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준은 해외에서 명성을 떨치던 천재 피아니스트다. 그러나 팔목 부상 후유증으로 휴식차 반년간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오게 된다. 학교에 처음 방문한 날 우연히 들은 피아노 선율에 이끌려 오래된 연습실을 찾았다. 유준은 정아(원진아 분)에게 한눈에 반한다. 감독은 유준과 정아의 첫 대면 장면에서 빛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정아 뒤쪽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마치 정아가 내뿜는 후광인 것처럼 비쳤다. '첫사랑의 정석'처럼 그려진 정아의 모습에 유준이 한눈에 반한다는 설정이 설득력을 가졌다.

반면 또 다른 주역인 신예은은 두 배우와 다소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신예은은 유준의 음악과 동기로 유준을 짝사랑하게 되는 인희 역을 맡았다. 아무래도 유준과 정아가 서로 사랑하는 둘만의 세상에 있다 보니 유준을 짝사랑하는 인희가 나올 때마다 겉돌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스타일링 역시 인희의 이질성을 강화하는 데 한몫했다. 인희는 트위드 재킷과 치마를 주로 입어 우아한 음대생의 모습을 표현했다. 반면 유준과 정아는 셔츠, 니트 등을 주로 입는 편안한 모습이었다. 옷차림의 대비 역시 인희를 제삼자로 만들었다. 이런 대비 덕에 유준과 정아의 사랑에 보다 집중해서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서 감독은 남 주인공인 유준의 서사를 추가해 주제의식을 한층 강화했다. 그는 "유준의 큰 감정의 폭을 넣어서 재미를 더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정아 역시 마냥 기다리는 인물이 아니라 사랑을 찾아서 용감하게 용기를 내는 인물로 그려졌다. 서 감독은 "용기를 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사랑을 향해) 가는 용감한 질주를 영화에 그리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남자 주인공인 유준뿐 아니라 정아까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질주하는 모습은 두 주인공 모두에게 관객이 충분히 몰입할 수 있게끔 했다.

피아노 장면들의 임팩트가 원작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특히 피아노 배틀 장면의 경우 원작 영화 개봉 후 신드롬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임팩트가 있었다. 피아노 배틀 장면의 경우 빠르고 강한 연주로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야 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연주의 속도에 맞춰 배틀 후반부에 빠르게 컷이 전환되는 연출은 머리를 어지럽게 해 집중력을 깨트린다. 또한 원작에서는 서로를 바라보며 배틀을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서로를 등지고 배틀을 진행해 긴장감을 떨어트렸다.
사랑을 향해 맹목적인 모습을 보이는 유준의 마지막 피아노 연주 장면도 원작에 비해 긴장감이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원작에서는 철퇴가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듯한 장면 구성으로 해당 장면의 긴장감을 높였다. 그러나 이번 각색에서는 실제 한국 건물 철거 현장처럼 건물이 부분부분 무너지는 모습만 보였다. 등장인물을 향해 직접적인 물리 위협이 부재해 원작의 아슬아슬함을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듯하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오는 28일 개봉한다.
김자윤 텐아시아 기자 kjy@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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