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언제 끝날지 모를 답답함 속에 하루하루 견디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다. 그래도 이 괴로운 시간을 버텨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즐겁게 보낼 방법을 찾아보자. 극장을 향한 발걸음 조차 두려워진 요즘, IPTV, 넷플릭스 등으로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영화들을 살펴봤다.

◆ 힘들 땐 역시 재밌는 게 최고

탭댄스로 날리는 우울감
'스윙키즈'


흥과 끼가 넘치는 우리 민족에게 춤과 노래를 마음껏 즐길 수 없는 이 시국은 더욱 우울하다. '흥'조차 억눌러야 하는 이 때 '스윙키즈'로 한을 풀어보자.
영화 '스윙키즈' 포스터 / 사진제공=NEW
영화 '스윙키즈' 포스터 / 사진제공=NEW


'스윙키즈'는 1951년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들이 오합지졸 탭댄스단을 결성하는 이야기다. 아쉽게도 극장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150억 원이 투입된 대작의 흥행을 견인하기엔 도경수, 박혜수 두 주인공의 관객 동원력이 미력했다. 전시 상황을 배경으로 했기에 숙명적으로 따라오는 비극 또한 아쉬운 대목이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타닥타닥 경쾌한 탭댄스 소리는 어깨를 저절로 들썩이게 한다.

이념이 엇갈리는 포로수용소 안에서도 탭댄스단의 모습은 절망을 잊게 할 만큼 사랑스럽고 유쾌하다. 현실의 한계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무대에서 만큼은 춤과 노래로 모두가 해방감을 느낀다. 자유를 갈망하는 로기수(도경수 분)와 양판래(박혜수 분)가 데이비드 보위의 '모던 러브'에 맞춰 춤을 추는 신은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을 수 있다.

배우들은 촬영 전 약 6개월간 매일 탭댄스를 연습해 거의 대역 없이 춤을 췄다. 진정한 '발연기'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으로 힘든 이 시기에 '스윙키즈'는 '전쟁의 반대말이 평화가 아니라 일상이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만든다.

'카톡'이 울리면 비밀이 드러난다
'완벽한 타인'


장르는 코미디인데 분위기는 호러에 가깝다. 주인공들의 휴대폰이 울릴 때마다 시작되는 '진실게임'에 심장이 쫄깃해지기 때문이다.
영화 '완벽한 타인' 포스터 /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완벽한 타인' 포스터 /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완벽한 타인'은 고향 친구들이 커플 모임에서 한정된 시간 동안 휴대폰으로 오는 모든 연락을 강제로 공개해야 하는 게임을 시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고 자신했던 친구들이 '휴대폰 잠금해제 게임'으로 인해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균열이 생기게 된다.

누구의 비밀이 어느 순간 드러날지 예상할 수 없는 스토리는 쫀쫀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유해진, 조진웅, 이서진, 염정아, 김지수, 송하윤, 윤경호 등 배우들은 맛깔 나는 대사로 쉴 새 없이 웃음을 터지게 한다. 비밀이 까발려질 때마다 체면은 바닥보다 더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내가 누군가를 잘 안다고 착각했구나, 오만했구나, 교만했구나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내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을 살펴보고 둘러보게 된다.

'완벽한 타인'은 2018년 한국영화 가성비 순위 2위를 차지했다. 38억 원의 제작비로 10배가 훌쩍 넘는 443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기 때문. 화려한 세트도 필요 없었다. 7명의 주인공이 둘러앉은, 만찬이 잘 차려진 식탁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로써 탄탄한 스토리, 좋은 연출, 안정적 연기만 뒷받침된다면 영화가 충분히 관객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

◆ 쫄깃한 긴장감은 짜릿해!

진짜 안전한 거 맞아?
'도어락'


부동산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이 때, 겨우 구한 원룸이 공포의 공간이 된다면? 혼술, 혼밥, 1인 가구 등 '혼자'에 익숙해진 사회에서 영화 '도어락'은 '나 혼자'일 때 시작되는 공포를 리얼하게 담아냈다.
영화 '도어락' 포스터 /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도어락' 포스터 /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도어락'은 혼자 사는 여자 경민(공효진 분)의 원룸에 살인사건이 일어나면서 시작되는 공포를 그린 스럴러다. 올 사람도 없는데 늦은 저녁, 현관 벨이 울릴 때의 그 공포! 바람 소리인가 생각해보지만 분명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게 맞는 것 같다. 이처럼 혼자 사는 평범한 직장인 경민 역을 맡은 공효진은 실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자에게 위협받고 있는 극도의 불안함을 리얼하게 표현해냈다.

경민은 주변에 도와주는 이 하나 없이, 사회적·심리적으로 고립돼 있다. 경민이 '혼자 겪는 공포'는 코로나19로 인해 '연결'이 단절돼 홀로 괴로움을 견뎌야 하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영화를 보고 나면 온전히 평온한 공간이 돼야할 우리집을 보호해주는 것이 하찮은 도어락뿐이라는 사실에 더욱 섬뜩해진다. 그리고 침대 밑의 공간을 꼭 한번 확인해보게 될 것이다.

칼날과도 같은 진실
'나이브스 아웃'


영화 '나이브스 아웃'은 치밀하고 탁월한 전개와 반전 결말로 충격을 안긴다. 재치 있고 섹시한 추리 스릴러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 포스터 / 사진제공=올스타엔터테인먼트
영화 '나이브스 아웃' 포스터 / 사진제공=올스타엔터테인먼트
이 영화는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작가 할란이 85번째 생일날 이후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용의자는 작가의 가족들이다. 식구들 중 제대로 된 이는 하나도 없다. 식구들은 어떻게 하면 800억이라는 엄청난 부를 축적한 할란의 등골을 빼먹을지만 궁리한다. 아버지의 책을 팔아 돈을 버는 출판사 사장 아들네,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 사업을 꾸린 딸네, 남편이 일찍 죽자 딸을 앞세워 한 푼이라도 뜯어내려는 며느리네까지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다. 거짓말을 하면 구토를 하는 나이 어린 가정부의 정체도미스터리하다.

영화의 제목인 나이브스 아웃(Knives out)은 '칼로 찌르다'라는 뜻이다. 비수를 꽂다, 이빨을 드러내다, 무언가를 노리다 정도로 해석된다. 용의자들이 심문을 받는 의자 뒤로는 수많은 칼로 만든 '기묘하고 상징적인' 장식품이 있다. 칼날 앞에서 드러나는 진실의 무게는 차갑고 진실과 거짓을 구별해내는 탐정의 모습은 예리하다.

다니엘 크레이그, 크리스 에반스, 아나 디 아르마스, 제이미 리 커티스, 토니 콜레트, 마이클 섀넌, 돈 존슨, 라케이스 스탠필드, 캐서링 랭포드, 제이든 마텔, 크리스토퍼 플러머 등 초호화 라인업도 눈길을 끈다. '어벤져스' 시리즈를 통해 캡틴 아메리카로 잘 알려진 크리스 에반스가 '평범한 사람'으로 활약하는 모습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 외롭다, 외로워!… 고독함 달래줄 로맨스

지지고 볶아도
'가장 보통의 연애'


연애가 드라마처럼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다. 세상 지질하고 오락가락하는 감정에 이리저리 휘둘리기 일쑤.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는 이런 현실 연애의 기복을 잘 담아냈다.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포스터 / 사진제공=NEW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포스터 / 사진제공=NEW
이 영화는 이별 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는 30대 남녀의 이야기다. 파혼 당한 재훈(김래원 분), 바람피운 전 남친과 이별한 선영(공효진 분). 파혼과 바람을 주제로 격렬한 논쟁을 벌이던 둘은 점점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가까워지게 된다. '자니?', '뭐해?' 카톡 폭탄을 날리며 미련 떠는 재훈. 구질구질한 모습에 '왜 저래?' 싶으면서도 '나도 저랬지' 혹은 '전 남친도 저랬지'라는 공감대에 웃음과 탄식이 터져 나온다.

사랑은 쿨하고 일은 프로페셔널한 '멋진 언니' 선영. 꼴불견 직장 상사에겐 사이다 일침을 날리고 썸남에겐 아슬아슬 19금 발언도 거침없다. 화끈하고 통쾌한 선영의 모습이 대리만족감을 선사한다. 간질거리는 게 싫어 멜로 영화가 별로라는 사람도 러닝타임 내내 웃으며 즐길 수 있다는 게 이 영화의 큰 장점이다.

한복이 왜 거기서 나와?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시리즈


모태솔로, 삼각관계, 계약 연애…. 로맨스의 뻔한 클리셰라고 해도 그 진부함에 우리는 또 끌리게 된다.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짝사랑했던 남자들에게 몰래 적은 한 소녀의 러브레터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발송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포스터 / 사진제공=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포스터 / 사진제공=넷플릭스
한국계 미국인 제니 한의 베스트셀러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주인공 라라 진은 베트남 출신의 배우 라나 콘도르다. 한국계 작가가 원작을 썼다는 점, 할리우드에서 비주류로 분류되는 아시아계 배우가 당당히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는 점에서부터 호감도가 급상승한다. 전형적인 하이틴 로맨스의 흐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솔직하고 당찬 여주인공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속 핑크빛 연애를 보는 설렘도 쏠쏠하지만 이 영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영화 곳곳에서 한국 문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 1편에는 우리가 흔히 마시는 요구르트가 등장한다. 라라 진의 계약 남친 피터가 라라 진의 동생으로부터 요구르트를 받아 마시는 장면. 이는 SNS를 통해 화제가 됐고, 실제 미국에서 관련 음료의 소비량이 늘어나기도 했다.

2편에서는 라라 진이 한복을 차려입고 설날을 보내는 모습이 나온다. 세뱃돈을 주는 할머니는 한국어로 말하기도 한다. 블랙핑크의 'Kill This Love'가 영화에 삽입되기도 했다. 영화의 재미에 한류의 뿌듯함까지 덤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 실화라고? 영화보다 영화 같네

아드레날린 솟구치는 열정의 레이싱
'포드 V 페라리'


강렬한 엔진 소리가 심장 박동을 드높이고 자동차 천재들의 열정이 가슴을 울린다. 두 남자의 장인정신과 승부욕, 뜨거운 우정을 담은 영화 '포드 V 페라리'는 자동차를 모르는 이들에게도 감동을 선사한다.
영화 '포드 V 페라리' 포스터 /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포드 V 페라리' 포스터 /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실화를 바탕으로 한 '포드 V 페라리'는 자동차 엔지니어 캐롤 셸비와 레이서 켄 마일스의 1966년 르망 24시간 레이스 도전기를 그린다. 배우 맷 데이먼이 캐롤 셸비 역을, 크리스찬 베일이 켄 마일스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크리스찬 베일은 켄 마일스와의 싱크로율을 높이기 위해 30kg이나 체중을 감량했다. '포드 V 페라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체중 감량이나 증량을 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을 정도다.

실존 인물인 캐롤 셸비는 레이서 출신으로, 1962년 포드사 자동차를 주력으로 튜닝하는 업체 셸비 아메리칸을 설립한다. 1966년 켄 마일스는 셸비 아메리칸 소속으로 르망24에 출전한다. 포드는 1, 2, 3위로 나란히 포드의 자동차가 결승선을 밟는 모습을 원했다. 독보적 1위를 달리던 켄 마일스는 회사의 제안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속도를 늦춰 뒤따라오던 레이서들과 격차를 맞췄다. 맨 먼저 결승선을 밟았지만 2위 판정을 받아야 했다. 켄 마일스 다음으로 들어온 브루스 맥라렌이 출발 시 더 뒤에서 시작했다는 것.

르망24가 끝나고 켄 마일스는 신형 자동차를 테스트하던 중 사망하게 됐지만, 레이싱 팬들의 열렬한 지지에 2001년 미국 모터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일부 허구가 가미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실제와 일치한다.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BTS가 미국에서도 챙겨본 영화
'남산의 부장들'


코로나19의 확산 전 '흥행의 막차'를 탔던 영화다. 아쉽게 놓쳤다면 결제해서 본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작품이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도 개봉했는데 당시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로스앤젤레스 극장에서 관람했다고 알려져 더욱 관심을 모았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포스터 / 사진제공=쇼박스
영화 '남산의 부장들' 포스터 / 사진제공=쇼박스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제2의 권력자라 불리던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 분)이 대한민국 대통령(이성민 분) 암살사건을 벌이기까지 40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1979년 10월 26일에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대통령인
박정희를 살해한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남산의 부장들'은 논픽션 베스트셀러로 사랑 받은 동명의 원작을 중립적으로 스크린에 옮기기 위해 애썼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논란을 피하기 위해 극 중 인물들은 실제 인물과 다른 이름을 썼고, 대통령 역시 '박통'으로만 언급된다. 극적이었던 한국 현대사를 담은 이 영화는 1979년을 기억하는 세대들에게도, 그 시대를 잘 모르는 세대들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열연이 숨 막히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박통과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 분)을 도청하는 장면에서, 이병헌은 자신의 험담을 직접 들었을 때 김규평이 느꼈을 분노와 실망감을 세밀하게 표현했다. 곽상천 캐릭터를 위해 25kg 증량한 이희준은 이병헌과 대립하는 장면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성민은 생김새뿐만 아니라 걸음걸이, 습관까지 실존인물을 연구해 캐릭터 싱크로율을 높였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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