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 “오래 일을 했고, 쓸 만한 거 다 썼고, 쓰기 싫고 지겨울 때도 있는데 왜 또 쓸까 스스로 물어봐요. 근데 여전히 내가 일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고, 내 자신도 ‘뭐 아직은 할 수 있다’ 이러니까 계속하는 거 같아요.” – 김수현, 와의 인터뷰에서
평생 싸운다. 평생 정상이다. 평생 쓴다. 그리고 아직도 쓸 이야기들이 많다. 그게 김수현이다.
김수현 작가
김수현 작가


김순옥 : 김수현의 본명. 김수현은 자신의 본명이 “너무 개성이 없고 평범”해서 “야물딱지고 개성 그 자체인 나한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으로 생각 돼 불만이 많았고, 이후 “빼어 나기는 해야 했고 어질기도 해야겠고”하는 마음으로 지금의 이름을 지었다. 김수현의 어머니는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에 영양부족으로 그를 12달 만에 낳았고, 이 때문에 어린 시절 몸이 허약했던 김수현은 대학 입학 무렵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가족의 살림을 책임졌다. 당시 김수현은 재학 중이던 대학 신문에서 실시한 단편소설 공모에서 당선되는 등 소설이나 드라마 공모에 응시해 돈을 벌기도 했다.

양인자 : 작가. 김수현이 MBC 에서 인용한 노래 ‘타타타’를 작사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젊은 시절 잡지 에서 함께 일했는데, 양인자는 김수현이 을 퇴사하자 “방탄조끼를 벗어 놓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김수현은 “경영주가 사무실에 나타날 때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았”고, “일이 없어도 책상에 죽치고 앉아 무슨 일인가 하는 척 눈가림도 안했”던 “한 마디로 그들이 원하는 고답적인 질서의 이단자였고 파괴자”였다고. 결국 김수현은 직장 생활을 포기하고 1968년 MBC 라디오 연속극 응모에 도전, “지천으로 펄럭거리는 흰 양목 가운데 유난히 흰 옥양목 같다”는 평을 들으며 당선된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내준 작문숙제를 하지 않은 채 순간적으로 이야기를 지어내 빈 종이를 들고 글을 읽던 재능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순간.

정소영 : 영화감독. 김수현이 라디오 연속극 응모에 낸 (원제 )를 연출했다. 정소영은 의 각색을 시작으로 김수현과 전속 계약을 맺어 김수현이 작가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줬다. 당시 경제사정이 넉넉지 못했던 김수현은 아직 우유를 먹던 딸을 옆에 재운 채 하루 만에 영화 시나리오 한 편을 쓰는 등 “생활과의 투쟁”을 전개하며 살았다. 이후 김수현은 “내가 TV관계자라면 김수현 씨에게 드라마를 쓰게 하겠다”는 정소영의 말대로 드라마를 쓰기 시작한다.

심훈 : 소설가. 김수현은 1971년 TBC에서 심훈의 를 각색해 드라마로 썼으나 시청률 저조로 11회 만에 조기 종영 당했다. 이후 김수현은 절대로 다른 작가의 작품을 각색하지 않는다. 또한 그는 “작가 이상 배역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신념으로 자신이 원하는 배우 캐스팅을 관철, 이 때문에 그가 지나칠 정도로 작품에 관여한다는 세간의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한 은 주인공의 혼전 임신 등이 문제가 돼 조기 종영 당해 그가 “저질 퇴폐 작가”로 불리게 했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남편이 국을 안 먹어 속상하다는 청취자의 사연에 “남편이 국을 안 먹는 건 남편 식성인데 국 먹기를 강요할 필요가 어딨나, 그런 거 갖고 속상할 시간에 좋은 책이나 읽어라”라고 말해 제작진을 당황하게도 만들었다. 말 그대로 한국 드라마계의 이단아이던 시절. 하지만 김수현이 드라마를 시작할 무렵에는 작가협회가 원고료 투쟁으로 집필 거부를 하자 제작진이 대본을 다른 작가에게 맡겨 촬영 하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김수현의 지금 위치는 그의 말대로 “건방을 떠는 애송이”시절 부터 그가 자신의 실력을 보이며 관철시킨 것이었다.

차화연 : MBC 에 출연한 배우. “죽은 시체도 벌떡 일어나 텔레비전 앞에 앉는다”는 말까지 나오던 MBC 이후, 김수현은 MBC 으로 더 이상 올라갈 데 없는 최고의 인기 작가가 된다. 은 김수현의 작품 중 드물게 두 형제의 수십 년 세월을 그린 시대물이었고, 마지막까지 태준과 화해하지 못한 채 괴로운 내면을 가진 미자는 말 그대로 파격적인 여성 캐릭터였다. 태준과 태수의 성공기가 개발 시대의 남성 서사였다면, 뛰어난 여배우였음에도 시대의 한계에 좌절했던 미자는 그들에게 가려진 여성 서사였다. 으로 김수현은 강하고 꼿꼿한 여성을 드라마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미국 미니시리즈 방영 당시 “한국 작가들은 왜 저런 드라마를 만들지 못하냐”는 시청자들의 말에 못내 서운해 했던 그의 대답이기도 했다.

이순재 : MBC 를 비롯, 김수현의 많은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김수현은 1975년 에서 구세대와 신세대, 혹은 가부장적인 남자와 그의 아내의 갈등을 그렸다. 는 그 연장선상의 작품이었지만, 신세대 문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1991년에 방영 되면서 김수현식 가족 드라마 중 최고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후 김수현은 KBS , , , 등 가족 드라마를 통해 그 시대의 가족이 겪는 새로운 문제를 다뤘고, 이를 통해 동시대 여성의 변화를 보여준다. 에서 집안의 중심이던 이순재는 에서 새로운 사랑을 찾으며 자신의 인생을 찾는 할아버지가 됐고, 에서 그에게 쥐어 살던 김혜자는 에서 가사 노동을 파업하는 며느리가 된다. 김수현은 그렇게 여성의 시각으로 가부장제 중심의 한국 가족의 변천사를 기록했다.

김희애 : , SBS , 등에 출연한 배우. 김희애는 “데뷔 후 20년간 (김수현이) 불러주지 않아 콤플렉스가 생길 정도”였지만, 정작 김수현은 김희애가 “깎아 놓은 알밤처럼 너무 단단해 보여서” 캐스팅하는 것을 망설였다고. 김희애는 에서 재벌가 시댁의 온갖 모욕을 감수하는 며느리를, 에서 무책임한 남편과 결별을 결심하는 여자를, 에서 친구의 남편과 불륜에 빠진 뒤 그 남자와 결별하는 여자를 연기하며 그 시대 여성의 욕망과 좌절을 그린다. 특히 아내와 불륜관계의 여자 모두 남자를 떠나면서 가부장제가 해체되는 는 김수현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보여줬다. 그리고 는 그가 “사회가 주는 온갖 질타와 모욕과 비난을 전부 다 감수하고 겪어내면서까지 쟁취하고 싶고, 쟁취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건 부러우면 부러웠지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임상수 : 영화감독. 김수현은 그의 영화 의 시나리오를 김수현에게 맡겼다. 하지만 김수현은 “(대본이) 수정 보완의 차원이 아니라 완전히 임상수 시나리오로 다시 쓴 대본”이었다며 시나리오 작업에서 물러났다. 김수현은 연기지도시 연기자에게 “대사의 음정, 장단 하나도 틀리면 안돼”라고 말하고, 소품까지 일일이 지정할 만큼 자신의 대본을 그대로 관철 시킨다. SBS 은 김수현이 연출의 호흡과 기법을 문제 삼아 2회 만에 연출자가 교체되기도 했다. 이런 김수현의 작품관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하지만 이순재는 김수현의 극본에 대해 “구문이 완벽하게 성립 돼 있어 어느 한 말을 빼면 문장이 무너진다”고 말했고, 김수현은 그 대본으로 40여 년 간 정상을 지켰다. 그는 일반적인 작가가 되는 대신, 자신의 능력으로 기어이 사람들이 그만의 예외를 인정하도록 만들었다. 김수현에게 좌우명이 있다면, 아마도 ‘Me against the world’가 아닐까.

정을영 : 부터 까지 1990년대 중반 이후 김수현의 주요작을 연출한 감독.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김수현과 처음 일할 당시 “나는 김수현 사단을 싫어한다. 나는 사단 같은 거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을영은 에서 제주도의 여유로운 풍경을 잡아내며 작품에 따뜻한 정서를 부여한다. 또한 태섭(송창의)이 채영(유민)에게 커밍아웃할 때, 그의 다양한 편집과 카메라 구도는 그 순간의 충격을 극대화 시킨다. 정을영은 김수현의 드라마에 미장센의 가치와 대사가 아닌 영상으로 드라마의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을 보여줬다. 김수현은 정을영을 통해 “엄청난 폭군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제임스 카메론 : 영화 의 감독. 김수현은 그의 트위터에서 를 “시각 홀림”이라며 비판했다. 스스로 “희, 로, 애, 락 중 희, 애, 락에는 지나치다싶을 만큼 시큰둥 하지만 ‘로’에만 유별나게 민감”하고, “성질 못됐고 날카롭고 말로 다치게 하는 일도 많이 한, 결함 많은 사람”이라 말하는 김수현은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하지만 그는 그래서 2010년까지 현재 진행형의 작가다. 스스로를 ‘보수 꼴통’이라 자처하는 그는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고, 끊임없이 대중과 주장과 반박을 주고받으며 대화한다. 김수현은 점잖은 어른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와 대화한다. 60을 넘긴 나이에 보도 듣도 못한 사람들에게 악플을 먹으면서까지.

송창의 : 에서 게이인 태섭을 연기하는 배우. 김수현은 태섭을 통해 게이, 또는 가족에게 생긴 새로운 문제를 제시한다. 김수현은 게이, 낙태, 무책임하게 가족을 버린 아버지 등 포용하기 어려운 문제를 제시한 뒤 문제 당사자와 다른 가족의 시각을 모두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끝없이 불륜을 저지른 남편을 받아들일 수 없는 어머니의 입장과 그래도 자식 도리를 해야 하는 장남의 모습을 모두 보게 된다. 그리고 김수현은 양보할 수 없는 각자의 입장을 모두 용해시킬 수 있는 것이 결국 “부모이기 때문에”, “사람이기 때문에” 같은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재혼한 남편의 아들이자 게이인 태섭은 김수현의 이런 가족주의, 또는 인본주의가 가부장제하의 가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늘 보수를 깨는 작품을 써왔다. 그렇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절대 깨지면 안 된다”는 김수현은 가족으로 세상의 모든 문제를 끌어안는다. 비록 먹고 살만한 중산층 가족 안에서, 기본적으로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라는 한계가 있지만 그는 가족을 통해, 인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 점에서, 그는 품격 있는 보수주의자다.

김용림 : 에서 가족의 가장 어른인 할머니를 연기하는 배우. 에서 바람기로 인해 여러 여자들과 살다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의 모습은 김수현이 “거의 평생 바람쟁이”라고 말했던 그의 아버지를 연상시킨다. 자신의 작품에서 늘 따뜻한 남성 어른의 존재를 그리며 가족의 화합을 이야기하던 그는 에서 가부장의 자리에 평생을 자식을 위해 살아온 어머니를 올려놓는다. 그건 한국 가족사가 도달한 현재의 가족이자, 한국의 가부장제를 벗어나기 시작한 김수현의 새로운 세계다. 그리고 김수현은 이 새로운 가족을 통해 또 다른 가족사를 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수현은 평생토록 세상과 싸웠고, 결국 자신의 세계를 완성시켰다. 그리고 그 세계에는 여전히 할 이야기가 많다. 할매, 참 징하고, 참 대단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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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의 여러 작품에 출연한 김상중과 영화 에 출연한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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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석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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