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병헌./ 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배우 이병헌./ 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노규민의 영화人싸≫
노규민 텐아시아 영화팀장이 매주 수요일 오전 영화계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배우, 감독, 작가, 번역가, 제작사 등 영화 생태계 구성원들 가운데 오늘뿐 아니라 미래의 '인싸'들을 집중 탐구합니다.



"키도 별로 크지 않은 배우에게 이런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틀린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키 빼고 다 가진 배우임에 틀림없다. 중저음의 깔끔한 목소리와 발성, 크고 짙은 눈빛, 구릿빛 피부와 탄탄한 근육질 몸매, 그리고 미모의 아내 이민정까지 가졌다.악마의 재능을 가진 배우 이병헌이다.

이병헌은 할리우드 진출에도 성공했고, 봉준호, 송강호보다 더 일찍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도 올랐다. 이번 주에는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로 꼽히는 '칸 국제영화제' 폐막식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다. '한국배우 최초 칸 영화제 시상자'라는 타이틀도 이력서에 추가됐다.

'이병헌'이 세계적인 인싸가 되는 계기는 2000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공동경비구역 JSA' 명장면./
'공동경비구역 JSA' 명장면./
비무장지대 수색 중 지뢰를 밟아 오도 가도 못 한 상황에 놓인 이수혁 병장(이병헌 분). 그러다 북한군 중사 오경필(송강호 분), 전사 정우진(신하균 분)과 마주하게 된 이 병장은 "나 지뢰 밟았다. 한 발만 더 가까이 오면 나 진짜 발 띄어 버린다"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오경필과 정우진이 급하게 자리를 뜨려 하자 당황한 이 병장은 "야 이 X새끼들아. 그냥 가면 어떡해"라며 속내를 드러낸다. 오경필이 "네가 가라며?"라고 하자, 이 병장은 "가까이 오지 말랬지 언제 그냥 가라 그랬어"라고 소리치다, 이내 "살려 주세요"라며 울먹거린다.

수많은 작품에서 명연기로, 명장면을 만들어낸 이병헌이다. '이병헌이 훗날 당대 최고의 배우가 되겠구나'라는 확신이 든 지점, 그리고 떡잎부터 대단한 연기를 보여준 장면이다.

1991년 KBS 공채 탤런트 14기로 데뷔한 이병헌은 '내일은 사랑', '아스팔트 사나이', '백야 3.98', '해피투게더', '아름다운 날들', '올인' 등 드라마에 주로 출연했다. 데뷔 초반부터 '청춘스타'로 정우성, 이정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그는, 특유의 남성적인 매력으로 안방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데뷔 이후 10년 동안의 이병헌은 "연기 잘 하네" 정도였지, "연기 진짜 잘 하네"까지는 아니었다.

특히 1995년 첫 스크린 주연작 '런어웨이'부터 1999년 '내 마음의 풍금'까지, 다수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그때까지도 이병헌은 'TV 탤런트' 이미지가 더 강했다. 실제로 이병헌은 "영화는 말아먹는 배우"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상황을 반전 시킨 건 '공동경비구역 JSA'. 583만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는 충무로 티켓파워 배우 명단에 그의 이름을 올려 놓았다. 그간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으면, 이병헌은 영화가 성공한 것에 감격해서 시간만 나면 극장엘 가서 '공동경비구역 JSA'를 봤단다. 100번 가까이 봤다는 풍문도 돌았다.
영화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
영화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
이후 '번지점프를 하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 장르를 불문하고 영화계를 섭렵한 그는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에서 주연 스톰 쉐도우 역에 캐스팅되며 할리우드에 진출하게 된다.

드라마 '올인'을 통해 한류스타로 거듭난 것이, 이병헌의 할리우드 진출에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달콤한 인생',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 놈' 등에서 선 굵은 연기로 '누아르 포텐'을 터트렸지만,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의 스티븐 서머스 감독은 이병헌의 도쿄돔 팬미팅 영상만 보고 그를 캐스팅했다고 전해진다.

어쨌든 이병헌은 한국과 일본에서 흥행 배우의 입지에 올랐고, 선 굵은 눈빛 연기와 썩 괜찮은 영어 발음 등을 보유하고 있어, 할리우드에서 희소가치는 충분했다.
'미스컨덕트'./
'미스컨덕트'./
이후 이병헌은 '지.아이,조2',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미스컨덕트', '매그니피센트7' 등 할리우드 영화에 계속해서 출연했다. 그는 드웨인 존슨, 브루스 윌리스, 아놀드 슈워제네거, 알파치노, 안소니 홉킨스, 덴젤 워싱턴 등 세계적인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리고 2012년, 이병헌은 마릴린 먼로, 찰리 채플린 등 전설 속 할리우드 배우들이 핸드프린팅을 남긴 차이니스 극장 앞에 손도장을 남겼다. 아시아 배우로는 최초였다.

뒤이어 2016년 열린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영화인 최초로 시상자로 선정돼 레드 카펫을 밟았다. 그는 그렇게 새로운 역사를 썼다.

굴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때 사생활 문제로 배우 생활 최대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병헌은 '팬덤'에 기댄 단순한 인기가 아니라 오롯이 연기력으로 이를 무마 시켰다.

'내부자들'(2015)부터 '남산의 부장들'(2020)까지 다작에 열중하면서, 다수의 작품을 흥행시킨 이병헌은 작품마다 '흠'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연기를 선보였다. 그렇게 과거 따윈 필요 없는 무조건 믿고 보는 배우임을 증명했다.

이병헌은 "배우에게 쉼 없는 치열함 없이 성공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신인 시절 연기를 못한다며 모욕을 당하기 일쑤였단다. 연기를 전공하지 않아서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 등 연극부터 초석을 다져온 배우들과의 비교도 허다했다.

실패도 있었고, 인생 최대 실수로 온갖 비난도 받았다. 굴곡진 연기 인생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이병헌이 칸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송강호, 전도연, 임시완 등과 함께 출연한 영화 '비상선언'(한재림 감독)이 오는 16일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리는 프리미어를 통해 세계 언론 및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인다. 그리고 17일, 영예의 폐막식 시상자로 무대에 오를 그의 미소가 벌써부터 훤히 그려진다. 아마 국내 팬들 눈엔 이병헌이 그 무대에서 가장 커 보일 것이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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