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다. 죽는다고 한다, 길면 2년. 짧으면, 글쎄. 그건 모르겠다. 그저 현재 의사의 소견에 따르자면 “공격적으로 퍼져가는 암세포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공격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뿐이다. 총 맞은 것처럼 머리를 관통하는 갑작스런 시한부선고에 남자는 잠시 몇 가지 생각을 한다. ‘3개월 앞으로 다가온 결혼을 취소해야겠어, 6학년 시험지 채점을 안 해도 되겠군, … 그런데 혹시, 이거 오진 아닐까?’

9월 말 국내 개봉을 앞두고 제 5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통해 먼저 관객들을 만난 <원 위크>는 죽음을 선고 받은 남자, 벤이 충동적으로 떠난 여행 길 위에서 쓴 일주일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다. 그러나 ‘죽음’은 이 여행의 촉매 혹은 맥거핀일 뿐이다. 정작 영화는 그가 죽음이라는 거대한 장애물을 어떻게 뛰어넘는 지에는 별 관심이 없다. 대신 스스로 발견한 자신보다는, 타인에 의해 규정된 자신에 맞추어 살아가던 한 남자 앞에 진짜 거울을 들이밀기 바쁘다. 우연히 오토바이를 사게 된 벤은 커피 컵에 쓰여진 “젊은이여, 서쪽으로 떠나라”라는 주술 같은 한 마디를 따라 가죽잠바 하나만 걸친 채 길을 나선다. ‘트랜스캐나다’의 루트를 따라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무언가 앞에서 끊임없이 기념사진을 찍는 벤. 그러나 정작 그가 발견하는 것은 여자친구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는 순간의 행복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들이다.

토론토에서 출발해 산맥을 넘고 호수를 건너고 오로라를 만나고 토피노의 아득한 바다에 이르는 이 길 위의 풍경은 자신의 조국, 캐나다의 장엄한 자연 풍광을 아낌없이 자랑하겠다는 감독 마이클 맥고완의 애국적 헌화처럼 보일 정도다. 또한 ‘The Great Escape’- ‘20 Miles’ -‘Nice Day’ -‘Hard Road’ -‘Reborn’ – ‘Ricky Come Home’, 이 영화의 O.S.T.에 수록된 곡들의 제목을 나란히 열거하는 것으로 스토리의 흐름을 읽을 수 있을 만큼 <원 위크>에서 음악은 오토바이 ‘노턴 850 코만도’과 함께 벤의 여정을 함께하는 보이지 않는 그러나 절대적인 길동무다. 누군가에게는 일주일, 어쩌면 하루, 혹은 저스트 텐 미닛. 수동적인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바꾸는데 있어 시간이란 그저 핑계일 뿐이다. 오토바이도 캐나다 행 비행기표도 필요 없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엔진에 시동을 켜는, 딱 그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한지도 모른다.

글. 제천=백은하 (o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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