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랜스포머3>│여름 블록버스터의 쾌락과 시청각적 노동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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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풋풋한 고등학생의 모습으로 처음 만났던 범블비의 주인님, 샘(샤이아 라보프)은 어느덧 취업전선에 뛰어든 사회인이 되었다. “세상을 두 번이나 구하고, 정부 장학금에 대통령 훈장까지 받은 내가! … 실업자라니!” 범블비도 옵티머스도, 오토봇 친구들마저 모두 국가의 부름을 받고 일하고 있지만, 어쩐지 이 ‘쓸데없는 고퀄리티’ 인재를 선뜻 채용하는 회사는 없다. 물론 용돈에 살 집까지 내어주는 금발미녀 칼리(로지 헌팅턴 휘틀리)가 옆에 있으니 사실 사회는 샘에게 할 만큼 한 셈인지만.

1969년 지구에서 발사한 우주선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첫 발을 내 딛는 장면. 인류와 우주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돌아간 는 부제 ‘Dark of the Moon’처럼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달의 이면을 응시한다. 그 곳에는 오토봇 계의 아인슈타인이자 사이버트론의 간달프 같은 존재였던 ‘센티널 프라임’이 지난 40년 간 묻혀있었던 것이다. 마치 한 편의 장중한 다큐멘터리처럼 커버를 여는 의 본격적인 제 1장은 그러나 늘씬하게 뻗은 다리 위로 탐스러운 엉덩이를 살짝 살짝 보이며 걸어오는 여자의 뒷모습으로 시작된다. 날조된 역사, 달의 이면, 음모이론? 어머, 손님 이건 여름 블록버스터예요.
영화 <트랜스포머3>│여름 블록버스터의 쾌락과 시청각적 노동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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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린 건 많은데 먹을 건 없다

물론 할리우드 여름 블록버스터가 가끔 철학도 하고, 때론 묵직한 이야기를 건네기도 한다. 하지만 애초에 시리즈가 욕망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인생에서 최초로 갖게 된 낡은 자동차가 나를 구하고, 내 손을 잡고 뛰는 내 여자 친구를 구하고, 결국 세상을 구하는 용맹한 로봇으로 변신하길 바라는 소년들의 로망. 그것이 21세기의 첨단테크놀로지를 만나면서 탄생하게 된 것이 시리즈다. 그러니 이 영화를 앞에 두고 시리즈 같은 존재론적 토론을 나눌 것도, 같은 애틋한 교감을 기대할 필요도 없다. 그저 좀 더 기상천외한 적과 동지들이 등장해, 좀 더 강하고, 좀 더 멋지고, 좀 더 크게 한 판 싸워주면 그 뿐이다. 하지만 시리즈는 완결판인 에 이르기까지 끝내 강렬한 첫인상을 뛰어넘는 도약을 보여주진 못한다. 주변의 하찮은 기계들이 근사한 로봇으로 변신하는 트랜스포밍의 순간, 그 충격 말이다.

물론 지네처럼 움직이고 뱀처럼 휘감기고 용처럼 솟구치는, ‘쇼크 웨이브’는 이름 그대로 충격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끝내 메가트론과 폴른을 잇는 새로운 악당의 캐릭터를 얻지 못하고 열심히 웨이브만 출 뿐이다. 또한 ‘윙 수트’를 입고 날다람쥐 떼처럼 하늘을 나는 레녹스 부대의 비행은, 이미 기본 신장이 하늘 높이인 거대 로봇들의 대결 속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인간의 왜소함만을 애써 강조할 뿐이다. 오히려 폭격으로 인해 기울어진 고층빌딩의 유리외관을 타고 내려오는 속도감 넘치는 슬라이딩이야말로 여름 물놀이 시즌을 겨냥한 가장 적절한 프리뷰다. 또한 샘이 취직한 회사의 결벽증 걸린 사장으로 등장하는 존 말코비치나, 곧 닥칠 위험을 예고하는 과학자 역의 켄 정의 히스테릭한 연기는 숙취 없는 강렬한 한 샷을 붓고 떠난다.

1, 2 편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메간 폭스는 3편 여주인공 자리를 금발의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 로지 헌팅턴 휘틀리에게 내주어야 했다. 2009년 한 영국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감독 마이클 베이가 현장을 지휘하는 방식을 히틀러에 빗대어 설명한 발언이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이다. 결국 메간 폭스는 에서 “전 여자 친구는 완전 싸가지 없었어”라는 대사를 통해 완전히 확인사살 당한다. 비정한 지구인들은 그렇게 업그레이드 된 무기, 업그레이드 된 시각효과, 업그레이드 된 여배우까지 장착하고 돌아왔지만 마지막까지 제대로 된 흥분의 순간을 선사하지 못한다. 인공적인 교성과 주소를 잘못 찾은 잦은 애무만이 난무한 이 세 번째 만남은 152분이라는 긴 러닝타임동안 3D 안경까지 착용한 채 복무해야하는 시청각적 노동이다.

글. 백은하 기자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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