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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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야, 너 코믹이 된다?" 남보라가 1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조정선 작가에게 들은 말이다. 2015년 방송한 SBS '내 마음 반짝반짝'에서 조 작가를 처음 만난 남보라는 당시 우울하고 어두웠던 편이라 톡톡 튀고 발랄한 '효심이네' 정미림 역할을 맡기엔 걱정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남보라는 근심이 무색할 정도로 '무한 긍정' 에너지를 발산하며 극의 재미를 더했다.

지난 14일 서울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텐아시아와 만난 배우 남보라는 인터뷰가 오랜만이라며 설레는 모습으로 취재진을 반겼다. KBS2 주말드라마 '효심이네 각자도생'(이하 '효심이네')을 통해 51부작 9개월이란 긴 호흡을 했는데도, 그에게선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작품 속 정미림으로 착각할 정도의 활기찬 분위기가 풍겼다.

남보라는 '효심이네'에서 전직 대형 로펌 변호사로서 일하다가 사표를 낸 후, 배우 지망생으로 새로운 인생을 그려가는 '정미림'으로 분했다. 캐릭터 자체도 매력 넘쳤지만, K팝 댄스부터 부채춤까지 다채로운 퍼포먼스로 보는 재미를 더해 시청자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사진제공=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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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연기를 보고 많은 사람이 즐거워했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미림이를 연기한 저에겐 90점이란 점수를 주고 싶어요. 대체로 만족했지만, 변호사다운 모습은 좀 부족했던 것 같아 10점은 뺄게요(웃음). 지나고 나니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남보라는 정미림을 연기 하기 위해 "연기 학원 다녔던 시절의 친구들을 떠올렸다. 긴장한 친구의 표정과 호흡을 생각하며 모티브를 따왔다"며 리얼한 연기의 비결을 공개했다. 이어 그는 "난 평소 조심성과 불안함이 큰 성향이다. 나와 정반대인 미림이의 거침없는 성격에 시원함을 많이 느꼈다"며 미림이를 연기해 좋았던 점을 꼽았다.

반대로 남보라가 연기했던 캐릭터 중 실제 성격과 가장 비슷한 역할으로는 SBS '오늘의 웹툰'의 장혜미 부편집장을 꼽았다. 그는 "일 중심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닮아있다"고 설명했다.

극 중 몸을 사리지 않는 댄스 장면도 화제를 모았다. 춤 연기에 대해 남보라는 "유튜브 채널 '에나스쿨'을 많이 참고했다. 오후 10시 작가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시어머니 앞에서 춤추는 며느리 영상을 보내주셔서 열심히 보고 따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리 해도 영상과 같은 품새가 안 나서 나답게 재밌게 할 수 있는 느낌을 연구했다"며 비하인드를 풀었다.
사진제공=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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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주인아주머니께서 30년 전 주말 드라마를 '깔깔' 소리 내며 재밌게 보고 계시더라고요. 순간 '내가 이 작품에서 해야 하는 역할이 저렇게 시청자에게 웃음과 재미를 줘야 하는 거구나'라는 깨달았습니다"

남보라는 "미림이를 다소 진지하게 풀어낼 수도 있었지만, 결국 유머 코드를 잘 살려야겠다"는 결론을 내고 "상대 배우인 설정환과 많은 연구를 했다"고 밝혔다. 그는 설정환에 대해 "실제 성격은 '순둥이'다. 세심한 부분이 많다. 나는 러프하고 큼지막한 스타일인데, 설정환은 반대로 살랑살랑하고 디테일하다"며 "반대되는 성향에 시너지가 좋았다. 설정환의 섬세함 덕분에 내 연기의 생동감이 불어넣어지는 것 같았다"고 그를 치켜세웠다.

설정환과의 로맨스 연기에 대해선 "51부 통틀어서 가장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남보라는 "잠깐이었는데도 로맨스 신을 찍는 그 몇 주 동안 정말 예민했다. 임신 연기가 끝났을 때 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웃음을 유발했다.

'효심이네'를 통해 "로맨스 연기를 어려워하는구나" 깨달았다는 남보라. 그의 현실 연애 스타일은 어떨까. 그는 "생사만 확인하면 될 정도로 연락이나 애정 표현을 잘 안 하는 편이다. 오글거리는 걸 잘 못 견디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남보라는 "연애보다 일이 우선"이라며 데뷔 18년 차에도 변함없는 연기 의욕을 자랑했다.

남보라는 극 중 효심이 엄마, 이선순 역을 맡은 윤미라에 대해서도 칭찬을 쏟아냈다. 흐뭇한 표정을 지은 채 "선배님으로부터 '배우는 언제 때가 올지 모르니 항상 열심히 해야 한다. 너 분명 잘될 거야' 등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덕분에 큰 힘을 받았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를 꼽는 질문에 남보라는 재빠르게 '유이'라고 외쳤다. 그는 "유이는 의도치 않고 자연스럽게 유머를 전파하는 능력이 있다. 그에게 유쾌하고 주변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에티튜드를 배웠다"며 훈훈함을 자아냈다. 긴 레이스를 마친 남보라는 "현장에 계신 모든 분이 좋아서 지칠 수 없었다. 벌써 종영 시기가 왔다는 사실이 안 믿길 정도다"라며 '효심이네'의 분위기를 자랑했다.
사진제공=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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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딜 가든 어머니들께서 저에게 '당근이 어머니'라고 인사해 주세요. 제가 당근이 엄마가 된 것 같아 재밌습니다(웃음). 개인의 안부보다 효준이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는지, 당근이가 언제 태어나는지 이런 걸 물어보시는 덕분에 '효심이네'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분이 미림이를 지켜보고 계시는지 체감하고 있어서 행복합니다"

'효심이네'가 끝나고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냐는 물음에 남보라는 "시트콤으로 조 작가님과 다시 만나기로 결의를 다졌다. '효심이네'를 통해 코믹 연기의 매력에 푹 빠졌다"며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어 남보라는 "웹드라마 '이재, 곧 죽습니다'를 재밌게 보고 있다"며 "죽음이와 같은 초월적 존재를 희망한다"고도 했다.

남보라는 팬데믹 때 손 소독제를 시작으로 소소하게 사업을 하고 있다. 그에게 사업이 연예 활동에 영향을 끼치냐고 물었더니 "그렇다. 그동안은 연예계라는 바운더리 안에서만 주로 활동했었는데, 사업을 시작하면서 생활의 범위가 넓어졌다. 전보다 여러 사람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사업을 통해 많이 넓어졌다"고 털어놨다.

그는 "특히 현장 갔을 때, 나 자신보다 스태프들의 입장을 생각하게 되고, 환경과 시스템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게 됐다"고 사업을 계기로 달라진 점을 꼽았다. 남보라는 "상황을 대하는 태도가 '그럴 수도 있지' 마인드로 변했다"고도 덧붙였다.

사업을 통해 아량이 넓어진 건지, 미림이와 닮아가면서인지 '효심이네'를 찍는 매 순간이 좋았다는 남보라. 그는 "미림이로 살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며 뿌듯해했다. 남보라는 "워낙 지나가면서 많은 분이 알아봐 주시는 덕분에 '13남매 장녀에서 '당근이 엄마'로 수식어가 바뀐 것 같다. 바쁜 현실을 살다가도 '효심이네'를 시청하시는 동안만큼은 맘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바람대로 사람들에게 재미를 선사한 것 같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2005년 MBC '일밤-천사들의 합창'에 13남매 장녀로 출연 후 배우로 데뷔한 남보라. 그는 정확한 목표가 있는 캐릭터를 기준으로 작품을 선택해 왔다. '효심이네' 미림이 또한 연예인이란 꿈을 꾸는 진취적인 여성이다. 그런 모습이 남보라와 닮았기에 끌렸을 터다.

정형화된 이미지를 탈피하고 시청자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는 남보라. 데뷔 연차 20년이 돼가는데도 식을 줄 모르는 연기 열정으로 만들어낸 '남보라 표 코믹 연기'는 시청자와 작가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놀라움을 안겼다. 남보라는 "나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었구나" 깨달았다며 '효심이네'를 통해 배우로서의 스펙트럼을 한 층 확장한 모습에 만족해했다.

이소정 텐아시아 기자 forusoju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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