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래
강원래
강원래

강원도 동해시 작은 사격장엔 강원도에서 최고 아니, 대한민국에서 최고이자 세계 최고의 장애인사격선수들이 모여 있다. 사격선수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을 보니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강원도 동해시의 한 장애인 단체의 행사에 초대를 받고 참석한 적이 있다. 내가 진행했던 KBS ‘사랑의 가족’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한 덕에 알게 된 사격선수 한 분도 그 행사장에 참석한다니 그 분도 만날 겸 사격장도 구경할 겸 댄서후배 승현이의 도움을 받아 동해시로 갔다.

1.
먼저 동해시 장애인 사격장에 들렸다가 사격선수들과 함께 행사장으로 갔다. 행사 장소엔 행사 참석차 온 많은 귀빈들이 있었고 행사를 마친 후 동해시장, 동해시 국회의원 등 여러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식사를 하였다. 관광호텔 5층에 마련된 뷔페식 식사였는데 난 휠체어 타는 몸이라 음식을 가져오기가 불편해 함께 간 댄서후배 승현이에게 차려진 음식 중에 맛있어 보이는 걸로 골라오라고 주문한 뒤 자릴 잡았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 친구는 삼겹살(돼지고기)도 핏기만 없어지면 허겁지겁 입안에 쓸어 담는 식성이었다. 나랑 식성이 달라서 인지 내가 즐겨먹지 않는 떡, 김밥, 초밥, 맛살, 닭튀김, 산적, 생선전, 갈비 등을 담아 왔다. 뷔페음식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메뉴는 다 다른데 전부 비슷한 양념의 맛이 났다. 장거리 운전 탓인지 인사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던 탓인지 몇 숟가락 뜨지 않았는데도 배가 불렀다. 왔다 갔다하며 몇 그릇을 쌓아놓곤 눈을 껌~뻑이며 맛있게 음식을 먹는 승현이를 보니 배가 더 불러왔다. 그렇게 한참을 먹는 승현이 보고 물었다.
“맛있냐?”고 하자 “네, 형. 먹을만한데요? 형은 더 안 드세요?”라며 계속 먹어댄다. 난 그 모습이 웃겨서 조금 쳐다보고 있다가 물 한잔 마시며 “헛배 불렀다”라고 대답했다. 내 대답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나에게 “네?”라며 눈을 껌벅이며 묻는다. 맛없는 걸 열심히 먹는데다 선배가 말할 때 듣지도 않고 먹는 모습에 조금은 짜증나서 “헛배.불.렀.다.고”라고 또박또박 대답을 했다. 그러자 천천히 불고기(소고기)를 몇 젓가락 집어 먹으며 날 쳐다보곤 “헛배가 누구에요? 라고 물었다.

행사 마치고 오는 길에 친한 댄서들에게 이리저리 전화 걸어 “하하하, 있잖아 승현이가 하하하…..”하면서 헛배사건을 소문냈다. 지금도 가끔 헛배 부를 땐 한손엔 젓가락을 들고 눈을 천천히 껌~벅이며 “헛배가 누구에요?” 라고 묻던 승현이 얼굴이 떠올리며 혼자 낄낄거려 본다.

강원래와 강릉시청장애인사격단
강원래와 강릉시청장애인사격단
강원래 왼쪽 가장 끝에 휠체어에 앉은 친구가 헛배의 주인공인 댄서 승현이. 사진속의 사격단은 현재 강릉시청장애인사격단으로 활동 중이며 며칠 전 태국에서 열린 세계월드컵사격대회(IPC)에서 금 3개, 동 2개를 획득하는 선전을 펼쳤다.

2.
그날 사격장에 갔었는데 그곳은 엘레베이터가 없는 지하라 수많은 계단을 몸 불편한 상태로 업혀 내려가거나 휠체어에 앉은 채로 비장애인 두 사람이 들어서 내려 가야하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나 역시 몇 사람의 도움을 받아 들려 내려갔었다. 마치 짐처럼… 그날 행사 때 동해시장과 인사를 나눌 때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도 하기 전에 “세계최고의 실력을 가진 사격선수들에게 총은 못 사줘도 엘리베이터 정도는 후원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장애인올림픽에서 획득한 금메달 9개중에 3개를 이 사람들이 만들어냈는데… 영웅들이 짐짝처럼 들려 다녀야 하냐고”고 막말을 날렸다. 내목소리에 힘이 실린 건지 아님 엘레베이터가 설치되기 바로 전에 내가 막말을 한 건지 확인되진 않았지만 그 후 몇 주 지나 사격장엔 엘레베이터가 설치됐다고 한다.

휠체어에 몸을 맡긴지 12년

그동안 넘어진적 많고 포기한적 많고 화내고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그때 마다 다시 일어나려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중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난 강원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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