누나가 올드보이 의상팀으로 들어가게 된 거다. 그 누나가 ‘유지태 닮은 친구’가 있다며 나를 소개해 줘서 오디션을 봤는데 덜컥 붙었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Q. 첫 영화였는데, 그 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다 보면 우쭐해질 것도 같은데.
유연석 : 그 때가 학교에 입학하자마자였는데, 학교 워크숍 공연을 위해 연극 준비를 한창 하고 있었다. 그래서 연극?연기 공부에 집중하다 보니, 헛바람이 들 틈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행스럽다.

Q. 영화 <혜화,동>, <열여덟열아홉>, MBC 단막극 <런닝, 구>, <심야병원> 등 연기생활 초반에는 마이너 성향의 작품들을 많이 했다.
유연석 : 20대 때는 흥행을 떠나서 좋은 작품들을 많이 경험하고 싶었다. 그 때 찍었던 작품들의 목록이 지금 나를 평가할 때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흥행만을 쫓았던 게 아니었으니까. 단막극이나 좀 작은 영화를 하다가 점차 상업영화, 연속극을 거쳐 미니시리즈까지 왔으니까, ‘아, 이 친구가 진정성을 갖고 차근하게 단계를 밟고 있구나’라고 생각해 주시는 것 같다. 당연히 고맙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작품들이다.

Q. 그런데 올해 개봉한 <전국노래자랑>은 대중성이 짙다.
유연석 : 다른 것보다 시나리오를 보고 좋은 가족영화가 될 거라는 느낌이 있었기에 선택했다. 그 전에 내가 했던 캐릭터들은 대개 좀 자극적이었다. 가족들이 편하게 보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캐릭터를 맡고 싶던 찰나에 작품이 들어온 거지. 대표님(이경규)도 실제로 보니까 너무 좋더라. 여타 전문 제작자분들과는 또 다른 이미지였다. 돈을 좇기보다는 좋은 영화를 만들고 영화 작업 자체를 행복해하시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Q. 건축학개론의 ‘선배’ 재욱과 전국노래자랑의 훈남 동수는 캐릭터가 상반되는데, 둘 다 무리 없이 잘 어울리더라.
유연석 : 난 <건축학개론>에서 크게 잘못한 게 없다. 술에 취한 후배를 집에 데려다 준 것 뿐인데… 관객들의 상상에 맡기려다가, 그 상상의 나래가 너무 심해지니까 순식간에 내가 공공의 적이 되더라. (웃음) 항상 이전에 했던 캐릭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한다. 악하거나 선하거나 한쪽에 치우친 게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내 장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점을 최대한 살리고 싶다.

Q. 점점 더 주목을 많이 받는 작품에 캐스팅되고 있다. 제작진들이 유연석을 택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유연석 : 또래에 비해 연기의 안정감이 있기 때문 아닐까. 또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 필모그래피를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는 것보다 관계자들이 신뢰하고, 또 작업하고 싶게 만드는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 것들이 이제야 좀 빛을 보고 있지 않나, 라고 생각한다.

Q. 아무래도 주목을 받다 보면, 시청률이나 흥행 성적에 연연하게 될 것도 같은데.
유연석 : 난 그냥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전국노래자랑>만 해도 손해 본 사람은 없다. 나에겐 기존과 다른 이미지를 연기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어떤 작품이라도 흥행을 예측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걸 알아가면서 좀 무던해진 것 같다. 배우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캐릭터를 얼마나 풍성하게 그려낼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고, 오히려 흥행이나 시청률은 내 몫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Q.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또 다른 역할이 있다면.
유연석 : 가장 해보고 싶은 건, 동정을 받으면서도 관객을 힐링할 수 있는 캐릭터다. 예를 들면 장애가 있는 캐릭터가 그걸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보면 관객들이 희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이 따뜻한 캐릭터도 좋고, 절절한 멜로의 주인공도 좋고, 가능하다면 다양한 역할을 해 보고 싶다.

글, 편집. 기명균 kiki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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