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가 드러낸 재계약의 늪…글로벌 멤버 딜레마 빠진 K엔터사[TEN스타필드]
《윤준호의 복기》
윤준호 텐아시아 기자가 연예계 동향을 소개합니다. 대중의 니즈는 무엇인지, 호응을 얻거나 불편케 만든 이유는 무엇인지 되짚어 보겠습니다.


블랙핑크의 재계약을 둘러싼 잡음이 K엔터사에 대한 중장기 리스크로 비쳐지고 있다. 한국인 뿐 아니라 다국적 멤버를 늘리며 글로벌 행보를 하고 있는 엔터사들로서는 향후 블랙핑크와 같은 재계약 문제가 언제든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K엔터사는 스타를 키우고, 결국 정점에 달했을 때 만들어내는 수익은 미국 등 대형자본이 차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투자업계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YG엔터테인먼트 주가는 이날 2.79% 빠진 6만2800원에 거래를 마쳤다. 하반기 들어 최저가다. 지난 5월 최고점 대비로는 35% 넘게 빠진 수치다. 블랙핑크 재계약 문제가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날 김현용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3인 재계약의 경우 블랙핑크 매출은 기존 70~80%로 유지되지만 그 미만은 매출이 50%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며 "YG로서는 전원 재계약이 아니면 대형 악재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단순히 일회성 악재가 아닌 K팝 스타 육성 시스템이 갖고 있는 태생적 리스크가 수면위로 드러났단 점이다. 스타성이 있는 연습생을 키워 실제 스타를 만드는 시스템. 전속계약이라는 틀 안에서 지난 수십년간 K팝 엔터사들이 만들어온 생태계다. 이들의 생산품 즉, K팝 그룹은 최근 몇 년 새 내수를 벗어나 세계를 대상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해외 매출 비중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아이돌 구성원도 점점 글로벌 멤버가 돼가고 있다. 일본 중국 태국 등 아시아권 뿐 아니라 북미권에서도 멤버를 영입하고 있다. 해외 매출 비중이 커지면서 K팝 엔터사들은 아예 아이돌 현지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하이브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에 위치한 IGA 스튜디오에서 글로벌 아이돌 프로젝트인 '더 데뷔 드림아카데미' 글로벌 기자간담회를 열고 20명의 예비멤버들의 면면을 공개했다. 이들의 국적은 미국을 비롯해 벨라루스, 아르헨티나, 필리핀, 브라질, 호주, 스위스, 스웨덴, 슬로바키아 등 다양하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신인 걸그룹 VCHA가 정식 데뷔를 앞두고 있다. JYP와 리퍼블릭 레코드(Republic Records)가 합작해 선보이는 글로벌 걸그룹 론칭 프로젝트 'A2K'(에이투케이, America2Korea)를 통해 최종 선발된 6인조 신인 걸그룹이다. 5명이 미국, 1명이 캐나다 출신이다.

다국적 글로벌 아이돌 그룹이 성공하면 엔터사에겐 당연 호재다. 하지만 과거에 전속계약을 통해 사실상 끝까지 함께 하는 소속사와 가수의 관계는 기대하기 어렵다. 언제든지 재계약 시즌이 되면 기존 소속사를 떠나 더 많은 계약금을 줄 곳으로 떠날 수 있단 얘기다. 그렇게 되면, 회사의 중요 무형자산인 아이돌 IP의 가치가 흔들리게 된다. 스타가 뜨면서 올랐던 주가의 상당 부분을 다시 내놓게 되는 악재가 반복된단 뜻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SM엔터와 YG엔터 등을 보면 국내 엔터사들의 육성 시스템 자체를 높게 평가하기엔 아직 시기상조인 듯 하다"며 "재계약 리스크가 꼬리처럼 따라 붙게되면서 밸류에이션 상승 제약 요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블랙핑크가 드러낸 재계약의 늪…글로벌 멤버 딜레마 빠진 K엔터사[TEN스타필드]
계약 조건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북미 시장에서는 한국 아이돌 육성 시스템에 대한 우려가 적잖게 제기됐던 바다. 그 지적이 적절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보는 눈이 많을 수 밖에 없다. A 엔터사 관계자는 "본사 아티스트가 해외 지사와의 계약 시 특이한 경우가 없을 때 한국 본사 계약 조항과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식 관리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했다가는, 사회적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처럼 장기 계약을 맺는 것도 쉽지 않다. B 엔터사 관계자는 "한국의 아이돌 시스템을 해외로 옮겨가는 것일 뿐"이라며 "향후 재계약이 불발되더라도 본인의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본인의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엔터업계를 산업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불확실성을 인정한 꼴 밖에 되지 않는다.
블랙핑크가 드러낸 재계약의 늪…글로벌 멤버 딜레마 빠진 K엔터사[TEN스타필드]
K팝 엔터사들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 자화자찬 중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무형 자산이 재계약 문제로 흔들릴 수 있다는 건 경계할 점이다. 블랙핑크 재계약 이슈가 단순 YG만의 문제는 아닌 이유다. 일각에서는 축구선수처럼 '이적료' 개념이 도입돼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K엔터사가 성장하면서 재계약 문제는 이제 때마다 넘어야 할 불확실성이 되고 있다. 블랙핑크가 자칫 블랙(흑)역사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윤준호 텐아시아 기자 delo410@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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