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채로운 장르에서 매번 달라지는 캐릭터를 찰떡같이 소화해내는 배우 주지훈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여름 극장가에서 그가 선보이는 영화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이하 '탈출')이다. 주지훈은 "기획 의도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이 영화는 팝콘무비다. 그동안 작품을 계속 해왔지만 그 시기에 팝콘무비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를 저도 워낙 좋아한다"고 작품 선택 이유를 밝혔다.
'탈출'은 짙은 안개 속 공항대교에서 발생한 연쇄 추돌 사고와 통제불능의 군사용 실험견, 그리고 붕괴 위기 속에 생존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주지훈은 공항대교 부근 주유소에서 투잡을 뛰는 렉카 기사 조박 역을 맡았다. 주지훈은 "그 안에서 조박이 기능적인 역할을 많이 한다. 그런 걸 제가 또 좋아한다. 취향에 없는 인간이라도 말이다. 저는 그 순간에 재밌게 다가왔으면 크게 고민 안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창작은 선입견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잘 활용하면 쉽게 공감을 이끌어내고, 비틀면 신선하다고 하죠"
극 중 조박은 군사용 실험견들에게 위협을 받을 때, 위스키를 횃불에 내뱉으며 불을 키워 방어한다. 긴박한 상황이지만 '불쇼'를 연상시키며 쾌감도 터지는 포인트다. 주지훈은 "현장에 차력사가 오셔서 알려주셨다. 그런데 제가 부는 압력을 너무 크게 했나보다. 위스키가 침샘으로 파고 들어가서 일주일간 고생했다"고 촬영 비하인드를 털어놨다.
"사실 CG로도 할 수 있고 주변에서도 위험하니까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아직 부족해서 마임 같은 걸 잘 못해요. 감정과 연결된 걸 연기로 하고 싶은데 그걸 가짜로 못하겠더라고요. 침샘과 맞바꿨죠. 어려운 신이었지만 재밌었어요. 하하."
연쇄적으로 일어난 재난 상황 속 도망치는 과정에서 차 트렁크에 급박하게 몸을 싣기도 한다. 주지훈은 "CG의 향연인 여름 블록버스터를 찍으면서 CG를 안해준다? 장난치는 줄 알았다"며 크게 웃었다.
"어깨가 부서지는 줄 알았어요. 육체적으로 힘들었어요. 실제로 좁은데 앵글로는 넓어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억지로 그렇게 해야 자연스러워 보이니까요. 편하게 찍은 게 아니에요. 욱여넣었어요. 연기하기도 고개 돌리기도 힘들었죠. '내가 해보겠다' 호기롭게 말하기도 했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책임도 져야하고... 어깨가 빠질 것 같았지만 그냥 했어요. 하하."

"선균 형이 저보다 디테일해요. 저는 편집을 감안하면 극적 허용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선균 형은 디테일하게 짚어봐요. 저는 '그냥 넘어가도 될 거 같은데?' 하는데 형은 디테일해요. 개연성도 중요하게 여겨요. 직업이 나와 같은 배우인데, 나와 다른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어요. 같은 배우들끼리도 서로 배우고 관찰한다. 인간이 완벽할 수 없으니 나한테 없는 걸 보면 흡수하고 싶잖아요."

"분노한다고 해도 바뀌는 건 없어요. 변명처럼, 회피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예전에는 뭐 하나 잘 되면 어깨 올라가고 그랬어요. 하지만 점점 작업 수가 많아지고 보니 내가 아는 것, 보이는 것이 많아졌어요. 영화, 드라마를 혼자 만드는 게 아니구나. 그래서 스태프들, 동료들에게 고마움이 커져가요. 안 되면 슬프고 가슴 아프지만 예전처럼 그렇진 않아요. 내 몫을 열심히 하고 있단 표현을 많이 하고 있는데, 다 협업이에요. 다행히 동료들도 있고 그게 안 됐을 때 나누면 슬픔의 무게도 나눠져요. 그런 마음입니다. 그래도 캐스팅이 흔들릴 정도로 부진하면 많이 힘들지 않을까요. 하하."
이번 작품의 흥행에 대해서도 걱정과 기대를 은근히 내비쳤다. 주지훈은 "흥행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코로나 이후 사람들의 생활 양식이 다양해졌다. 영화뿐만 아니라 당연시 했던 인간의 기본적인 것들이 다 바뀌고 있다. 모든 양식 자체가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흥행하길 바란다"면서 "하지만 한국 영화가 갖고 있던 데이터가 다 박살나고 있기 때문에 신점이라도 한번 보러 가야 하나 싶다"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안겼다.
어떤 배우로 대중들에게 기억되고 싶냐는 물음에 주지훈은 "아무 생각 없었으면 한다"면서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바라는 건 없다. 나이가 꽤 들었다. 내가 바란다고 되는 것도 아니더라"며 그저 '허허' 웃었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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