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아 피쳐사진105
정밀아 피쳐사진105
(part3에서 이어옴) 활동을 중단한 정밀아는 학습지 회사 전화상담, 편의점 등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땐 벼랑 끝으로 가는 기분인지라 일단 뭔가를 하며 살아보자는 마음이었던지라 너무 우울해 일주일 내내 술을 마셨습니다.”(정밀아) 더 이상 서울에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해 아버지가 있는 고향 포항으로 내려갔다. 쉬면서 뭔가 준비해 언젠가는 다시 상경할 생각이었지만 일종의 도피였다.
정밀아 클럽 빵 공연1
정밀아 클럽 빵 공연1
1년 동안 동해안 구룡포로 떠나 유적에서 문화재를 발굴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도자기 복원하는 일을 맡아 했어요. 그때 동해바다를 보며 복잡한 심사를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정밀아) 영어 원어민 스터디 모임에 참여해 외국인 아이들과 즐겁게 기타를 치면서 즐기며 노는 문화를 경험했다. “포항 내려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존경하던 미술가 박이소 선생님이 돌아가셔서 우울한 나날이었는데 아일랜드 친구에게 데미안 라이스 앨범을 선물 받고 너무 좋아 미칠 뻔 했어요. 진짜 천 번은 들은 것 같아요.”(정밀아) 그때 서울에 다시가면 음악도 다시하고 기타를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정밀아 피쳐사진96
정밀아 피쳐사진96
1년 동안 머리를 비움과 동시에 새로운 것들을 채워나갔다. “과거를 털어내려는 마음으로 작업했던 졸업 작품 그림을 비롯해 오빠가 수집해둔 키노, 페이퍼 잡지를 다 버렸는데 오히려 후련하더군요.”(정밀아) 2005년 6월, 서울로 올라와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에 취직했다. 꼬박 2년을 다니면서 열심히 일했지만 창작활동을 하는 아티스트에 대한 갈증으로 목을 타 틀어갔다. “창작활동보다 돈이나 일이 더 중요해 질까봐 걱정이 되었죠. 뭔가 결심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아놓은 돈으로 미국, 캐나다, 유럽으로 3개월 동안 여행을 떠났습니다.”(정밀아)
정밀아 피쳐사진99
정밀아 피쳐사진99
2007년 초 여름, 미국을 거쳐 캐나다 몬트리올 재즈페스티벌에서 본 리차드 보나 공연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정말 공연을 즐기더군요. 100분 정도의 공연이었는데 저렇게 기쁘고 즐거울 수 있다면 정말 음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정밀아) 이어 유럽여행에서 유명 미술관 관람을 통해 예술적 호기심을 채웠다. 여행을 다녀온 후. 그림 작업에 몰두했다. “그 때의 작업들을 보면 어둡고 칙칙하고, 불안이나 상실감이 덕지덕지 묻어있어요. 그런 심정들을 풀어내야했던 시기에 ‘드럼 앤 베이스’라는 빠른 정글음악과 일본 시부야계 음악이 제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말도 하지 않고 춤만 추는 홍대와 이태원 클럽에도 많이 다녔지만 멍하니 방바닥에 누워 남성듀엣 어떤날의 1,2집을 듣고 또 들으면서 내가 만든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습니다.”(정밀아)

정밀아, 미미시스터즈와 마트공연 (2010년)
정밀아, 미미시스터즈와 마트공연 (2010년)
정밀아, 미미시스터즈와 마트공연 (2010년)

2008년 일본 후지락 페스티발을 참관하며 예술 활동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했다. “쏘다니고 나니 통장은 다시 제로 상태가 되었지만, 뭔가 꽉 채워진 느낌이었습니다. 없이 살아도 창작이란 걸 하고 살면 훨씬 즐겁고 후회가 없을 것 같더군요. 물체주머니 시절에 만든 음악들은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어요. 다시 해보자는 마음으로 동아리 ‘아마’의 다음카페에 공연했던 노래들을 모아놓기 시작했습니다. 가사를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이걸 가지고 뭘 해봐야겠다는 마음이었죠.”(정밀아) 그때 작은미미가 미미스터즈 활동을 시작하는 걸 보면서 왠지 홍대로 가서 다시 음악을 할 것 같은 예감을 했다.
정밀아 피쳐사진112
정밀아 피쳐사진112
예명 ‘정밀아’는 장난삼아 만들어 놓은 이름이다. “‘밀’자가 들어가니 ”은밀하게, 농밀하게, 정밀하게“라는 장난스런 의미인데 2008년 페이스북에 가입할 때, 쓰기 시작했어요. 이후 그림도 엄청 그렸고 사진과 곡 작업도 조금씩 시작했습니다. 키보드는 없었고 기타는 치지 못했던지라 MP3플레이어에다 곡을 흥얼거리며 녹음작업을 시작했습니다.”(정밀아) 일기처럼 글을 쓰기 시작한 그녀는 노래가사처럼 음률을 의식해 작사 훈련을 시작했다.

정밀아의 그림들
정밀아의 그림들
정밀아의 그림들

2010년 미술교실을 오픈하며 여유를 찾았다. 매사 심사숙고하는 성격인 정밀아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는 일종의 검증과정을 거쳤다. 친구들이 “야 가수 해봐”라는 반응을 보이며 결혼식 축가를 부탁해 와 ‘딸기 좀 사줘’란 자작곡을 2번 불렀다. 완성된 첫 곡을 만들었지만 두려운 마음에 음악활동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림에는 온통 불안한 감정들만 쏟아내고 있다가, 노래는 사람들에게 내 말을 하는 기분이 들더군요. 미술과 다르게 노래는 너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겠다는 즉각적인 리액션 반응에 제 표현영역이 확장되는 것 같아 너무 좋았습니다.”(정밀아)
정밀아 클럽 빵 공연7
정밀아 클럽 빵 공연7
2011년 음악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미미시스터즈의 공연을 보러 클럽 씨클라우드에 갔다. 공연스케줄을 보다 누구나 자신의 노래를 발표할 수 있는 ‘오픈 마이크’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억수로 떨리는 마음으로 작은미미에게 여기에서 내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물어보니 해보라고 하더군요.”(정밀아) 작은미미에게 낙원상가에서 수작업으로 제작한 기타를 5만5천원에다 오렌지주스 한 잔을 사주고 넘겨받고 기타 연습에 들어갔다. 기타레슨을 받은 적이 없는 그녀는 필요한 코드를 인터넷을 검색해 운지법은 대는 되로 잡았다.
정밀아 피쳐사진119
정밀아 피쳐사진119
두 달 간 열심히 연습해 오픈 마이크에 나갔다. 2012년 6월 17일 가장 먼저 언플러그드 카페 오픈 마이크에 나가 ‘그리움도 병’, ‘내 방은 궁전’ 2곡을 불렀다. 그녀의 첫 무대인 셈이다. 이틀 후, 자작곡 3곡을 부를 수 있는 씨클라우드에는 첫 도전이후 1년 정도 꾸준하게 오픈 마이크에 참여했다. “이름이 공표되니 억수로 떨렸습니다. 관객보다 참여자들이 더 많았지만요.(웃음)”(정밀아) 2012년 8월 비오는 어느 날, 오픈 마이크 무대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언플러그드 카페 목요일 정규공연 ‘비트윈 더 카페’ 무대에 첫 섭외가 들어왔다. “그해 가을 10월에 악몽 같았던 클럽 빵 오디션에 다리가 후둘 거리며 들어가 노래했어요. 두 달 후에야 연락이 와 처음엔 떨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웃음)”(정밀아)
정밀아 피쳐사진107
정밀아 피쳐사진107
2012년 11월부터 클럽 바다비에서도 화, 목요일에 정기적으로 30분 공연을 시작했다. 어느 날, 언플러그드 카페에서 ‘데모 음반 녹음할 의사가 있냐?’고 연락이 왔다. 흥분된 마음으로 2012년 겨울에 녹음을 시작해 2013년 1월 가내수공업 공법으로 첫 데모 CD를 만들었다. 케이스와 속지를 직접 다자인하고 풀칠, 가위질까지 직접 했다. 공식 유통을 하지 않고 공연장에서만 400장을 넘게 판매하는 작은 성과를 올렸다.(part5로 계속)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사진제공. 정밀아
장소제공. 카페 모과나무 위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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