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 다녀왔습니다. 늦은 여름휴가를 겨울에 가까운 그곳에서 보내고 돌아오니 서울은 봄처럼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일렉트로닉 음악, 클럽문화, 과감한 그래피티 등, ‘문화양조장’으로서 베를린은 마치 몇 십 년 전 뉴욕을 보는 듯 뜨겁고 신선하게 진화 중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빠르게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는 이 도시의 한 트랙은 끊임없이 과거를 복원하는 작업을 멈추지 않습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벌써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먼 과거가 되어버린 DDR(독일민주공화국. 구동독) 시절은 영화 <굿바이 레닌>이 소동극 속에서 복원한 대로 ‘오스텔지어’(‘오스트’ (동)+향수(노스텔지어)) 속 아련한 추억이 되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베를린 곳곳에는 투박하고 정겨운 그 시절 소품들을 파는 작은 가게들도, 동독의 생활을 몸소 체험해 볼 수 있는 ‘DDR 박물관’도,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공화국” 시절의 인테리어를 그대로 재현한 호텔도 꽤나 인기 있는 아이템입니다. 한때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넘어가던 베를린 장벽은 이제 그 유명한 ‘형제의 키스’ 같은 그림이 그려진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로 변했고, 수학여행 온 여학생들이 즐겁게 기념사진을 찍는 평화로운 풍경을 연출합니다.

그러나 그 어느 때 보다 평화롭고 힙한 베를린의 거리를 걸으며 제가 가장 자주 떠올렸던 단어는 바로 ‘공포’였습니다. 유태인 박물관도, 홀로코스트 기념관도 골목을 돌면 나오는 여전한 폐허의 공터도, 지난 역사의 과오와 부끄러움의 흔적들을 여기저기에 그대로 남겨놓은 이 도시는 인간이 만들어낸 이 엄청난 폭력의 역사가 언제라도 다시금 재연될 수 있을 거라는 구체적인 공포를 매 순간 안겨주곤 했습니다. 지금 당신이 누리고 있는(혹은 그렇다고 착각하고 있는) 이 작은 평화의 시대 역시 언제라도 침범 당하고 짓밟히기 쉬운 무딘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이 역사를 정녕 다시 반복 할 것 인가’라고 이 도시는 매 발걸음 마다 진지하게 묻고 조용히 경고했습니다. 이 글은 오랜만의 출근 길, 부끄러움과 폭력의 역사를, 도시에 뿌려진 혈흔을 누가 볼까 황급히 그리고 부지런히 지우고 있는 광화문 광장을 지나며 쓴 짧은 기록입니다. 아니 그저 늦은 휴가복명서일 뿐일지도 모르지요.

글. 백은하 (o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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