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닝맨’│“시청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만드는 재미”
‘런닝맨’│“시청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만드는 재미”
힘과 배팅 스피드 모두를 갖추고 있지만 아직 자기 몸에 맞는 타격 폼을 찾지 못한 유망주를 보는 느낌. 지난해 7월 첫 방영했던 SBS ‘런닝맨’(이하 ‘런닝맨’)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폐쇄된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추격전이라는 콘셉트는 기존 SBS 게임 버라이어티의 계보 안에서도 눈에 띄는 것이었지만 정작 프로그램은 긴박감 넘칠 수 있는 요소들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했다. 재밌다, 재미없다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가능성의 발현 문제였다. 미완의 대기로 남을 것인가, 포텐셜을 터뜨리며 화려하게 강자로 설 것인가. 그리고 1년이 조금 넘은 지금, 그 유망주는 그야말로 타격감을 완전히 잡으며 매주 연타석 안타에 가까운 완성도와 시청률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시간의 힘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는, 자신의 폼을 찾아가는 과정이 궁금한 건 그래서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였던 시기, 게임쇼의 포맷을 고집하며 지금의 ‘런닝맨’을 만들어온 조효진, 임형택 PD에게 그 유의미한 시행착오의 과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최근 ‘런닝맨’을 보면 첫 회와 굉장히 달라졌다. 전에는 갑자기 옥상에서 닭싸움을 하는 식으로 게임이 군데군데 세팅된다면 이젠 하나의 추격전 안에 온전히 녹여낸다.
조효진 PD : 어떻게 보면 첫 회가 지금 하려 하는 것의 원형이었다. 게임에서 진 팀은 늦게 출발하거나 이런 것들이 이미 그 시기에 있었는데 우리가 원했던 식으로 잘 연결돼서 풀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하려고 했던 실마리를 이제 잡은 느낌이다.

“갇혀있던 사고의 틀을 깨나가면서 좋아진 것 같다”
‘런닝맨’│“시청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만드는 재미”
‘런닝맨’│“시청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만드는 재미”
왜 처음에는 그런 가능성들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을까.
조효진 PD : 익숙하지 않았다. VJ들이 연기자마다 한 명씩 붙어있는데 이 사람들이 연기자와 같이 뛰면 동선이 얽히면서 그들도 카메라에 노출됐다. 그러면 그걸 피해서 덜 뛰어야 하나, 이런 것부터 고민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놨다. 좀 나오면 어때, 같은 팀인데. 또 무조건 갇혀있는 랜드마크를 꼭 해야 하나? 게임쇼의 특징을 지켜간다면 밖에 나가서 실생활과 더 밀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밖으로 나갔더니 더 좋아해주시고. 갇혀있던 사고의 틀을 깨나가면서 좋아진 것 같다.
임형택 PD : 처음에는 어떻게 풀릴지 몰랐기 때문에 닫힌 공간에서 준비된 게임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면 조금씩 공간을 열어가며 의외성이 생긴 것 같다. 캐릭터도 드러나고.

분명 그 지점을 통해 리얼 버라이어티 같은 캐릭터들이 나오고 있는데 연출자 입장에선 그렇게 놓아버리는 게 쉽진 않은 일일 텐데.
조효진 PD : 쉽지 않지. 하지만 그러니 좋더라. 나나 임형택 PD, 또 몇몇 작가들은 예전에 리얼 버라이어티인 ‘패밀리가 떴다’를 같이 했던 사람들이라 그거랑은 다른 걸 하고 싶어 정제된 게임쇼를 구상했던 거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너무 정제된 게임쇼, 정제된 게임쇼를 되뇌다보니 답답해진 것 같다. 그걸 깨나간 거지.

그럼 정제되지 않은 나머지 부분을 출연자들이 채워 넣어야 하는데.
임형택 PD : 우리가 미션을 설명할 때, 미션지에 적힌 게 다다. 뭐하라는 거예요, 라고 물어봐도 그 다음부터는 본인들이 나머지를 채워가야 하는 거다. 그런 이해를 출연자들이 더 잘하게 되면서 캐릭터도 더 잘 잡히고.
조효진 PD : 서로 믿음이 생긴 거 같다. 이런 식으로 미션을 처음 주기 시작할 땐 뭐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출연자도 있고, 우리는 우리대로 왜 이렇게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서로 믿는 게 있다. 제작진들이 생각이 있으니까 이런 거겠지, 우리도 연기자들이 해주겠지, 라고 믿고. 우리가 처음 계획했던 거랑 다르게 풀려도 재밌을 수 있겠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거다.

말하자면 제작진이 만든 룰의 사각을 공략하거나 그 이상으로 머리를 써야 한다.
임형택 PD : 정말 우리가 예상을 전혀 못할 때가 있다. 최민수 씨 출연했을 때 게임 룰은 굉장히 간단했다. 자기 가방 안에 있는 이름표를 그 사람에게 가져다 붙이면 되는 건데, 우리는 그냥 어떻게든 붙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출연자들은 자신이 누구 걸 가지고 있으니 저 팀은 누구 걸 가지고 있을 거라고까지 예상하며 게임을 진행하더라. 그런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걸 편집하며 보며 놀랄 때가 많다.

사실 유재석, 하하, 김종국 외에는 예능에 있어 검증되지 않은 출연자들인데 가장 발전한 캐릭터는 누구인 것 같나.
조효진 PD : 발전 속도로 따지면 송지효다. 이렇게까지 잘할 줄 몰랐다. 순수하고 착한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본인을 던질 줄은. 개리 같은 경우는 사적으로 재밌는 친구인 걸 알고 섭외했는데, 지금 보여준 것보다 보여줄 게 더 많은 친구다. 아직도 멀었다.
임형택 PD : 이광수는 점점 자신감을 가지면서 못 보여주던 걸 꺼내가는 단계인 거 같다. 놀랍다, 그 친구도.

처음보다 출연자들이 좀 더 이기겠다는 욕망을 불태우며 캐릭터가 명확해지고 게임의 의외성도 늘어난 것 같다.
조효진 PD : 원래 승부욕이 강한 사람들이다. 물론 방송으로서 재미가 최우선이지만 기왕이면 재밌게 이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 승부욕이 더 강해졌거나 우리가 동기 부여를 한다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승부욕이 강한데, 전처럼 게임마다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하나의 흐름 안에서 목표를 향해 쭉 달리는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에 더 승부욕을 부리는 걸로 비춰지는 것 같다.

“편집자가 너무 쉽다고 생각할 정도여야 괜찮은 난이도가 된다”
‘런닝맨’│“시청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만드는 재미”
‘런닝맨’│“시청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만드는 재미”
‘런닝맨’│“시청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만드는 재미”
‘런닝맨’│“시청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만드는 재미”
처음과 가장 달라진 부분인데 이젠 한 회가 하나의 서사물처럼 구성된다.
임형택 PD : 스토리가 자생적으로 생겼다. 게임이 조각조각 풀리면 서사가 떨어지는데 아예 많은 가능성을 열다보니까 출연자들이 알아서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게 되더라. 그걸 따라가면서 점층적으로 이야기가 쌓이고 그랜드 엔딩이 되는.

그러면서 편집과 사소한 장치들이 굉장히 중요해졌다. 가령 짝꿍 특집에서 걸그룹 멤버들이 누님들로 바뀔 때 꽃잎차를 마시는 장면을 넣어 마치 그들이 차를 마시고 변신한 것 같은 스토리 라인을 만들었다.
조효진 PD : 그런 이야기 들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 임형택 PD가 편집을 잘해서 그런 게 사는데, 드라마 같은 느낌과 현실을 오가는 구성이 좋다. 얼마 전 송지효에게 돈가방을 가져다 줄 때 무협물 같은 신을 넣었다가 현실로 돌아온 것도 그런 걸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그걸 시도하기에 여태까진 쇼의 구조가 덜 완성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가능해진 것 같다.
임형택 PD : 역할 분담을 통해 원하던 그림이 나올 때가 있다. 우리를 포함해 지금 휴가 간 친구까지 공동연출이 세 명인데, 조효진 선배 같은 경우는 꽃잎차나 무협물처럼 아기자기한 부분에 강점이 있고, 나는 좀 굵직굵직한 걸 좋아하고, 또 한 친구는 의외의 장난을 잘 치는 편인데 그게 조화가 잘 되는 것 같다.

사실 ‘트루 개리쇼’ 같은 편은 과거 게임쇼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하나의 완전한 서사물 아닌가. 열린 결말도 있고. (웃음)
조효진 PD : 결말에 대해서는 모든 제작진이 노코멘트다. (웃음) 사실 ‘트루 개리쇼’ 같은 경우는 우리로서는 큰 모험이었다. 개리라는 친구가 우리 안에서는 재밌지만 그를 주인공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를 푸는 게 통할 것인가. 어떤 인지도 높은 게스트가 나오면 거기 의존할 수도 있는데 우리 멤버 중 하나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것에 대해 ‘왜 굳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다행히 시청률도 나쁘지 않게 나왔고 그래서 용기를 많이 얻었다. 이걸 시도해본다고 해서 ‘뭐하는 짓이냐’는 이야기를 듣지는 않는구나.

사실 ‘트루 개리쇼’에서 극대화된 그런 심리전이 ‘런닝맨’의 중요한 재미가 되지 않았나.
임형택 PD : 편집할 때 죽겠다. (웃음) 내가 편집하며 어렵다고 생각하면 시청자는 아예 이해를 못하게 된다. 편집자가 너무 쉽다고 생각할 정도여야 괜찮은 난이도가 되는 거다. 사실 우리들은 수백 번을 보기 때문에 이것도 모르면 바보라고 생각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은 나와 느낌이 다르다. 나야 가장 집중해서 보지만 시청자는 화장실 다녀오며 보고 밥 먹으며 보고. 그 간극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편집을 하다가 ‘만약 여기서부터 본다면?’이라는 생각을 하는 거다. 더 노력해야 한다.

실제로 처음을 놓치면 쉽게 따라갈 수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조효진 PD : 그런 게 계속 숙제다.

하지만 그게 또 재미인데, 난이도를 낮춰야겠다고 생각하나.
임형택 PD : 양날의 검이다.
조효진 PD : 어떻게 해야 쉽게 받아들여질지 고민한다. 시청자들도 약간은 익숙해진 면이 있는데 안 보던 분들은 어렵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간혹 느낀다. 그에 반해 젊은 시청자들은 이 부분을 더 개발하길 원하고. 롤플레잉 게임이나 시뮬레이션 게임에 익숙한 세대에겐 어렵지 않을 거다. 마니악하게 가는 게 나쁜 건 아닌데 일요일 저녁 예능을 하는 입장으로서 세대가 어우러져 다 같이 편하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단 생각이 있다. 다음날 일하러 가야 하는데 온가족이 모여 저녁에 낄낄 댈 수 있는. 그래서 나이 드신 분들도 그 재미를 느끼게 하면 좋겠다는 압박감이 있는데 또 구태의연하게 하고 싶진 않아서 밸런스 맞추기가 어렵다.

그런 면에서 시청률 상승이 좀 더 용기를 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조효진 PD : 물론 시청률이 잘 나오면 좋은데 지금까진 우리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해왔다. 동방신기가 게스트로 나왔을 때 느낌을 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이걸 한 호흡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작가들과 일주일에 5일씩 회의하고 편집하고 그러다보니 1년이 갔다.
임형택 PD : 만약 고정된 코너가 있으면 여기서 뭘 보완하면 좀 더 나오겠다, 이것만은 해야 안 떨어진다는 게 있는데 우리는 매주 포맷이 조금씩 달라지다보니 그런 걸 담보할 수 없다. 이번에 짝꿍 레이스 반응이 좋았다고 다음 주에 또 하진 않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걸 하면 시청률이 올라갈 거야, 라는 것이 우리를 옭아매진 않는다.
조효진 PD : 시청률이 올라가서 감사하긴 한데, 다른 요소들에 비해서는 신경을 덜 쓴다. 그보다 중요한 건 하고 싶었던 걸 하는 재미, 만드는 재미다.

글. 위근우 기자 eight@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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