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시, 아홉시, 아홉시, 아홉시, 아홉시 아홉시체가걸어가요회기동 단편선 ‘처녀’
회기동 단편선 ‘전통’ 中
회기동 단편선의 새 EP앨범. 회기동 단편선이 누구인지 모르고 앨범재킷을 먼저 본다면 여름을 맞은 납량특집 앨범인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부터 회기동 단편선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새 앨범을 낸다며 여장차림을 한 무시무시한 ‘드랙 퀸(Drag Queen)’ 사진을 올려대더라. 그를 몰랐다면 치기 어린 장난으로 여길 수도 있었겠지만, 전작인 정규 1집 ‘백년’에 담긴 무시무시한 음악을 체험한 터라 호기심이 발동했다. 회기동 단편선은 ‘백년’ 이후 밴드 활동 등 야심찬 후속 작을 기획했다. 그런데 뭔가 잘 되지 않았나 보다. ‘처녀’가 ‘백년’ 이후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않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에서 시작됐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소박한 계기에 비해 앨범에 담긴 다섯 곡은 상당히 스케일이 큰 구성을 보여준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일까? 과잉된 면도 느껴진다. 회기동 단편선은 통기타 한 대만 치면서 노래해도 나름의 색이 나올 만큼 자의식이 강한 뮤지션이다. ‘처녀’는 그 자의식 위로 표류하는 아이디어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그 아이디어들이 워낙에 폭주하다보니 처녀작은 아니지만, 마치 처녀작 같은 느낌도 든다. 현재로서 창작의 아이디어가 샘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아티스트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처녀’가 그에게는 또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시기적절한 시행착오가 아닐지?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슈슈’
밴드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의 새 EP앨범. 최근 인디 신에서 포스트 록, 슈게이징 계열의 음악이 상당한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전작인 EP ‘소실’이 평단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고, 나름 마니아층도 생겨났다.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의 라이브를 한 번이라도 봤다면, 이들이 일반적인 슈게이징 밴드의 이미지와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세 곡이 담긴 ‘슈슈’는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이 들려준 기존의 사운드에 비해 상당히 정돈됐다. 밝아진 면을 보여주는 노래 ‘슈슈’가 들려주는 꿈결 같은 사운드, 멜로디가 밴드의 이름이 주는 의미와 일맥상통하다는 인상을 준다.
김선욱 ‘괜찮아’
싱어송라이터 김선욱은 상당히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작곡상을 수상했으며 헤비메탈 밴드 로드피어, 오르부아 미쉘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재즈 음반 상을 수상한 재즈 베이시스트 이원술의 앨범 ‘Point of Contact’에서는 관현악단의 지휘를 맡기도 했단다. 메탈 팬들이라면 헤드뱅잉을 하며 살벌하게 록 기타를 치는 김선욱을 목격했을 수도 있다. 솔로 1집 ‘괜찮아’에는 통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데뷔앨범이지만 기타, 노래에서는 상당한 원숙함이 느껴지며 ‘악몽’ 등의 곡에서 현악을 삽입하는 센스도 주목할 만하다.
작사, 작곡, 편곡부터 연주, 프로듀싱을 모두 소화해내며 솔로 아티스트로서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한국의 존 메이어’라고 부른다면 본인의 생각은 어떠할까?
와이낫 ‘High’
밴드 와이낫이 석 장에 걸친 시리즈 앨범을 내놓는 중이다. ‘High’는 ‘Low’에 이은 두 번째 시리즈 앨범이다. ‘Low’에서는 제목처럼 낮게 깔리는, 다소 차분한 감성의 음악을 선보였었다. ‘High’에는 와이낫의 장기인 펑키한 록이 담겨있다. 와이낫의 공연을 단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들이 무대에서 선사하는 굉장한 에너지를 잊기 힘들 것이다. 정병국 전 문광부 장관이 클럽 타에 내방했을 때 와이낫 전상규가 손에 피가 나게 꽹과리를 치며 연주하던 것이 머릿속에 선하다. ‘High’에는 와이낫의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The Highest Song’, 디스코 리듬의 ‘Love & Peace for You’ 등 흥겨운 음악들이 담겼다. 조금 농담을 섞어 이야기하자면 ‘Bye, Good Bye’는 어딘지 조용필의 앨범 ‘Hello’에 대한 대답처럼 느껴진다.
슬라이드 로사 ‘Ticket to Ride’
여성 싱어송라이터 슬라이드 로사의 첫 앨범. 데뷔앨범이라고 하기엔 상당한 내공의 음악이 담겼다. 슬라이드 로사는 국내 실용음악과 중 최고의 경쟁률을 자랑하는 서울예술대학교에서 보컬을 가르치고 있다. 이 학교를 나온 기타리스트 조정치, 최고의 세션 드러머 중 한 명인 이기태 등이 앨범에 연주자로 참가했다. 교편을 먼저 잡다가 자신의 앨범을 내는 경우가 드문 것은 아니다. 이럴 경우 가르치는 것이 생활이 되다보니 아카데믹한 성향이 앨범에 담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슬라이드 로사의 앨범에는 그런 면이 전혀 없다. 타이틀곡 ‘목요일 오후 네시’, ‘지금’, ‘예뻐’ 등에는 진솔하고 풍부한 감성이 담겼다. 실력 있는 아티스트가 왜 이렇게 늦게 데뷔앨범을 발매했는지 궁금해진다.
Various Artists ‘자립음악생산조합 세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
무엇이 그리 바빴을까? 지난 5월 4일 열린 ‘2013 51 플러스 페스티벌’에서 구입한 앨범 ‘자립음악생산조합 세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을 이제야 들어보게 됐다. 재작년 창립한 자립음악생산조합은 이제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꽤 알려졌다. 앨범도 제작하고, 페스티벌도 꾸리고, 악기도 가르쳐주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협동조합이 붐’이 일면서 그 활동이 재조명되기도 하더라. 기존에는 회기동 단편선, 밤섬해적단, 하헌진 노 컨트롤 등이 대표적인 뮤지션으로 거론됐는데 이 앨범을 들어보면 멍구밴드, 이씨이, 시원한 형, 아톰머신 등의 노래도 주목할만 하다. 특히 천용성의 ‘김일성이 죽던 해’, 적적해서 그런지의 ‘싸이코’는 상당히 매혹적이다. 회기동 단편선이 첫 정규앨범 ‘백년’에 실었던 ‘오늘나는’의 2009년 버전도 신선하다.
탁경주 ‘Theme From Brooklyn’
재즈 기타리스트 탁경주의 첫 솔로앨범을 듣고 예스러운 사운드에 깜짝 놀랐다. 만약에 사전 정보 없이 들었다면 바니 케슬, 탈 팔로우의 예전 앨범으로 착각할 만도 했을 것 같다. 최근 한국에 재즈앨범 발매가 늘고 있다. 당연히 재즈 기타 앨범도 많은데 정통 비밥 기타 앨범의 경우 CJ 김, 박용규 정도에 불과하다. 탁경주는 미국의 거장 아마드 자말과 30여 년간 연주해온 베테랑 베이시스트 제임스 카맥과 함께 기타-베이스 듀오 체제로 녹음을 했다. 기타 톤, 스탠더드에 접근하는 방식, 임프로비제이션에서 바니 케슬, 웨스 몽고메리, 짐 홀로 이어지는 비밥 기타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레코딩에서도 1940~1960년대의 메인스트림 재즈 사운드를 구현하기 위해 릴 테이프를 통한 아날로그 레코딩 작업을 진행했다고 하는데, 그 노력만큼 효과를 거둔 것으로 여겨진다. 재즈 애호가로서는 이렇게 재즈에 꾸밈없이 다가가는 모습이 정겹고, 또 반가울 따름이다. 재즈가 배경음악으로 삽입된 일본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에 참여한 바 있는 브루클린 출신 재즈 보컬리스트 도나 컴버배치(Tulivu-Donna Cumberbatch) 등도 보컬로 참여했다.
카니예 웨스트 ‘Yeezus’
카니에 웨스트는 2010년에 나온 5집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부터 상업성을 넘어 그 대단한 음악적 야심을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힙합을 가지고 록이 반세기 동안 구축한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스크릴렉스가 ‘짱’인 요즘 같은 때에 굳이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제이지와 함께 한 전작 ‘Watch The Throne’에서는 오티스 레딩, 제임스 브라운을 저세상에서 소환해 소울의 전통에 다가가는 모습도 보였다. ‘Yeezus’에서는 다시 피치를 오려 진보적이라 할 만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Yeezus’는 앨범커버, 부클릿, 인레이 없이 CD 알판만 들어있는 엽기적인 디자인으로 먼저 눈길을 끈 바 있다. 앨범재킷 따윈 필요 없을 정도로 음악에 자신이 있다는 뜻인가? 심지어 ‘I Am A God’이란 노래도 있다. 그런데 카니에 웨스트가 선보이는 음악적 아이디어는 깜짝 놀라 뒤집어질 정도이긴 하다. 가령 재즈 보컬리스트 니나 시몬의 ‘Strange Fruit’을 샘플링한 ‘Blood on The Leaves’에서는 두 개 이상의 테마가 절묘하게 겹쳐져 제3의 음악을 이끌어내는 테크닉이 놀랍다. 다프트 펑크, 본 아이버의 저스틴 버논, 프랭스 오션, 존 레전드 등이 참여했는데, 이들은 그저 거들 뿐이다.
루디멘탈 ‘Home’
앨범재킷과 속지를 보면 흑인 마칭 밴드를 연상케 하는 벽화가 나온다. 소울과 일렉트로니카를 결합한 루이멘탈의 음악 스타일을 보여주기 위함일까? 영국 밴드 루이멘탈의 데뷔앨범 ‘Home’은 UK앨범 차트 1위로 데뷔해 15만 장을 팔아치우며 올해 가장 많이 팔린 데뷔앨범으로 기록되고 있다고 한다. 루디멘탈은 연주자가 아닌 작곡가, 프로듀서, DJ 등 네 명의 구성됐다. 해먼드오르간 등이 주 악기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정통 소울 성향이 강한 것은 아니다. 느릿한 드럼 앤 베이스라고나 할까? 그래도 ‘UMF(울트라 뮤직 페스티벌)’보다는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 서는 것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다.
해리 코닉 주니어 ‘Every Man Should Know’
재즈계의 아이돌처럼 사랑받았던 해리 코닉 주니어도 이제 마흔 다섯 살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해리 코닉 주니어가 이미지적인 면에서 제이미 컬럼 같은 젊은 보컬리스트들의 ‘프로토타입’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본다. 물론 해리 코닉 주니어는 빅밴드 리더로서 상당한 재능을 보였긴 하지만 말이다. 최근에는 미국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멘토로도 나온다고 하는데, 분명히 재즈 바운더리에 속하면서도 무려 2천5백만 장의 앨범을 팔아치운 스타다운 행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번 앨범은 그저 편안하다. 젊은 시절의 해리 코닉 주니어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펼치기도 했는데, 언젠가부터 재즈에 치우치거나, 어덜트 팝 쪽으로 기울거나 둘 중의 하나를 들려주는 것 같다. 새 앨범은 전형적인 어덜트 컨템퍼러리에 가깝다. ‘Being Alone’에서는 여느 때와 같이 감미로운 크루너 보컬을 들려주고 ‘Greatest Love Story’에서는 전형적인 미국가수답게 컨트리를 노래하기도 한다.
글,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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