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살아요>, 삶을 살아낸 드라마의 품격
, 삶을 살아낸 드라마의 품격" /> 169회 JTBC 저녁 8시 10분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 어쩌면 지극히 평범할 수 있는 주제였다. 하지만 는 그 가난에 상대성을 부여함으로써 보다 섬세하게 현실적인 감정들을 그려낸 작품이었다. 밥을 먹고, 비를 피하고, 애정을 나누기에 부족함 없는 청담 만화방은 청담동이라는 공간 안에서 필요 이상으로 초라한 곳이 되고, 부끄러운 비밀이 되었다. 그리고 드라마는 만화방 앞에서 마주친 혜자(김혜자)를 모른 척 하려 애쓰는 순애(신연숙)를 통해, 그 상대적인 박탈감의 근원이 못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더 가진 사람들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짚어냈다. 못난 마음은 시시때때로 오고 갔지만, 청담 만화방에 못난 사람은 없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번쩍거리는 빌딩들 사이에서 쑥 내려간 이 작은 건물을 불편해 하는 것은 청담동의 일관된 매끈함을 원하는 사람들일 뿐, 모난 자리는 오히려 꿋꿋하게 제 살 도리를 찾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이다.

그 모서리를 다독이며 북돋으며 이끌어 온 덕분에, 가 허락하는 판타지들은 섣부르거나 안이하게 보이지 않는다. 부끄러운 속내를 숨기지 않았던 혜자는 마음이 빛나는 시인이 되었고, 솔직한 갈등을 보여준 지은(오지은)은 작은 가게의 사장이 되었다. 이들이 얻어낸 꿈은 각자에게는 높고 귀한 것이나, 여전히 청담동의 기준에서는 보잘 것 없는 것들이며, 결국 작품은 그 기준의 무의미함을 설명해 낸다. 정민(황정민)을 향한 우현(김우현)의 프러포즈가 뭉클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세상의 기준을 지워냄으로서 가능한 것이었다. 한여름에 내리는 눈처럼, 이것이야말로 드라마가 제시할 수 있는 가장 비현실적인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거짓말 같이 순진하고 묵묵한 믿음 덕분에, 드라마는 사건과 사고가 아니라 삶을 지켜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건 수많은 일일 드라마들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장르 본연의 매력이다.

글. 윤희성 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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