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 '비닐하우스' 스포일러가 포함됐습니다.
집을 한자로 표기하면, 이렇게 '家' 지붕이 얹어져 있는 형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로부터 한자는 상형문자(사물의 모양을 본떠 만든 문자)라는 기초 틀을 두고 만들어졌다. 그러니 집은 타인의 침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이자 가장 사적인 공간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그런 집이 없다면 어떨까. 무언가의 침입으로부터 막을 어떠한 방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사실 그 지붕 아래 있으려면 많은 조건이 필요한데, 영화 '비닐하우스'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인 집을 각기 다른 방면으로 비틀어 보여준다. 집을 구하기 위해 고통을 견뎌내거나 안락한 집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기도 하고 집이 없어 전전하기도 한다. 조용하지만 침착하게 영화는 관객들을 밀어붙인다. 현재를 소거해 미래를 살아내는 인물. 이 문장은 주인공 문정(김서형)을 수식하는 것으로 가장 적합한 말일 테다. 푸석해진 머리와 초췌한 피부 상태는 문정의 현재 삶을 표면적으로 보여준다. 문정은 다음을 위해 현재의 상처를 애써 감춰두는데, 이는 점차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썩어 문드러진다. 또한 상처가 난 부위를 절개하기보다는 자신을 방치하고 자해하는 쪽으로 선택한다. 듣기 힘들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마구 자신을 때려 붉어진 볼은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다. 사실 이외에도 깊게 팬 상처를 방치하는 인물들이 영화 곳곳에 포진해있다. 그들은 타인의 상처를 위해 자신의 상처는 잠시 뒤편으로 미뤄둔다.
영화 '비닐하우스'의 내용은 이렇다. 인적이 드문 땅 위에 우두커니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문정은 홀로 거주한다. 그녀는 왜 비닐하우스에서 사는 걸까. 현재 그의 남편이 죽고 아들은 소년원에 수감돼있다. 그런 문정에게는 단 하나의 꿈이 있는데, 바로 출소를 앞둔 아들과 제대로 된 집에서 함께 사는 것. 이를 위해 문정은 치매를 앓고 있는 노부인 화옥(신연숙)의 요양사로 일한다. 하지만 화옥의 성격은 그야말로 만만치 않다. 툭 하면 욕설을 하거나 구타하며 인격모독을 무차별적으로 시행한다. 그나마 화옥의 남편 태강(양재성)은 문정을 인간적으로 대우해주지만, 그가 보지 못하는 순간에는 가차 없이 돌봄 노동자로 전락한다. 그 이유는 태강은 후천적으로 시각을 잃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데다 치매 초기를 진단받았기 때문. 게다가 문정에게는 병원에 입원한 아픈 노모도 있다. 화옥의 불같은 성미는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이끈다. 화옥의 남편 태강이 오랜만에 옛 친구들을 만나러 간 사이에 사고가 발생한 것. 화장실에서 화옥의 머리를 말려주고 욕실을 청소하던 문정은 갑작스레 화옥에 의해 머리채가 잡히고 만다. 엄청난 힘에 문정은 버티지 못하다가 실수로 화옥을 밀치고 만다. '저 아가씨가 날 죽일 거야'라며 문정만 보면 이야기하던 화옥은 자신이 했던 말처럼 벽에 부딪혀 사망하고 만다. 화옥의 머리에서 흐른 피는 마치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문정의 삶처럼 하염없이 수챗구멍으로 빨려 들어간다. 상황을 인지한 문정이 112에 신고하려던 것도 잠시 휴대폰에 익숙한 아들의 이름이 뜬다. 전화를 받은 문정은 같이 살기 싫다던 아들이 "함께 살자"고 하는 말을 듣고 무언가 결심한 표정을 짓는다. 욕실 사방에 흩어진 피를 거칠게 닦기 시작한 문정은 자신에게 주문을 걸듯이 중얼거리면서 자신을 폭행하고 피를 닦기를 반복한다. 제대로 된 집에 살기 위해 이 집에서 벌어진 살해의 흔적을 지워야 하는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영화의 호흡은 이 시퀀스 이후로 점차 거칠어진다. '비닐하우스'의 사운드는 일상적이면서 동시에 여백을 남겨둔다. 하지만 화옥의 사망 뒤에 고조되는 음악은 혼돈에 휩싸인 문정처럼 일제히 뒤섞인다. 단계적으로 쌓인 소리는 문정의 급격하게 변화하는 감정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진실이 보이지 않도록 숨겨야 하는 자와 눈이 보이지 않는 자의 숨 막히는 일상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화옥을 비닐하우스에 숨긴 문정은 그 자리에 자신의 노모를 대체시킨다. 눈이 보이지 않는 태경을 속여 화옥의 사망을 은닉하려고 하는 것. 하지만 태강의 알 듯 모를 듯한 상황은 관객들 역시 숨죽이고 봐야 하는 순간이다.
이때, 중요한 점은 문정은 돌봄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돌봄으로 얽힌 인물들의 깊고 어두운 욕망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런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이솔희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주거 공간과 함께 돌봄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익숙하게 향유하게 되는 집과 돌봄은 그러기에 더욱 무서운 것이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어머니에 이어 누군가를 돌보는 요양사까지. 문정이 그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선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다. 더욱이 문정의 삶에는 순남(안소요)이라는 낯선 존재가 침투하게 된다. 치료 모임에서 만난 순남은 겉보기에 마냥 해맑고 오점 없는 인물로 보이지만, 긴 소매로 감춰진 손목의 자해 상처처럼 불안정한 심리가 표면 위로 천천히 드러난다. 길가를 걸어가는 순남을 발견하고 선의로 차량에 태운 그 한번은 문정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되는데, 무심코 알려준 비닐하우스의 비밀번호가 그를 옥죄기 때문이다. 사적인 공간에서 공공의 공간으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비닐하우스는 시골에 가면 흔히 보게 되는 그만큼 외부에 노출되어 있으며 누군가의 사적인 공간으로 인식되기 힘들다. 오죽하면 영화 속에는 문정의 집인 비닐하우스 앞에서 남녀가 정사하는 장면이 그려지겠는가. 감독 이솔희는 익숙했던 소재와 풍경을 이질적으로 비튼다. 신인 감독이지만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왓챠상, CGV상, 오로라미디어상 등을 수상해 실력을 입증한 바 있기도 하다. 배우 김서형의 텅 비어있지만 강렬한 눈빛으로 장악하는 연기도 인상적이다.
일상적이지만 그래서 더 소름이 끼치는 집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목격해야만 할까. 나를 보호해주는 공간이 부재한 순간,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비닐하우스'는 다양한 방면으로 제시해주는 것 같다.
'비닐하우스'는 오는 26일 개봉한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집을 한자로 표기하면, 이렇게 '家' 지붕이 얹어져 있는 형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로부터 한자는 상형문자(사물의 모양을 본떠 만든 문자)라는 기초 틀을 두고 만들어졌다. 그러니 집은 타인의 침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이자 가장 사적인 공간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그런 집이 없다면 어떨까. 무언가의 침입으로부터 막을 어떠한 방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사실 그 지붕 아래 있으려면 많은 조건이 필요한데, 영화 '비닐하우스'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인 집을 각기 다른 방면으로 비틀어 보여준다. 집을 구하기 위해 고통을 견뎌내거나 안락한 집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기도 하고 집이 없어 전전하기도 한다. 조용하지만 침착하게 영화는 관객들을 밀어붙인다. 현재를 소거해 미래를 살아내는 인물. 이 문장은 주인공 문정(김서형)을 수식하는 것으로 가장 적합한 말일 테다. 푸석해진 머리와 초췌한 피부 상태는 문정의 현재 삶을 표면적으로 보여준다. 문정은 다음을 위해 현재의 상처를 애써 감춰두는데, 이는 점차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썩어 문드러진다. 또한 상처가 난 부위를 절개하기보다는 자신을 방치하고 자해하는 쪽으로 선택한다. 듣기 힘들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마구 자신을 때려 붉어진 볼은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다. 사실 이외에도 깊게 팬 상처를 방치하는 인물들이 영화 곳곳에 포진해있다. 그들은 타인의 상처를 위해 자신의 상처는 잠시 뒤편으로 미뤄둔다.
영화 '비닐하우스'의 내용은 이렇다. 인적이 드문 땅 위에 우두커니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문정은 홀로 거주한다. 그녀는 왜 비닐하우스에서 사는 걸까. 현재 그의 남편이 죽고 아들은 소년원에 수감돼있다. 그런 문정에게는 단 하나의 꿈이 있는데, 바로 출소를 앞둔 아들과 제대로 된 집에서 함께 사는 것. 이를 위해 문정은 치매를 앓고 있는 노부인 화옥(신연숙)의 요양사로 일한다. 하지만 화옥의 성격은 그야말로 만만치 않다. 툭 하면 욕설을 하거나 구타하며 인격모독을 무차별적으로 시행한다. 그나마 화옥의 남편 태강(양재성)은 문정을 인간적으로 대우해주지만, 그가 보지 못하는 순간에는 가차 없이 돌봄 노동자로 전락한다. 그 이유는 태강은 후천적으로 시각을 잃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데다 치매 초기를 진단받았기 때문. 게다가 문정에게는 병원에 입원한 아픈 노모도 있다. 화옥의 불같은 성미는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이끈다. 화옥의 남편 태강이 오랜만에 옛 친구들을 만나러 간 사이에 사고가 발생한 것. 화장실에서 화옥의 머리를 말려주고 욕실을 청소하던 문정은 갑작스레 화옥에 의해 머리채가 잡히고 만다. 엄청난 힘에 문정은 버티지 못하다가 실수로 화옥을 밀치고 만다. '저 아가씨가 날 죽일 거야'라며 문정만 보면 이야기하던 화옥은 자신이 했던 말처럼 벽에 부딪혀 사망하고 만다. 화옥의 머리에서 흐른 피는 마치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문정의 삶처럼 하염없이 수챗구멍으로 빨려 들어간다. 상황을 인지한 문정이 112에 신고하려던 것도 잠시 휴대폰에 익숙한 아들의 이름이 뜬다. 전화를 받은 문정은 같이 살기 싫다던 아들이 "함께 살자"고 하는 말을 듣고 무언가 결심한 표정을 짓는다. 욕실 사방에 흩어진 피를 거칠게 닦기 시작한 문정은 자신에게 주문을 걸듯이 중얼거리면서 자신을 폭행하고 피를 닦기를 반복한다. 제대로 된 집에 살기 위해 이 집에서 벌어진 살해의 흔적을 지워야 하는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영화의 호흡은 이 시퀀스 이후로 점차 거칠어진다. '비닐하우스'의 사운드는 일상적이면서 동시에 여백을 남겨둔다. 하지만 화옥의 사망 뒤에 고조되는 음악은 혼돈에 휩싸인 문정처럼 일제히 뒤섞인다. 단계적으로 쌓인 소리는 문정의 급격하게 변화하는 감정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진실이 보이지 않도록 숨겨야 하는 자와 눈이 보이지 않는 자의 숨 막히는 일상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화옥을 비닐하우스에 숨긴 문정은 그 자리에 자신의 노모를 대체시킨다. 눈이 보이지 않는 태경을 속여 화옥의 사망을 은닉하려고 하는 것. 하지만 태강의 알 듯 모를 듯한 상황은 관객들 역시 숨죽이고 봐야 하는 순간이다.
이때, 중요한 점은 문정은 돌봄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돌봄으로 얽힌 인물들의 깊고 어두운 욕망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런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이솔희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주거 공간과 함께 돌봄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익숙하게 향유하게 되는 집과 돌봄은 그러기에 더욱 무서운 것이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어머니에 이어 누군가를 돌보는 요양사까지. 문정이 그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선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다. 더욱이 문정의 삶에는 순남(안소요)이라는 낯선 존재가 침투하게 된다. 치료 모임에서 만난 순남은 겉보기에 마냥 해맑고 오점 없는 인물로 보이지만, 긴 소매로 감춰진 손목의 자해 상처처럼 불안정한 심리가 표면 위로 천천히 드러난다. 길가를 걸어가는 순남을 발견하고 선의로 차량에 태운 그 한번은 문정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되는데, 무심코 알려준 비닐하우스의 비밀번호가 그를 옥죄기 때문이다. 사적인 공간에서 공공의 공간으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비닐하우스는 시골에 가면 흔히 보게 되는 그만큼 외부에 노출되어 있으며 누군가의 사적인 공간으로 인식되기 힘들다. 오죽하면 영화 속에는 문정의 집인 비닐하우스 앞에서 남녀가 정사하는 장면이 그려지겠는가. 감독 이솔희는 익숙했던 소재와 풍경을 이질적으로 비튼다. 신인 감독이지만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왓챠상, CGV상, 오로라미디어상 등을 수상해 실력을 입증한 바 있기도 하다. 배우 김서형의 텅 비어있지만 강렬한 눈빛으로 장악하는 연기도 인상적이다.
일상적이지만 그래서 더 소름이 끼치는 집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목격해야만 할까. 나를 보호해주는 공간이 부재한 순간,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비닐하우스'는 다양한 방면으로 제시해주는 것 같다.
'비닐하우스'는 오는 26일 개봉한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