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황금의 제국’ 방송화면

SBS ’황금의 제국’ 19,20회 9월 2,3일 오후 10시

다섯 줄 요약
서윤(이요원)은 태주(고수)가 몰래 성진 시멘트 임시 주주총회를 준비하는 것을 알고, 이를 막는다. 한편, 성재(이현진)의 구속으로 충격을 받은 정희(김미숙)는 치매 증상을 보이고 자신의 상태를 자각한 정희는 그 누구도 그룹을 섣불리 장악하지 못하도록 모든 주식을 나눠준다. 민재는 태주가 성진그룹의 회장이 되는 것을 막고자 서윤과 손을 잡고, 태주는 원재(엄효섭)을 공동 회장으로 내세워 그룹을 장악하고 서윤과도 이혼하려 하지만 원재는 그룹을 가족의 것으로 남겨 놓기 위해 태주에게서 등을 돌린다.

리뷰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욕망과 행동이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기를 바란다. 때문에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합리화 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들을 찾으려 한다. ‘황금의 제국’ 속 인물들은 깊어가는 욕망 속에서 저마다 자신들의 시작점, 즉 자신이 이토록 성진 그룹을 원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거래의 대상으로 게임판에 내 놓을 수 있는 가운데에서도, 자신이 지켜야 할 단 하나의 무엇. 서윤(이요원)이 또 다른 ‘나’로 지칭한 자신의 분신들을 발견해 낸다. 모두가 자신의 혹은 서로의 본질을 발견해 낸 이때, 현란한 수 싸움과 거래로 주고 받은 복잡한 조건과 계약서들을 뒤로 한 채 인물들은 진짜 싸움을 시작했다. 서로의 숨겨진 분신들을 발견한 이들은 이제 그들을 미끼로 상대를 다시 매력적인 거래를 담은 승부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그 승부 앞에서 자신들의 분신을 통해 성진 그룹을 앞에 두고 전혀 새로운 룰로 거래를 시작한다. 서윤은 이제 자신이 살고 싶었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혹은 자신이 가진 순수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성재(이현진)를 잃고 냉정함을 되찾았다. 그리고 태주(고수)는 설희(장신영)를 또 다시 잃지 않기 위해 냉정함을 잃고 무리한 싸움을 시작한다.

‘황금의 제국’은 드라마 제목 그 자체로 허공에 붕 떠 있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아침을 먹는 밥상 앞에서 수백, 수 천명의 직원들을 보유한 계열사의 주인이 바뀐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수 십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의 회장도 바뀐다. 수십만 주의 주식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입 밖으로 떨어지고, 수 백억의 돈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 한마디에 이동한다. 하지만 그룹을 두고 이뤄지는 모든 게임들과 수 싸움은 오로지 대사와 책으로만 읽히는 듯 공허했다. 많은 고사가 인용되었고, 역사적 사실이 은유되었지만 이야기는 마치 우리의 그것이 아닌 듯 신기루처럼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야 ‘황금의 제국’은 이 거대한 담론을 책으로 두고, 진짜 세계로 내려와 ‘가족’과 ‘가족이 아닌 사람’을 가르고 ‘아버지의 자식’과 ‘아버지 세대가 눈물과 피와 땀으로 일궈온 세계를 논한다. 숫자로만 이어지는 세계가 아니라 ‘실재했던 세계’에 대한 논의가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가족’과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무엇’에 대한 내밀한 욕망들이 담겨있다.

박경수 작가의 전작인 ‘추적자’가 단란했던 한 가족의 불행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조금씩 확장되고 커져 결국 이 사회를 둘러싼 거대한 부조리와 부당한 권력들을 만나며 외연을 넓히고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폭풍을 만들어 갔다면, 흥미롭게도 ‘황금의 제국’은 이와 정 반대의 구조를 띄고 있다. <황금의 제국>은 거대한 자본의 권력, 그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놓고 더 큰 것을 가지려는 것에서 시작해서 결국은 조금씩 밀도를 높여 등장하는 인물들의 가장 내밀한 곳에 있는 욕망과 콤플렉스를 건드린다. 거대한 역사적 사실과 거창한 가치를 논하는 철학 사상들 속에서 인물들은 오히려 가장 큰 세계가 아니라 가장 작은 세계인 가족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 그 가족에 대한 가장 작은 이야기들 앞에서 가장 솔직한 이야기들이 시작됐다.

서윤은 회상을 통해 그토록 ‘진짜’라고 믿었던 가족들이 얼마나 돈 앞에서 가벼운 관계가 될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포기했던 즈음에, 서윤은 가족들이 다시 돌아와 ‘가족’이었음을 되새긴다. 물론, 이 동맹 또한 언제고 깨어질 지 모르는 서글픈 그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금전적 거래도 없이 최동진(정한용)의 설득으로 원재(엄효섭)는 돌아서고, 아버지의 설득으로 은정(고은미)도 다시 돌아선다. 이렇게 가족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자, 정윤(신동미)도 다시 가족으로 돌아온다. 모든 것이 들끓고 난 뒤에 남은 이들의 생각이, 그리고 드러난 욕망의 근원이 다시금 새로운 게임의 룰을 만든 것이다.

남은 4회, ‘황금의 제국’은 20회 동안 들끓어 왔던 이 욕망의 거품들을 걷어낸 그 자리에 과연 무엇이 남았다고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 것인가. 거침없이 달려왔던, 그래서 전쟁이 영원히 끊이지 않을 것 같았던 가족 밀실극도 이제는 그 결말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수다 포인트
- 우리 원재(엄효섭), 늙으니까 철도 드네?
- 우리 희주(윤승아)랑 춘호(김강현)는 언제 만나서 잘될까나?

글. 민경진(TV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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