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 만화 원작자 뱅자맹 르그랑(왼쪽), 장 마르크 로셰트

개봉 15일 만에 700만. 영화 ‘설국열차’가 쉼 없이 달리고 있다. 영화의 흥행 요인은 다양하다. ‘살인의 추억’ ‘괴물’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라서. 국내 배우 송강호 고아성과 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튼 등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의 열연 덕분에. 영화를 본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을 만큼 이야깃거리가 ‘한보따리’인 것도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올 여름 가장 뜨거운 영화 ‘설국열차’의 시작에는 동명의 프랑스 만화가 있다. 2004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만화 ‘설국열차’는 출간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그리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절판됐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이 만화를 처음 접한 2005년 어느 날, “이 이야기가 내 인생의 한 시기를 통째로 집어삼키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 ‘설국열차’의 출발점이다.

‘설국열차’의 프랑스 만화 원작자 장 마르크 로셰트와 뱅자맹 르그랑이 13일 한국을 찾았다. 제 16회 부천국제만화축제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한국 방문은 2008년 서울 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 참가한 이래 두 번째. 15일 오전 한국만화박물관 세미나실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두 작가는 영화 ‘설국열차’의 성공으로 고무돼 있었다. 영화의 성공과 함께 만화 판매부수도 동반 상승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기적과 같다”고 말했다.

두 작가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화 제안을 처음 받은 건 봉 감독이 ‘괴물’을 들고 칸 영화제에 갔을 때라고 한다. 그림 작가 장 마르크 로셰트(이하 로셰트)는 “우리가 봉준호 감독을 선택한 게 아니라 봉 감독이 우리 만화를 선택한 것” 이라며 “그 때까지 나왔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이나 ‘살인의 추억’의 퀄리티를 봤을 때, 이 한국인 감독의 역량을 의심할 필요는 없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 작가 뱅자맹 르그랑(이하 르그랑)은 “처음 봉준호 감독을 보고 ‘한국에도 이렇게 젊은 한국 감독이 있구나’ 싶었다”는 첫인상을 밝혔다. 그는 이어 “같이 점심 식사도 하고 봉 감독을 집에 초대하기도 했다. 그 후 셋이서 좋은 친구가 되어 지금까지도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며 봉 감독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만화 ‘설국열차’

‘설국열차’의 영화화를 제안한 것이 봉 감독만은 아니었다. 1990년 사망한 ‘설국열차’의 또다른 작가 자크 로브가 살아있던 당시, 프랑스 감독들에게 영화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로셰트는 “지금 생각하면 거절하길 잘한 것 같다. 당시(80년대)엔 대규모 스케일의 이야기를 구현할 만한 기술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비롯해 한국에서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두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경향은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로셰트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젠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에 만화에서만 표현할 수 있었던 걸 영화에서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며 “내 작품이 다른 창작자에 의해 새롭게 표현되는 걸 바라본다는 건 같은 창작자로서 큰 기쁨이고, 또 다른 창작의 원천이 된다”고 말했다. 르그랑은 “게다가 봉준호 감독처럼 ‘지구상 가장 위대한 감독’이 새롭게 꾸며주니 더 큰 기쁨”이라고 덧붙였다.

두 작가는 ‘설국열차’의 영화화에 부분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르그랑은 엑스트라로 참여해 촬영에 힘을 보탰다. 그는 “그 때 얼굴에 하얀 수염도 붙이고, 모래먼지도 뒤집어써야 했다. 거울을 보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는데, 재미있는 경험이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로셰트는 ‘부분 출연’했다. 열차 속의 인물들을 그리는 화가의 ‘손’이 바로 로셰트의 손. 그는 “얼굴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카메라 앞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게 익숙하지 않은 경험이었고, 그만큼 스트레스도 컸다”며 “영화를 자세히 보면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손이 조금씩 떨리는 걸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글. 기명균 kikiki@tenasia.co.kr
사진제공. 부천국제만화축제, 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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